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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빵굽는 건축가 Nov 10. 2021

동네 총무의 겨울 준비

2019년 11월 12일

아침에 동네 사람들과 함께 먹을 빵을 구웠습니다.
매주 일요일 아침 8시면 동네 청소도 하고 간단하게 간식도 먹습니다. 일요일 아침에 모이는 느슨한 규칙입니다. 강요하거나, 나오지 않은 동네 사람을 뒷담 화하거나 시비하는 일은 없습니다. 소소한 농담은 있습니다. 간밤에 있었을 법한 부부 사이의 애정에 대한 이야기부터, ˝이 친구 오늘 꽤를 피우고 있는 것 같은데˝ 정도의 가벼운 이야기입니다. 세월이 지나서 그런지 이런 일로 흉이 되지 않습니다. 우스개 소리는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2019년도 하반기는 제가 총무를 맡고 있어서 매주 진행할 마을 청소 거리나 이런저런 대소사를 챙기고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동네 대학생이 졸업을 하면 선물을 준비한다거나, 마을 회관 보일러 수리를 요청하거나 같은 일들입니다. 아파트에서 살 때는 생각도 안 해 본 것들이죠. 옆 집에 살아도 오며 가며 인사를 나누는 정도였지 이웃의 대소사를 챙겨본 적은 없습니다.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하면 불편한 것을 해결해주니 내가 살아가는 데 있어 손 쓸 일은 없었습니다. 눈이 많이 온 날도 눈 청소는 관리인 아저씨들 몫이었는데 우리 동네의 관리인은 자기 자신입니다. 대가를 줄 사람도 받을 사람도 없을 뿐만 아니라 눈을 치우지 않으면 당장 출근을 보장 못할 만큼 진입로가 얼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우리 동네 진입로는 동쪽 산비탈 아래에 있어서 겨울 아침 시간에 잠깐 해가 들고, 종일 그늘이 지는 곳이라 눈을 치우지 않으면 빙판을 걸어 다녀야 하기 때문에 눈이 오는 낭만을 즐기더라도 눈 청소는 반드시 해야 합니다. 새벽부터 눈이 오면 마을 카톡에 ‘띵동‘ 하고 글이 올라옵니다.

˝눈이 옵니다. 눈 치우러들 나오세요˝ 대충 차려입고 나가면 그때 기분이 참 좋습니다. 차가운 공기를 깊게 호흡하고 뽀드득 소리를 내며, 손에는 눈삽을 들고 걷는 나의 시간이 영화의 한 장면 같을 때가 많습니다. 오늘 아침 먹을 빵 이야기를 하다가 눈 청소까지 시간을 너무 앞질러 가는군요. 제 머릿속에는 다가올 겨울이 그렇게 그려집니다. 올해도 눈이 많이 올 것 같습니다.

마을 총무는 제비뽑기로 진행이 됩니다. 아주 단순한 선거라고 할까요? 마을 어른들 수에 맞게 만든 20장의 종이 중에 총무, 회장 이렇게 써 놓고 임기를 마치는 회장이 제비뽑기를 돌립니다. 일 년에 두 번 있는 선거인데 제비를 줍는 마음은 늘 떨리고, 우습고 그렇습니다. 어른들을 바라보는 아이들은 덩달아 소리치며 웃습니다. 아이들 눈에 우리 어른들의 모습은 어떻게 보일까요?

대부분의 회장 자리는 학력도 따지고, 덕이 좀 있고, 재력도 좀 있고, 나이도 있어야 가능할 텐데 우리 동네는 나이가 작아도 되고, 학력은 고려 대상이 아니고, 재력이 없어도 큰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나이는 조금 있는 게 도움이 됩니다. 그래야 실무를 담당하는 총무를 다독이고 마을 대소사에 시비가 걸릴만한 일들을 넉넉하게 처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살고 있는 우리들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좋겠다˝고들 합니다. 그런데 실은 이렇게 살기까지 10년의 세월이 둥글게 해 주었다고 할까요?

해를 넘기면서 의견을 맞추고 오해가 생기면 10개 중에 9개는 풀고, 한 개는 세월이 가면 해결이 되겠지 하고 적당히 묻어두고, 또 은근히 모른 척하기도 하고, 서로의 거리를 한 두 걸음 정도 띠어서 유지하며, 사생활을 보호해주는 이런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오늘 빵은 모두 3덩어리를 만들었습니다.
한 덩어리는 독일서 살다 오신 번역하는 형님댁에 드리고, 두 덩이는 아침 모임에서 먹었습니다. 막 구운 빵에 대한 환상도 있지만 마을 수에 비해 빵이 적어서 그런지 금세 빵이 없어졌습니다. 앞 집 형님은 빵을 더 부풀게 할 수 없느냐고 질문을 합니다. ˝형님 이 빵은 이스트가 들어가는 대신 발효종이 들어가서 그만큼 부풀수는 없어요, 더 부풀게 하려면 상업용 이스트를 넣어야 해요.˝ 이스트와 발효종의 차이를 설명하는 일이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분하는 것처럼 들릴 것 같아 더 이상 설명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한편으로는 저의 실력이 아직은 부족해서라는 말을 하기 싫었나 봅니다. 준비한 떡과 과일도 접시에서 금방 사라졌습니다.

늦게 오신 맨 앞집 누님 댁은 ˝8시에 모이랬다고 정시에 모이는 사람들이 어디 있어요. 우리는 빵도 못 먹어봤다.˝라며 아쉬워합니다. 오늘 빵은 제 손보다 조금 더 큰 빵들입니다. 숙성된 반죽 밀가루를 3덩어리로 나누다 보니 제 손안에 들어가는 크기로 자르고 모양을 내었습니다. 모양을 크게 나누면 오븐에 넣는 일도 번거롭고 가정용 오븐이 감당해야 할 열량도 충분하지 않아서 주먹보다 조금 더 크게 빵을 나누었습니다. 오븐에 들어가면 두 배 크기로 부풀어 오르는 빵을 볼 수 있습니다. 새로 구입한 빵칼 자랑도 하고 빵에 대한 이야기도 이어갑니다. 

그나저나 제 빵맛을 이해해 주는 7호 집 누님은 오늘 시골에 가을걷이하러 간다고 간식 모임에 나오질 않아서 조금 아쉽네요. 누나가 있었으면 ˝야 역시 아침 빵과 커피 너무 좋다˝고 입꼬리가 함지박 만하게 올라가고 엄지 척을 올리며 ˝세계 최고의 빵˝이라고 도무지 아무도 믿지 못할 말로 한껏 기분을 살려주는데, 누님의 빈자리가 눈에 뜨이는 아침입니다.

나이 먹은 어른들이 옹기종기 모여 몸을 붙이고 준비한 과일과 저마다의 일상을 밥상 위에 올려놓고 빵에 잼을 발라먹듯이 맛깔스러운 입담을 이야기에 발라 우리 모두를 웃게 합니다. 다음 주까지 보일러 수리도 부탁해야 하고 마을 수도 동파가 되지 않도록 뽁뽁이로 감싸 놓아야 합니다. 
숲에서 생활하는 다부치 요시오 선생은 겨울을 헤어리면서 성장한다고 합니다. 저도 겨울맞이 이야기로 동네 살이 하루를 시작합니다. 

<사람도 겨울을 헤아리면서 성장한다. 나는 이산에서 서른두 번째 겨울을 헤아렸다. 그리고 앞으로 서른세 번째 겨울을 헤아리려고 한다. _다부치 요시오, 숲에서 생활하다 중에서 >

빵맛은 입가의 표정으로 금방 알 수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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