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 <태백산맥>을 다 읽은 지금!
민초여 자라라 더 높이 날아라
이승에서 못 이룬 꿈 저승길에 올라라
흙이 되어 다시 피는 꽃이 되거라
민초여 자라라 더 높이 날아라
몸퉁이를 비틀어야 하늘을 보는
농민의 혼을 담아 밤새 울거라
MC 스나이퍼 - 민초의 난
*
후유증이 극심하다.
책을 덮고 이 정도로 정신을 못 차린 것은 2022년 게일 아이스니츠의 <도살장>을 읽은 후 처음이다. 올해 상반기에 작가 박경리의 <토지>를 읽고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을 완독 한 지금, 누군가 뒤통수를 쉴 새 없이 때리는 것처럼 얼얼하다. 내가 보던 세상이 이렇게나 좁았다.
노란 은행잎이 도로를 물들이는 계절이다. 해가 드는 양달의 나무는 금괴처럼 번쩍거리고 높은 건물 아래의 나무는 아직도 풋풋한 녹색을 하고 있다. 원주 어느 마을의 800년 된 은행나무가 이번 주 중에 완연히 금색을 입게 될 거라는 소식을 들었다. 시간에 기대고 싶은 마음이다. 인간은 어떻게든 살아가게 되리라고, 어떠한 일이 일어나던 그것조차 역사의 일부일 뿐이라고.
태백산맥의 마지막 장은 부산 동백섬의 최치원 동상 아래서 읽었다. 눈이 부시도록 날이 좋은 아침이었다. 해운대의 새파란 바다와 녹색 동백잎이 꽃다발처럼 우거진 작은 정자에서 격동하는 최후. 염상진의 마지막은 모든 것의 마지막이었다. 그가 죽고 나서도 무언가 이어질지도 모른다고 기대했던 것이 무색하게, 시대의 종말을 맞는 것처럼 책이 끝났다. 1권에서 300여 명의 착취 지주 세력을 처단하던 염상진이, 짚으로 만든 몸을 하고 곡소리를 울리며 율어에 들어간다. 서민영 선생과 김범우가 퍼올리는 흙 아래 묻힌 상처 많은 머리. 무덤 앞에서 맹세하는 살아남은 자들의 결의마저도 처절하지만 미약하다. 끝이 보이는 싸움이 이렇게나 슬프다. 그렇게 도래한 세상에서 살고 있는 인간은 100년도 채 지나지 않아서 역사와 기록에 뒤통수를 맞는다. 진통제를 씹어 넘겨야 할 만큼 강한 통증으로.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mc 스나이퍼의 노래를 계속 들었다. 침묵 속에서 운전을 하고 있자니 머릿속이 더 복잡해져서 아무렇게나 틀어놓었다가 흘러나온 노래다. 나비의 날갯짓을 생각한다. 하나의 작은 움직임이, 미미하고 사소한 변화가 역사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지. 민초가 꿈틀거리며 지켜낸 나라, 민초가 뿌리 뽑히며 망가진 나라다. 동학농민운동에서 죽창을 잡은 농민들은 일제 치하에서 독립운동을 하며 은신했고, 인간의 평등과 자유를 외치며 좌익이라는 이름으로 개혁을 꿈꿨다. 당최 무엇인지 몰랐던 좌익의 개념이 비교적 또렷해졌다. 그것은 인간을 위한, 인간이 주체가 되는 사상인 것이다. 모두가 사람답게 살자는, 굶주리고 구차할 일 없이 서로가 서로의 지지대가 되어 살자는 것이다. 그러한 세상이 도래하기에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박살 나버린 세계사. 이제 돈이 세상을 구한다. 돈이 사람을 죽인다.
신분제가 철폐되었다는 한국에서, 나는 계속 이 노래를 듣는다.
소 돼지만도 못한 노비의 삶도
천대받아 존경받는 인간의 삶도
실낱같은 꿈이 있어 살았노라
가족 같은 벗이 있어 웃었노라
사람답게 살고파 인간답게 살고파
한 자가 남짓한 지팡이를 유산으로 남긴 자는 나뿐이오
사람답게 살고파 인간답게 살고파
빌어먹던 쌀 한 줌은 나의 넋이요
빌려 쓰던 몸뚱이는 내가 아니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