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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인 Jun 17. 2024

글기둥 하나 붙들고 여까지 왔네

하동의 박경리 문학관에서


글을 쓸 이유가 없지만 글을 쓴다.

사실 언제라도 글을 써야하는 이유같은건 없었다. 하지만 요며칠 내내 나는 기이하리만큼 글이 쓰고싶었다. 글을 써야 겠다는 마음을 꾹꾹 누르면서 잠들어야 할 만큼. 일어나야 할 일은 어떻게든 일어나게 되는 법이라고, 결국은 글을 쓰고야 만다. 목적성도 당위성도 없이 그저 쓰고싶어서 글을 쓰는 것은 고등학교 때 이후로 처음이다. 참 세속적으로 살았다.


지금 나는 박경리 문학관의 벤치에 앉아있다. 작가 박경리의 첫 시집 <못 떠나는 배>의 첫번째 시 앞이다. 지난주 수요일에 집을 떠나서 경북 영양과 안동을 거쳐 전주를 들렀다가 하동에 왔다. 여행이 아름다워 글을 쓰고싶었다. 하루가 지나는게 아쉽고 살아있는 것이 눈부셔서 이 모든 것을 글로 남기고 싶다는 충동을 참으며 보내온 닷새, 내일모레면 나는 다시 서울로 올라가고 또 척박한 일상으로 돌아가지만 이 순간 만큼은 절실한 마음으로 글을 쓴다. 작가 박경리와 대하소설 <토지>의 힘을 느끼며, 발바닥이 공중에 떠있는 기분으로 또 영혼이 가벼워서 하늘에 끌어당겨지는 느낌으로.


오늘은 얕은 구름이 하늘을 덮은 투명한 날이다. 여기까지 오는 길에 연곡사가 있는 피아골을 지나고, 봉순이와 양현이가 바라보던 섬진강을 지나고, 용이네와 칠성이네를 지나왔다. 이상하게도 살면서 처음 와본 하동이 바로 엊그저께까지 살았던 내 동네, 내 집 처럼 느껴진다. 사실 나는 토지를 다 읽지도 않았는데. 13권 중간을 간신히 지나는 중이라, 그저 성격급하게 책 속의 흔적을 따라잡고 싶어서 온 것 뿐인데. 하동 평사리, 최참판댁 표지판이 보일때 가슴이 울렁거리는 것이 느껴져서 헛웃음이 나왔다. 이게 뭐라고,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삶과 호흡과 죽음이 뭐라고. 그래서 글을 쓴다. <토지>는 인간을 움직이게 하고, 정동하게 하고, 작가 박경리는 의욕없이 살아있기만 하던 누군가를 당장 그 자리에 앉아 글을 쓰게 만든다. 글을 쓸 수 밖에 없었다. 작은 전시관을 꽉 채우고 있는 폭닥한 공기와 종이 냄새가, 벽에 걸린 토지 인물들의 연필 초상화가, 작가 박경리의 생전 비디오에서 들리는 단정한 목소리가.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중간중간 눈을 감고 어떤 단어가, 어떤 문장이, 어떤 표현을 가져다 붙여야 지금 내가 느끼는 것들을 가장 잘 담아낼 수 있을지 생각한다. 뇌가 숨을 고르는 기분이다. 좋은 출력으로 내 앞에 있는 것들을 공유하고 싶다. 왼쪽 지붕 위에서 새가 운다. 찌삐찌삐, 찌찌찌.. 듣고있으면 눈물이 나는 노래다.


박경리 문학관의 문이 열리면 눈 앞에 보이는 것이 있다.


그래, 글기둥 하나 붙들고 여까지 왔네.


숨이 턱 막힌다. 삶이 곧 글쓰기요 농민과 민초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작가가 되어 펜을 쥐었을때 가지는 호소력은 두려울 정도로, 숨 참을 정도로, 심장이 내려앉을 정도로, 그런 무언가가. 작가 박경리가 평사리 출신이 아니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작가는 무엇을 만드는 사람일까. 평사리가 내 고향인것 만큼 생명이 흘러넘치던 산자락과 계절의 풍경들, 이제는 목소리까지 들릴 것만 같은 역동하는 인물들의 표정과 삶은 어디서 온걸까. 말그대로 창조였다. 모든 생물은 세포에서부터 만들어지듯, 이끼나 개구리밥이 군집을 불리듯 그렇게 생태가 되어 뻗어나간 이야기. 삶이 있기에 끝나지 않을 이야기. 그 이전에도 이어져왔을 이야기, 작가 박경리.


그녀의 삶을 보고 있으니 글을 써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나는 죽고싶지 않지만 그렇다고 살고싶다는 의욕도 없다. 말그대로 그냥 살아 있다. 살아있으면 직장에서 요구하는 근무를 하게되고 밥도 먹게 되고 배변도 하게되고, 스스로가 한심해지고. 전원버튼이 꺼지지 않아 꾸역꾸역 작동하는 기계처럼 있다가 곧 장마가 온다기에 못참고 뛰쳐나왔다. 서울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액셀을 밟으며 어디로든 가고싶어서, 머리위로 끝이 없는 창공을 느끼고 싶어서. 이 회색 도시에 비까지 오면 정말 눅진눅진 늘어붙은 장판같은 매일을 보내게 될 테니까.

여행은 즐거웠다. 너무 즐거운 나머지 글이 쓰고싶어질 정도였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글을 쓰지 않은 이유는 단순하다. 참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글을 쓰지 않으면 못배길 것 같다는 생각을, 아쉬움을, 미련을 그냥 흘려버리면 글을 쓸 일이 없다. 사실 일상도 인생도 그런 적당히 좋고 적당히 별로인 하루하루의 연속이지만 오늘은 아니다. 나는 박경리 문학관을 기록한다. 살아있기 때문에 우연찮게 만나버린 너무나 벅찬 순간을. 내가 느끼는 것을, 지저귀는 새와 물기 가득한 신록의 풍경을.


나에게 <토지>를 추천해 준 동생이 이곳에 오고싶어했던 것을 생각한다. 지금은 연이 끊겨 닿을 수 없지만, 강능하다면 꿈 속에서라도 말해주고 싶다. 이곳은 정말 아름답다고, 참을 수 없이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은 곳이라고, 소설 속에 들어있는 시간만큼 응축된 울림과 박동이 가득 차있는 공간이라고. 너는 이곳을 좋아할 거라고.

당장이라도 눈물이 날 것 같은 새소리를 들으며 생각한다. 우리는 써야 할 글이 아주 많아. 네가 가진 것은 분명히 나보다 더 많을거야. 네가 창조해낼 것들을 기대해. 우리가 태어난 나라의 이만큼이나 멋진 곳 어딘가에는 너의 이름이 박힌 문학관이 세워지게 될 걸 알고 있다. 네가 언젠가 이곳에 와서, 내가 본 것을 느끼고 글을 쓰기를. 시간이 걸리더라도 언젠가는 내가 그 글을 읽게 되기를.


“토지는 공간과 시간 속에 존재하는 생명.

그 한의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는 그릇입니다. 나를 오랫동안 누르던 그늘과 그것에 저항하려는 삶과 생명에의 연민 -

글쓰게 하는 힘은 바로 그 생명에의 연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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