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여장부!”
오가다는 소리를 질렀다.
“뭐라구요?”
인실이 얼굴을 쳐들었다.
“그래보고 싶었어요. 무슨 말이든 외쳐보고 싶었어요.”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웃는다. 안경 속의 눈이 물결같이 흔들린다. 형용할 수 없는 환희가, 핏줄이 터질 것만 같은 충일감이, 이 여인을 사랑하기보다 이 순간을 사랑한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기쁨이 그를 겸손하게 하였고 양보하게 했을 뿐이다. 소유하자는 생각도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오가다는 이미 소유했다는 확신 속에 있었다. 인생의 비밀을 두 손안에 꽉 쥐고 있었다.
박경리, <토지 11>
*
인터스텔라라는 영화를 싫어했던 적이 있다. 내용도 재밌고, 영상미도 멋진데 마치 온 우주가 아빠와 딸의 사랑을 위해 돌아가는 것 같은 모양새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때 나는 대쪽같이 이렇게 생각했다.
저런 게 진짜였다면 이렇게 해피 엔딩일리가 없어. 아빠는 우주선 안에서 혼자 죽었을 테고 블랙홀에 들어가도 팔다리 성하게 나오지 못했겠지. 인간의 몸이 해봤자 얼마나 버틴다고. 만약 정말 운 좋게 멀쩡히 돌아왔대도, 정신이 이상해지던가, 응. 뭔가 고장이 났을 거야. 저만큼의 우주를 온몸으로 겪으면. 딸도 마찬가지 아닌가? 암호를 찾아낸 건 그렇다 쳐도, 저만큼이나 나이 들어서 젊은 아빠를 보고 눈을 감다니 너무 작위적이잖아. 현실은 절대 저렇지 않아. 어느 한쪽이 죽던가, 만나지 못하던가, 그대로 멸망해 버리던가. 차라리 부녀가 애틋하게 만나지 않았다면 더 그럴듯했을 텐데. 다 좋은데 마지막이 별로네. 영화가 둘의 사랑에 역성을 든 나머지 그 외 모든 것들을 재료로 만들고 말았어. 부녀가 만나지 아니었으면 정말 별것 아니었던 이야기로. 아쉽다. 조금 더 현실적이었더라면. 설득력이 있었더라면.
아니야!
세상은 사랑이 구하는 거야.
사랑이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거야.
다시 생각해 보면 인터스텔라는 줄창 사랑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영화였다. 본지 오래되어 정확히 기억나지 않기는 하지만, 정말 사랑이 아니면 일어날 일도 없고 납득되지 않는 관계들로 가득했다. 자식들을 더 살아가게 하기 위해, 자식의 자식들이 더 건강하기 위해 어느 쪽도 고통스러운 선택지를 두고 우주로 가는 아버지나 대의를 뒤집어쓰고 연인의 생사가 절실해 탐사에 들어온 과학자, 딸이 떠나버린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미워하고, 원망하는 마음들. 그것은 모두 사랑이었다. 사랑이 아니면 세상은 돌아가지 않는다. 세상이 멸망하는 중에도 끝끝내 사랑은 남아있었고 그것은 지구를 구했다.
분명 나는 스스로 SF 장르를 싫어한다고 말하는 사람이었는데. 비문학이나 과학 따위는 나랑 맞지 않는다고 선을 긋던 사람이었는데. 내가 모르는 환경과 설정에 대해 상상하고 이입하는 과정이 귀찮았다. 작가가 만들어낸 허구 속 세상에 바보처럼 휘둘리는 것 같았다. 그런데도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원작이 된 소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를 읽다가 찔찔 울었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를 보면서는 줄줄 울었기 때문이다. 맞아, 이렇게 낯설고 웅장하고 발전되고 우주적인 세상에, 내가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건 결국 인간이구나.
사이언스픽션은 인간이 구현할 수 있는 가장 거대한 스케일의 로맨스 장르라는 말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차원과 행성을 넘어서, 그럼에도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게 하는 것은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 사랑이라는 감정이라는 것을, 자꾸만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블랙홀과 우주에서, 바닥이 없는 심해에서, 멸망해 가는 세상에서, 존재가 의미 없는 미지의 공간에서.
오늘은 일찍 퇴근하고 인터스텔라를 봐야겠다. 비가 주룩주룩 오는 밤, 사랑이 비처럼 별처럼 쏟아지는 로맨스를 보고 싶다. 억겁의 시간을 넘어, 우리가 살아있는 걸로도, 아직 당신을 기억하고 기다리고 사랑하는 것만으로도 행성 하나를 떠나 인류의 삶의 터전을 만들어낼 수 있는, 그런 로맨스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