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두기 경력자의 은둔형 생활방식 노하우
약속을 잡고 나서 날짜가 가까워질수록 답답함을 느낄 때가 왕왕 있다. 당일에도 갑자기 약속이 깨지길 바란다. 상대방의 약속 취소 연락에 속으로 쾌재를 부르는 나는 철저한 내향인이다. 남인숙 작가의 「사실 내성적인 사람입니다」의 ’ 내향인에게 세상이 주는 자극 중 가장 강렬한 것은 사람’이라는 구절에 뼛속 깊이 공감한다. 이런 성향상 최대한 집에서 에너지를 비축하는 은둔형 생활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충전이 완료되면 그제야 사람을 만난다. 시간의 대부분을 보내는 집은 나에게 자극을 차단해 주는 안전한 공간이자 자유가 극대화되는 놀이터다. 관리하지 않고 방치해 두기엔 집이 내 삶에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하다.
집이라는 공간 안에서 일, 놀이, 다양한 취미 등 온갖 활동을 하다 보니 시간이 갈수록 소유물 개수가 늘어나기만 했다. 흩어져 있는 물건들은 어느 것도 충분히 사용하지 못한 채 공간을 차지할 뿐이었다.
즐거움을 위해 들였던 물건이지만 하나하나 돌보기란 어려웠다. 한 가지 작업을 하고 있자니 다른 물건이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았고 작업의 집중도가 쉽게 깨졌다.
집안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것도 힘겨웠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잡지, 소셜미디어 안의 수많은 다른 집들을 훔쳐보면서 내가 갈망하는 집의 모습을 만들어 나갔다. 빈티지한 인테리어도, 북유럽 모던 스타일도 매력적이었지만 나에게 이상적인 집은 시야를 방해하는 물건을 최소화한 공간으로 수렴되었다.
물건 더하기보다 빼기 속도를 높이자 집에 머무는 편안함과 해방감이 배가 되었다. 관리할 물건이 줄어들자 집안일도 점차 줄었다. 내 집은 일상의 노동까지 함께 비우며 집순이에게 최적의 공간으로 진화했다. 고요한 오전 이른 시간에는 집중해서 일하는 곳으로, 햇살이 따뜻한 오후에는 홍차 한 잔 곁들여 가벼운 에세이라도 읽으면 아늑한 카페 부럽지 않다. 요가매트를 펴고 몸과 대화하는 이십 분은 수련의 장소로, 꽃 몇 송이를 다듬고 담을 유리병을 고민하는 동안은 치유의 안식처가 된다.
사람들은 집에서 도대체 무얼 하냐, 심심하지 않으냐고 묻지만 단조로울 것 같은 내향인의 일상은 사실은 재미있는 일들이 촘촘하게 박혀있다. 사람이 주는 자극을 차단해주니 안전함을 느끼고 나 스스로와의 관계에 더 에너지를 쏟을 수 있다. 집안에서 다양한 활동이 일어나는 이유다.
다수와의 만남이나 여행지에서 돌아와 집 현관문을 여는 순간 안도하며 자유를 되찾았음을 기뻐한다. 집을 소중하게 여기는 이유다. 거주공간 그 이상으로 에너지의 원천이 되는 내향인의 집. 나는 집을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