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은 쉬지만 투쟁은 쉬지 않는답니다
죽겠다.
몸이 부서질 것 같다.
오늘은 쉬어야겠다. 나도 살아야 하니까.
주말에 을지로 한화빌딩 앞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노동자들의 연대투쟁호 진수식에 갔다가 중간에 나와서 글쓰기 강의를 들었다. 강의가 끝나자마자 광화문에 가서 범시민 대행진을 했다. 그리고 합정으로 넘어가서 바 다섯 군데에 들러 일을 하고 새벽 두 시에 귀가.
힘들다.
일요일은 민주동덕 집회에 갔다. 네시에 가서 집회가 끝나는 여덟 시까지 앉아있다가 경복궁 역 근처로 일하러 갔다. 조금 과음을 해서 새벽 세시에 일을 마치고 귀가.
힘들다.
어제는 숙취로 골골 앓다가 저녁 6시 30분에 있는 한화빌딩 앞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노동자 투쟁 승리 연대문화제에 참석했다. 문화제 끝난 직후에 동대입구 역 인근에서 일을 하다가 밤 11시에 귀가. 온몸이 욱신욱신하다. 다람쥐가 내 몸에 구멍을 파고 돌아다니는 것 같다. 어제는 술을 마시지 않고 일했다. 힘들어 죽을 것 같아서.
사실 죽지 않는다.
엄살이다.
오늘 하루는 통으로 쉴 계획이라 아침에 눈을 뜨고 아직까지 이부자리에서 뭉그적대는 중이다. 하늘만 보다가 할 게 없어서 카프카의 책을 읽었다. 변신, 13년 만에 읽는다. 아침에 눈을 뜨니 벌레가 되어버린 남자와 가족들의 이야기.
예전에 <변신>을 가지고 썼던 글을 보니 그레고리가 벽을 기어 다니는 것을 즐기는 장면만 보였나 보다. 지금 나는 그레고리가 바이올린 선율을 듣는 장면만 기억에 남는다.
음악이 그를 이토록 사로잡는데 그가 한 마리 동물이란 말인가?라는 문장도.
그리고 인간은 음악을 좋아할 수 있는 종들을 수없이 죽여먹어 온 동물이라는 것도.
정체성과 존재 가치에 대해 할 말이 많지만, 이것이 오늘 글을 쓰는 이유는 아니다. 오늘의 독서에서 메모한 문장은 이것이다.
아버지는 두 여자에게 의지하여, 마치 스스로에게 자기 자신이 더없이 무거운 짐이나 되는 듯이, 성가셔하며 몸을 일으켜, 여자들이 자신을 문까지 이끌어가게 내버려 두었다가 문에 이르면 물러가라는 손짓을 하고는 거기서부터 혼자서 걸어갔다.
스스로에게 자기 자신이 더없이 무거운 짐이나 되는 듯이.
몸은 항상 무겁다. 오십 킬로가 넘는 근육과 살과 뼈덩어리들이 내 마음대로 움직여주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이 것을 다루는 건 버거운 일이다. 내가 너무 고생을 시키니? 혈소판과 백혈구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나도 할 수만 있다면 내 육체의 노동권을 보장해 주고 싶다. 근면히 일했으니 하루이틀 무덤처럼 쉴 수 있는 시간을 주고 싶다. 내 세포들은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까?
나는 내 몸을 너무 아껴서, 아프거나 힘든 것을 질색하는 사람이다. 머릿속에 있는 걸 정돈하기에도 힘든 세상에 몸뚱이까지 아프면 화가 나서 폭탄처럼 터져버릴 수도 있을 테니까. 그런데 지금은 마치 세상이 나 없으면 돌아가지 않을 거라는 듯이 성가셔하며 몸을 일으켜 매일 있는 투쟁의 지도에 함께하고 있다. 나 하나 더 간다고, 나 하나 없다고 세상은 변하지 않을 텐데.
나를 꾸역꾸역 의자에서 일으켜 방문 앞까지 데려가는 두 여자는 양심과 희망이다. 평소에는 어디에 있었는지 보이지도 않게 꽁꽁 숨어있다가 내란의 밤 이후로 죄다 튀어나와서 시끄럽게 군다. 너 이러고도 떳떳하게 살 수 있겠어? 그 사람들을 추운 바닥에 팽개쳐두고 밥이 넘어가겠어? 네가 지금까지 빚을 지고 살아왔다는 걸 몰라? 이제 정말 변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꽉 막혀서 답이 돌아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벽에 금이 가고 있잖아. 세상에 영원한 불통은 없을지도 몰라. 진실과 진심은 힘이 세니까. 그 순간을 보지 않아도 되겠어? 그 모든 걸 직접 내 눈으로 봐야 하지 않겠냐고.
정말 힘들면 글도 쓰지 않는다.
정말 아프면 투쟁하지 않는다.
나는 할 만하기 때문에 하고 있고, 내가 한 것에 후회해 본 적이 없다.
나는 2월 18일에 거제 창원지방법원에 간다. 1박 2일 농성을 할 수도 있고, 문화제에 참여할 수도 있겠다. 멀다며 징징대고 긴 운전에 툴툴거릴 수 있겠지만 문 앞까지 양심과 희망에게 끌려오는 척을 했으니 남은 길은 혼자서 간다. 내 선택으로 내 발로 내가 옳다고 생각해도 간다.
아, 진짜 몸이 부서질 것 같다니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