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삶의 방향을 바꿔준 둥지 –
1979년 8월,
한여름 땡볕이 내리쬐던 날.
나는 육군 3사관학교 충성대
연병장에 서 있었다.
공기는 긴장으로 가득했고,
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군가와
제식 구령이 귓속을 찔렀다.
정문을 통과하자마자,
아바타처럼 똑같은 선배들이
우리를 둘러쌌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들이 1년 선배였다.
하나같이 반듯한 체형과 꼿꼿한 자세,
마치 복사된 듯 똑같았다.
손에 쥐고 있던 애인 전화번호 쪽지,
담배, 어머니가 건네준 손수건까지
순식간에 사라졌다.
팔도에서 모여든 낯선 우리는
선배들에게 순서대로 인계되며
새로운 질서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300미터 지옥
막사까지 300미터도 채 안 되는
거리였지만, 그 짧은 길은 지옥과 같았다.
“선착순!”, “푸시업!”, “토끼뜀!”, “오리걸음!”,
군가까지 부르며 온갖 구실로 정신과
몸을 압박했다. 그 순간부터, 진짜
‘군인의 길’이 시작되었다.
가입교 한 달, 짐승에서 군인으로
막사에 들어서자, 광목처럼 뻣뻣한
군복이 몸에 걸쳐졌고, 군화는 발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억지로 끼워 넣어 익숙하게
만들었다.
곧장 이발소로 끌려가 머리를 빡빡 밀었고,
거울 속 내 모습은 영락없는 죄수였다.
겉모습만 군인일 뿐, 마음은 아직 준비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그 후 한 달간, 새벽 구보,
밤늦은 얼차려, 끝없는 제식훈련까지
이어졌다. 처음엔 힘듦만 느껴졌지만,
시간이 지나며 깨달았다.
이건 우리를 ‘군인’으로 빚어내는 하나의
의식이라는 것을. 가입교 한 달은 인간을
단련시키는 첫 관문이었다.
정식 입교, 새로운 시야를 얻다
한 달 뒤 정식 입교로 본격적인
사관생도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 후 2년의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갔다.
나는 더 단단해진 모습으로,
세상 밖으로 나설 준비를 마쳤다.
1981년 9월 4일, 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가장 푸르고 앳된 얼굴로,
경기도 양주 회암리에서 보병 소대장으로
첫 발자국을 남겼다.
2년간 보병으로 뒹굴던 나는
문득 하늘을 떠올렸다.
“하늘을 날고 싶다.”
결심은 단호했고, 전과하여 꿈에
그리던 헬기 조종사가 되었다.
하늘 위에서, 시야가 넓어지다
처음 헬기 조종간을 잡았을 때,
온 세상이 발아래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
보병으로서 땅에서 보던 표적과
조종사로서 하늘에서 바라본 표적은
완전히 달랐다.
시야가 넓어지자, 이전엔 보이지 않던
길도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 깨달았다.
인생도 어디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가능성이 열린다는 것을.
생각의 힘, 군대라는 인문학
스티브 잡스는 말했다.
“나의 혁신은 인문학의 힘을 빌렸다.”
나에게 군대와 하늘에서의 시간은
바로 그 ‘인문학’이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넓혀주고,
생각의 깊이를 키워주었다.
그 경험들은 지금도 내 안에서
조용하지만 단단한 울림으로
남아 있다.
그 길의 끝에서 나는 하늘을 선택했다.
다음 글에서는 육군항공학교에서
조종사가 되어가던 6개월의
이야기를 들려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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