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11일
아침 7시가 조금 안되어 오두막으로 갈 준비를 합니다.
먼저 따뜻한 커피를 내리고, 두꺼운 컵이 식지 않도록 뜨거운 물을 담아 데워냅니다. 갈색 산미가 진한 과테말라 커피와, 따뜻해진 하얀 머그컵, 노트북, 물이 담긴 티팟을 나무쟁반에 들고 뒷마당으로 향합니다.
오두막에도 책은 몇 권 있으니 준비가 다 된 것 같습니다.
새벽부터 비가 오고 있습니다. 이런 날은 마음이 차분해지네요. 산에서 들리는 빗소리, 산과 논 사이, 밭에서 들려오는 빗소리, 베지 않은 벼와 마주치는 빗소리가 켜켜이 겹쳐집니다. 그 소리에 저도 어울리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서, 오두막을 찾아갑니다.
한 손으로 쟁반을 가슴에 껴안고, 다른 한 손으로는 우산 손잡이를 들었습니다. 비 오는 날을 대비해서 뒷문에 빨간 우산이 항상 놓여있습니다. 시내에 가지고 다니기에는 너무 낡고 실밥도 드러난 우산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기능은 문제 될 것이 없어 버리지 않고, 문 한편에 두었던 것이 요긴하게 쓰이고 있네요.
우리 집 오두막은 나무로 지어진 것이라 여름과 겨울의 온도 차이에 따라서 문의 크기가 조금씩 달라집니다. 어림잡아 3~5mm 정도 될까요? 여름에는 나무가 습기를 먹어 벌어지면서 열리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지난여름이 그랬습니다. 비가 오고 나면 문이 뻑뻑해지면서 열고 닫는데 여간 불편한 게 아닙니다. 반대로 겨울이 되면 공기가 수축하고 대기 중에 습기도 30% 미만으로 낮아지면서 문이 마른다고 할까요? 잘 열리고 잘 닫힙니다. 요즘이 그렇습니다. 대신 그 틈으로 찬기운이 그대로 들어옵니다. 나무문의 특징입니다.
문제는 오늘 같은 날입니다. 비 오는 소리를 느끼고 싶어서, 커피와 우산을 들고 문을 여는데, 문이 열리지 않습니다. 분위기를 놓치고 싶지 않아 몇 번을 밀고 당기고서야 열 수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대패질을 한 번 더 하거나 엄지손가락 만한 나무 손잡이를, 장식 삼아서 하나 달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마음은 먹고 있지만 날이 맑으면 아마도 잊어버리겠지요.
제가 관여하고 있는 건축일 중에는 현장에서 짜야하는 원목 나무 창과 문들이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현장 목수들은 ˝또 이러신다˝는 표정을 지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렇게 하기를 10년이 넘었으니 이제 이력이 날 만도 한데, 창과 문을 나무로 만들 때마다 신경이 곤두서나 봅니다. 이유는 앞에서 오두막 문을 이야기 한 바와 같습니다.
원목 문과 창은 계절의 차이에 따라 신축과 팽창을 반복하면서, 열고 닫는데 불편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월이 좀 더 흐르면 문이 휘는 경우도 있습니다. ‘서투른 목수가 연장 탓을 한다 ‘는 옛말이 있지만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의 사정상 괜하게 목수 탓만 하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문이 휘고, 틀어지면 집주인이 불편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손을 보러 다녀오는 번거로움이 있습니다. 그런 탓에 외부와 맞닿는 곳에 나무문을 써야 할 경우에는 쇠로 된 파이프로 틀을 짜서 용접을 하고 겉에는 판재로 가공된 나무나, 쪽으로 나누어진 널을 사용 해서 마감을 합니다. 일전에도 작은 집 하나를 디자인하고 공사하는 중에 개방감 있는 양 미닫이 나무문으로 제안을 하자, 목수님은 틀어질 수도 있으니 기성 제품을 사용하면 좋겠다고, 잠시 동안 주거니 받거니 하며 서로의 주장을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괜찮지만 목문이라 변형이 염려가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기성 제품을 쓰기에는 작은집스럽지 않다는 제 주장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오랜동안 함께 일하다 보니 정이 들어, 싫은 소리를 서로 못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목수님 하고 정이 들어서 싫은 소리도 못하네요. 그래도 저는 목문으로 짜는데 한 표입니다.˝ 며칠 후 작은 집에 가보니 알뜰하게 나무문을 짜서 걸어 놓은 모습을 보고 괜한 웃음이 나왔습니다.
˝틀어지면 손을 보면 되지 뭘˝하는 목수의 표정을 보며 여전히 손맛을 좋아하는 목수들과 저를 보게 됩니다.
지난봄에 오두막 문은 제가 직접 만들었습니다. 습기가 많은 오늘 같은 날은 사용하기 불편하네요.
우리 집 오두막은 2.5평짜리입니다. 이 작은 장소에 현관 미닫이문, 여닫이 뒷문, 작은방 양 미닫이까지 모두 3개의 문이 있습니다. 문 하나를 두고도 쓰임과 형식이 다르기 때문에 문을 설치할 때는 그 장소에 어울리는 문을 만들게 됩니다. 신발을 신고 들어올 수 있는 봉당이 있고, 봉당에서 양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가면 1평 정도의 작은 마루방이 나옵니다.
작은방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마루라고 하는 편이 더 어울릴 것 같습니다.
준비해온 커피도 다 마셔가고, 아침식사 준비를 같이 할 시간이 되어갑니다. 나무는 손때가 들면 반들반들한 정감이 생깁니다. 오늘은 윌리엄 코퍼스웨이트의 핸드메이드 라이프를 읽고 몇 자 더 보태어 봅니다.
<내 집의 기원은 중아아시아의 스텝 지대에 있다. 내 펠트 부츠는 아시아의 목자들을 통해 핀란드를 거쳐서 온 것이다. 내 오이는 이집트에서, 라일락은 페르시아에서, 보트는 노르웨이에서, 카누는 아메리카 인디언에게서 온 것이다. 노를 만들 때 쓰는 굽은 칼은 베링해 연안의 에스키모에게서, 도끼는 19세기 메인주의 디자인에서, 픽업트럭은 20세기 디트로이트에서 온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문화 혼합체다. _ 윌리엄 코퍼스웨이트의 ‘핸드메이드 라이프‘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