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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인 Sep 02. 2024

여행이 별 것이 아니구나

때로는 그냥 걷기만 해도 여행이야

집 주변만 해도 새로운 것들이 가득하니까.


그런 시절이 있었지. 그런 시절이. 꽃구름 같은 시절이라 할까 통곡의 시절이라 할까. 지나간 시절은 아름답다. 이제는 아름다운 것이 되었다. 산천도 사람도 처절한 비애, 젊었던 육신도.


박경리, <토지 6>


*

재택근무 날 정말 재택근무다운 일정을 보냈다. 아침 10시부터 2시까지 끙끙거리면서 간신히 성과평가를 끝내고 주말 내내 일한 탓에 에이전시와의 밀린 연락을 처리했다. 쌓였던 영수증도 정리하고, 남은 예산을 계산하고. 사무실에서보다 더 열심히 일한 적은 처음이다. 재택근무를 신청한 날에는 집에서 컴퓨터만 켜놓고 땡땡이를 쳤는데. 자랑이 아닌 것을 안다. 이번 회계연도의 성과평가를 제출하면서 생각했다. 아마도 나는 이 회사의 정직원이 될 일은 없겠구나. 이 회사는 나와 재계약을 해주지 않겠구나. 시키는 대로 하고 있지만 피드백이 없으니 불안감이 든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맞나? 다들 자기 일에 너무 바빠서 내가 해놓은 게 별것 없다는 게 성과평가 시즌이나 되어서야 만천하에 드러나는 게 아닐까? 무섭다. 회사생활은 대체 뭘까. 나는 어떻게 해야 회사가 놓치기 싫을 만큼 일 잘하는 직원이 될 수 있을까. 나는 이미 알고 있다. 그렇게는 평생 될 일이 없다는 걸. 붙들어놓고 지시한 일이나마 꾸역꾸역 만들어 내기도 버거운 인간이라는 걸. 에라, 모르겠다. 다시 해외로 떠날 준비나 해야겠다.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도전하고 싶은 것이 없어도 무작정 떠나고 싶다는 마음은 있다. 다음 달 안에 비자나 신청해 둬야지. 회사에서 재계약이 되지 않거나 정직원으로 전환되지 않으면 곧장 방을 빼고 호주로 날아가야 하니까.


업무를 다 해도 출퇴근시간을 빼니 6시 반이다. 아침부터 날이 좋았는데 깨끗한 하늘을 보면서 일하는 게 고역이었다. 오랜만에 절실하게 밖에 나가고 싶어졌다. 한동안 술 먹고 밥 먹고 숙취에 시달리느라 몸무게를 보지 않았더니 복부 주변에 살덩어리가 득실득실하다. 근 일 년 만에 운동복을 꺼내 입고 집 근처 둘레길로 지도를 찍었다. 편도 35분이니 저녁산책에 적당한 거리다. 가는 길은 여행 같았다. 여러 번 지나온 길을 걷다가도 어느 순간 낯선 곳이 펼쳐져 있는. 이 근처는 대부분 월요일에 닫는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인적 없이 한가한 한옥마을을 구석구석 쏘다니고 있자니 인파 없는 날에 얻어걸린 기분이다. 느긋하게 걸어서 보물 같은 곳을 많이 찾았다. 있는 줄도 몰랐던 회의군 이영의 묘역이나, 한옥마을 앞에 있는 박물관의 전망대 같은 것. 새로 오픈한 현지몽골여행 여행사 같은 것. 북한산이 보이는 곳은 경치가 좋다. 어쩐지 눈물이 핑 도는 그런 풍경이다. 내 나라와 하늘과 목숨이 조금 가치 있어지는 그런 풍경. 아무도 없는 생태공원과 전망대에서 그림처럼 펼쳐진 바위산을 보고 있자니 꼭 차를 타고 교외로 방방곡곡으로 나가지 않아도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어디론가 나갈 생각만 했을까. 집에서 걸어서 30분 거리에 이런 곳을 두고는 1년 동안 거들떠보지도 않고서는. 하필 해가지기 직전의 애매한 저녁이라 사람이 더 없었다. 진관사 앞까지 올라갔을 때는 사찰에 입장이 제한된 시간이라 숲길을 걸었다. 라벤더색으로 변해가는 하늘을 보면서 엄마가 왔다면 좋아했을 텐데, 하고 잠깐 떠올렸지만 이미 끝난 일은 어쩔 수 없다. 다른 사람 중에서 골라볼까. 누구와 같이 오면 좋을까. 또 누구랑. 어떤 사람이랑.


아.


아무도 없구나.


그래도 이 풍경을 내 눈에는 담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이 서늘하면서도 포근한 초가을의 공기를, 노을을 얹어서 파랗게 보이는 숲의 입구를, 전봇대의 줄이 가로지르는 보라색 하늘을. 적어도 나는 보았다.

좋은 곳에 누군가를 데려간다는 건 생각보다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그 사람이 나만큼 여기를 좋아해 줄까, 내가 모르는 어떤 부분이 마음이 안 들거나 취향이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누군가를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 어렸을 때는 어찌나 쉽게도 누군가를 믿고 고집부리고 괴롭혔는지. 그래서 아무도 없나 보다. 이 공간을 나와 같이 공유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나만큼 좋아할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 아무리 예뻐도, 아무리 소중해도, 아무리 자랑하고 싶어도 그 기준과 만족도는 각자 다른 법이니까. 내가 기대한 행복감에 실망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나는 없는 것이다. 이 좋은 순간을 공유할 누군가가,


아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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