양손 가득 쇼핑백에서 미니멀을 추구하기까지
나는 가성비 마니아였다. 물건을 살 때도 가성비를 따지고 여행 계획을 세우면서 가격에 합당한, 아니 가격 이상의 코스를 짜느라 며칠 밤을 매달리기 일쑤였다. 좋은 것을 싸게, 더 싸게 사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했다. 성능대 가격비를 철저히 계산해 ‘득템’ 하는 소비라니 얼마나 똑똑한가.
외식에도 가성비 기준을 적용했다. 내가 자주 가던 식당들은 조금 후미진 장소에 있어도 요리, 서비스, 가격이 다 내가 세운 기준을 충족했다. 요리는 훌륭한데 가격이 상당히 양심적이라 나만 알고 싶은 보물 같은 곳들이었다. 가성비가 너무 좋아서였을까. 그렇게 내가 콕 찍어둔 식당들은 몇 년 사이 하나, 둘 폐업을 하고 말았다.
옷이나 생활용품 등 물건 구입은 브랜드 아웃렛과 패밀리세일을 애용했다. 전철로 사, 오십 분 거리의 아웃렛에 가면 좋아하는 브랜드 매장을 샅샅이 뒤졌다. 할인율이 높고 인지도가 있는 브랜드 옷을 고르고 또 골랐다. 내 취향에 약간 벗어나도 할인율이 크면 일단 사 왔다. 시간을 들인 만큼 본전을 뽑아야겠다는 가성비 레이더가 작동한 것이다.
가성비 최고인 쇼핑으로는 패밀리세일이 있었다. 미리 초대권을 입수해 당일에는 오픈 시간 전에 아침 일찍 줄을 서서 들어가기도 했다. 고생해서 입장한 만큼 보상심리가 작용해 가능한 많이 사는 것이 이득이라 생각했다. 쌓여있는 옷 더미에서 보물을 찾으려 혈안이 된 나는 허기진 배와 뻐근해지는 허리도 모른 척했다.
그렇게 계절마다 양손 가득 담아온 옷과 소품들은 집안에 쌓여갔고 내가 미처 입거나 사용하지 못한 물건들은 가족과 지인에게 ‘선물’이라는 명목으로 넘겼다. 상대방을 위해 구입한 마음이 담긴 선물이 아닌 내 소비욕을 채우고 남겨진 의미 없는 선물이었다. 득템 했다고 생각한 물건의 상당수도 빈틈없이 들어찬 옷장 안에서 잠자기 일쑤였고 꼭 가져야 한다는 일념으로 들인 물건도 시간이 갈수록 애정이 떨어졌다. 그럼 어느새 새 애착 형성을 위해 다른 물건을 찾는 여정이 시작됐다.
애정이 식은 물건과 새 물건의 순환고리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빙글빙글 돌뿐이었다.
그날도 가성비라는 허울 좋은 소비의 쳇바퀴를 돌리러 아침밥도 거른 채 패밀리세일 행사장으로 향했다. 이미 몇 겹으로 늘어선 줄 끝에 서서 더 부지런 떨지 않았던 안이한 태도를 후회했다. 추운 겨울이었고 얼어가는 손으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내 차례를 기다렸다. 일사분란히 나눠주는 40리터짜리 비닐봉지를 한 손에 꼭 쥔 채 행사장을 1시간 정도 돌았을까. ‘오늘은 데려가고 싶은 게 없다’는 마음이 들었다. 시간과 체력의 손해를 감수하고 아무런 소득 없이 행사장을 터덜터덜 걸어 나왔다. 비닐봉지를 계산대가 아닌 입구에 반납한 날은 처음이었다. 그렇게 갑자기 허무하게 나는 쳇바퀴에서 탈출했다.
매년 두 번의 패밀리세일은 두 손 모아 고대하는 이벤트였지만 방문할수록 득템 물건 개수가 점점 줄어들던 시점이었다. 그날, 입구에 빈 비닐봉지를 반납한 그날 바로 전에 다녀왔던 세일에서는 단 두장의 셔츠를 사 왔을 뿐이다. 그 마저도 바로 옥션에 팔아 버렸다.
공들여 고른 옷은 집에 돌아와 다시 보니 마음에 들지 않았고 평소처럼 중고매매로 손해를 메꾸고자 했다. 쉽게 판매에 성공했지만 평소와 달리 공허함이 밀려왔다. 입지도 않을 옷을 사 온 뒤 사진을 찍어 올려 포장하고 배송하는 이 과정을 반복하는 나 자신이 바보 같았다. 70퍼센트 할인 상품을 사는 일은 언뜻 합리적으로 보였지만 실상은 굳이 쓰지 않아도 될 돈과 시간을 버리는 비효율 끝판왕이었다.
내 가성비 쇼핑은 뚜렷한 실패의 궤적을 그려내고 있었다. 미처 입지도 못하는, 필요 없는 물건으로 가득한 옷장이 주는 메시지를 들을 귀가 겨우 열렸던 걸까. ‘언젠가’ 입을 예정으로 대기만 하고 있는 옷과 물건들에 미안한 감정까지 들었다. 그때 즈음 그날이 왔던 것이다.
그동안 뭔가 더 많이 소유하려고 애쓴 시간들이 길다. 좋은 물건을 싸게 손에 넣는다는 목표를 좇는 동안은 애당초 그 물건이 왜 필요한지 묻지 않았다. 가성비 쇼핑이 주는 충족감은 금세 사라졌고 소비할수록 오히려 갈증이 더해졌다.
아직도 가성비에 현혹되던 오래된 습관이 꿈틀거려 필요 없는 물건을 사는 소비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다만 쳇바퀴에 스스로 걸어 들어가지 않기로 한 다짐을 기억하며 방향 조절을 하고 있다.
물건을 비울 때는 최대한 어려운 과정을 거쳐 물건을 사는 것보다 비우는 게 몇 배 어렵다는 걸 의도적으로 몸, 머리로 학습하려고 한다. 쓸모가 없어진 물건도 폐기는 가장 마지막 선택지로 두고, 용도별로 순환시키는 방법을 조사해 재사용하고 기부하거나 나눔으로 순환시키려 신경 쓰고 있다.
물욕이 사라지지는 않았으나 새 물건을 사기 전에 물건의 끝을 미리 생각하게 되었다. 비우는데 드는 시간, 노력에 비해 새 물건이 주는 이점을 꼼꼼히 비교하고 나서 소비하려다 보니 쇼핑도 상당히 신중해진 건 사실이다. 이런 과정들을 거치며 얻은 깨달음은 다시 쳇바퀴로 걸어 들어가지 않도록 나를 붙잡아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