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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인 Jan 05. 2024

불쌍하고 거대한 허연 짐승일 뿐

영화 <더 웨일>과 에세이


글쓰기가 힘들고 두려운 이유는 쓰는 사람이 대상을 창조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정희진, <영화가 내 몸을 지나간 후> 머리말 중



*

영화 <더 웨일>을 봤다.

솔직하게, 진솔하게 나에 대한 이야기를 쓰라고,

그것이 에세이고 그것이 글이라고 여러 번 이야기하는 영화다.


영화를 다 보고 나니 어쩐지 숙연해졌다.

사실 정말로 커다란 것은, 나의 몸의 형태와 일상의 대부분을 바꿔버릴 만큼 거대한 어떤 것은 글로도 보기 힘들 만큼 까마득한 일일 텐데. 당장 주제를 꺼내 들기만 해도 당장 화장실에 들어가 꺼억꺼억 울음이 나오는 그런 일일 텐데.

글로 쓸 수 있다는 건 나 자신으로부터 글로 표현할 수 있을 만큼 정리가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만해도 대수롭지 않게 상스러운 글을 쓰는 사람이지만 아직까지 제대로 들여다보기 어려울 만큼 두려운 것이 있다. 글이란 그런 것이다. 결국 스스로가 정리하지 못하면 문자로도 문장으로도 만들 수가 없다. 그 사건에 대해 무감해지던가, 용서를 했던가, 거리가 생겼던가 셋 중 하나다. 더 이상 내 일이 아닌 것들. 나를 위협하지 않는 사건들.

답을 찾지 못한 것은 계속 찾아 헤맨다. 어쩌면 그냥 방치해 놓는 것인지도 모른다. 모르는 것은 약이다. 영원히 모르는 게 어떤 때에는 더 좋은 길이다.

그래도 앙금은 침전물처럼 남아있다. 조그만 흔들어도 지저분하게 떠다닌다. 답을 찾지 못한 문제들이, 결고 걸러지지 못할 갈등들이. 솔직하다는 이름 하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했는지 생각한다. 다정하고 긍정적으로 세상을 보는 시각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리고 그런 사람에게 세상은 왜 이다지 모질게 구는지도.

말할 수 있는 것은 말할 수 있을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때 일을 떠올려도 삶을 버리지 않고 일상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치료되지 않았지만 감당할 수 있을 정도는 된다. 회상하고 곱씹고 그 일을 문장으로 구성해 낼 만큼의 정신이 있을 때 글을 쓴다.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글을 쓴다. 어떤 글은 그렇게 세상에 나온다.


글을 쓰는 것은 사람의 자유다. 애도하고 추억하는 것도 사람이 하는 일이다. 외계인들이 우리를 보면 고만고만한 가죽을 뒤집어쓴 인간 안에 이렇게나 많은 게 들어있을 거라고 상상이나 할까. 그 한숨한숨이 전부다 어떤 것의 증명이라는 것을. 글이 전부가 아니고, 글로써 나온 것들은 글을 쓴 사람 안에 더 많은 것들이 담겨있다는 것을. 그래서 글 아니면 사람 둘 중에 하나는 남아 있어야 한다는 것을.

솔직하게 쓴다. 그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에. 어떤 것은 쓸 수 없다. 구덩이만 깊이 파여있고 안이 보이지 않는다. 그저 까맣다고만 쓰는 것은 글이 아니다. 그 까만색이 어떤 색깔인지, 모래인지, 진흙인지, 파묻힌 게 있는지, 함정인지, 고문인지 알기 전까지는 쓸 수 없다. 그것은 그냥 내가 가지고 있는 구멍일 뿐이다. 아직까지 무서워서 들여다보지 못한. 정말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할, 그래서 글이 필요한 그런 것.


‘허먼 멜빌이 쓴 걸작 <모비 딕>은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고래는 감정이 없기 때문이다

자기를 죽이려는 에이헤브의 집착도 모른다

그저 불쌍하고 거대한

짐승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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