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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자부인 Feb 03. 2024

여전히 봄을 기다리는 마음

 겨울의 매서운 바람이 흐려질 즈음, 아직 계절은 남아 있는데 곧 입춘이라고 한다. 아침에 읽은 시요일에서 보내준 시가 그렇다. 장석남의 시 ‘입춘 부근‘ 마지막 연이 마음을 두드린다.


 오는 봄

 꽃 밟을 일을 근심한다

 발이 땅에 닿아야만 하니까

                            장석남의 ‘입춘 부근’ 중에서



  한 해를 마무리하며 시작된 겨울은 마음의 무거움을 주었다. 꿈꾸었던 삶과 다른 현실이 보이기도 하고, 남과의 비교로 위축된 나를 끄집어 올리기가 버거웠다. 새 해가 시작되었지만 더 깊어진 겨울 속에 갇혀 달라지지 않는 일상에 체념과 절망이 자리를 잡으려 했다. 그냥 이대로 살아야 하나 싶을 때, 봄이 오는 소식을 들었다. 작은 희망의 기운을 놓칠 수없다. 아주 절망에 빠져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박완서의 소설‘ 그 남자네 집’은 전쟁통에 각 집마다 죽거나 부상당한 가족들이 여럿 있는 상황이었다. 서로 가족 안부를 묻다 주인공은 생각했다.


우리가 받은 고통은 김치하고 밥처럼 평균치의 밥상이었으니까. 만약 아무도 죽지 않고 찢어지지도 않고 온전한 가족이 있다면 우리는 그 얌체꼴을 참을 수 없어 그 집 외동아들이라도 유괴할 것을 모의했을지도 모른다.

                                     박완서, ‘그 남자네 집’중에서


 모두가 함께 받는 고통이라면 나았다는 것일까. 남도 힘들다고 말하면 괜히 안심이 되었던 얌체 같은 내가 싫었는데, 이렇게 적나라한 감정을 마주하면 ‘난 그 정도까지 생각하진 않았다고!’하며 죄책감을 슬그머니 거두어들였다.

 마음처럼 되지 않는 일, 특히 자녀문제에 고민이 될 때, 연로한 부모님 일에 걱정이 되는 날이 많았다. 그런 날에는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말도 되뇌어보았다.


배가 똑바로 나아가려면 바닥짐을 실어야 하듯, 우리에겐 늘 어느 정도의 근심, 슬픔, 결핍이 필요하다.

  하지현 ‘어른을 키우는 어른을 위한 심리학’ 중에서


걱정과 불안과 고민에 무거워하던 나를 도와주던 글과 문장들이 한겨울을 버티게 했다. 그리고 내가 이제부터 걱정할 일은 오는 봄, 힘써 자라고 있는 꽃을 밟지 않게 주의하며 걷는 일뿐이다. 노랗게, 분홍 하게 필 봄꽃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그리고 겨우내 움츠리고 있던 나를 일깨워 다시 땅을 밟고 걸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한다. 던져버리고 싶던 문제들이 내 인생의 꼭 필요한 바닥짐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용기가 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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