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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인 Dec 05. 2023

네가 별로 보고 싶지 않다

단 하나도!


진짜로 안보고싶어.


저는 잘 지냅니다. 믿었던 내일은 당신처럼 까마득하니 같은 말로 돌고 도는 회문처럼 이 계절로 돌아와 한 번 더 고백합니다. 저는 당신을 사랑하며 거듭 진창을 뒹굴며 잘 지내고 있습니다.


현상현, < 당신께선 영영 이 편지를 모르셔야 합니다>


*

여행 중에 테오에게서 문자가 왔다.


여행사진 멋진데! 언젠가 홍콩에 가겠다더니 정말 해냈구나?


간신히 잊어가고 있었는데. 나한테는 쥐톨만큼의 관심도 없구나, 나만 좋아하고 있구나 하고 깔끔하게 접었는데. 꼭 이럴 때 연락이 와서 흔들어놓고 난리다. 당연히 나는 해내지. 나도 혼자 여행올 수 있어. 너 없으면 아무 데도 못 갈 줄 알아?


사실 혼자 오지 않았다. 직장을 그만두고 심심한 엄마가 여행경비 전액을 대준다고 하기에 따라온 여행이다. 여행의 전 일정을 패키지로 진행한 건 인생 처음이고, 그래서 상당히 힘들다. 만화 아따맘마에서 본 아리엄마와 승민엄마, 진주엄마의 여름휴가에 끼어있는 기분이다. 내가 주체라기보다는 거대한 힘에 의해 움직이는 여행. 나름대로 효율적이다. 하루가 너무 길고 일을 할 때보다 부지런하고 귀갓길이 퇴근길보다 피곤한 것만 빼고.


나는 지금 홍콩이다. 방금까지 마카오라는 나라에 있다가 온갖 수분을 다 빨리고 다시 홍콩에 들어왔다. 목소리 좋은 뺀질이 가이드가 온갖 재미난 이야기를 해주고 있을 때 테오도르를 생각하며 글을 쓴다. 난 홍콩에 왔어. 사실은 워싱턴 디씨에 가고 싶었어. 내년 2월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표를 끊었다가 취소한 것을 너는 평생 알 일이 없겠지. 더 이상 내 생각을 하지 않을 테니까.

며칠 전 미국여행을 위한 비자의 유효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메일도 받았다. 30일 남았으니 그 이후에 미국 입국 계획이 있다면 갱신하라는 내용이었다. 아무것도 잃은 것 없이 씁쓸해졌다. 그냥 그대로 없던 것처럼 폐기해 버릴 것이지. 내가 다시 미국에 갈 일이 없다는 걸 상기시켜주기나 하고.


나는 잘 지내고 있다. 매달 급여가 나오는 직장에 다니고, 조금 우울하지만 간간히 해외여행도 다닌다. 애인도 없고 사랑하는 사람도 없지만 외롭지는 않게 산다. 이제 너의 문자 한 통에는 시큰둥한 척 답장하고 오래 생각하지 않을 수 있을 만큼 잊었다. 나는 진짜, 하나도 네가 그립거나 보고 싶지 않다.


짜증 나. 나는 진짜 너 같은 거 하나도 생각 안 난다니까. 호텔에는 언제 도착하는지 모르겠다. 홍콩의 밤은 너무 길다. 테오도르의 문자는 아침 일찍 왔다. 아침 일곱 시 이십 육 분, 내가 조식 먹으러 샤워를 하고 있던 사이. 지금은 열 시 십 팔 분이다.


테오! 나는 오늘 마카오에 가. 마카오에서 가지고 싶었던 것 있어? 선물로 줄게.


테오는 대답한다.


오, 선물은 무슨. 편하게 즐기고 잘 쉬고 와.


하루종일 테오도르의 생각 같은 건 하지 않았다. 정말로, 한 번도 생각 안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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