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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hilosophers needlework Mar 12. 2024

일단 밑줄부터 그어 보시죠

- 책을 읽기만 하는 것은 독서가 아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다 보면 누군가 열심히 밑줄을 그어 놓은 책을 만나게 될 때가 있다. 처음에는 공공도서관 이용 예절을 모르는 한심한 인간이구나 하고 화가 난다. 하지만 연필로 줄을 그었다가 지운 흔적이 지우개 때와 함께 있는 것을 보게 되면 풉 하고 웃게 된다. 그러면서 나도 그 문장들을 따라 읽으며 이 사람은 여기에 왜 밑줄을 그었을까 생각해 본다.      


 책을 읽을 때 나는 이런 이유들로 밑줄을 긋는다. 


  ‘어쩌면 내가 썼는가 싶게, 하고자 하는 말을 정확하게 표현한

   비유적 표현이 너무나 멋진 

   동의하지 않는, 그러나 생각해 볼 가치가 있겠다 싶은 

   간직하다가 나중에 다시 꺼내어 보고 싶은 

   누군가에게 꼭 알려주고 싶은 

   ……’      

스티커를 이용해 밑줄 긋기

 빌린 책에서 다른 사람이 밑줄 그은 부분을 보며 나도 그곳에 밑줄을 그었을 것 같으면 왜인지 반갑다. 한 번도 마주친 적 없었을, 마주칠 일도 없을 타인과 연결된 느낌이 든다. 기분이 조금은 좋아지면서 살 만해진다. 그래도 공공도서관 장서에 밑줄을 그어서는 곤란하다. 그렇다고 책 모서리를 접어서도 안 된다. 빌린 책에 밑줄을 긋고 싶을 때는 북마크 스티커, 롱 인덱스, 책 플래그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 반투명 필름을 사용하면 좋다. 이 필름을 붙이면 글자가 잘 보이고 나중에 떼어서 여러 번 쓸 수도 있다. 


 책을 읽고 싶은데 잘 안 돼요, 책을 끝까지 못 읽겠어요, 책을 다 읽기는 했는데 감상문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어요, 이런 말을 가끔 듣는다. 물론 나도 그렇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정말 진지하기까지 해서 어떻게든 도움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해 보았는데 책에서 잊고 싶지 않은 문장을 만나면 밑줄을 긋고 그 부분들을 적는 것으로 감상을 대신해도 괜찮을 듯싶다. 많은 문장들 속에서 내 마음에 와닿는 문장과 그렇지 않은 것을 고르는 일은 지성을 필요로 하므로 자신감을 가져도 된다. 이렇게 시작하다 보면 할 말이 생긴다. 그럼 쓰면 된다.


 시인이자 아동문학가이며, 번역가이자 수필가이기도 하며 평론가였던 오사다 히로시는 그의 에세이집《책은 시작이다》에서 “모든 것은 독서에서 시작됩니다. 책을 읽는 것이 독서가 아닙니다. 자신의 마음속에, 잃고 싶지 않은 말을 쌓아두는 곳을 만들어내는 것이 독서입니다.”라고 썼다. 책을 읽는 일이 행위에 그치지 않고 사람과 삶에 있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생각해 보게 하는 문장이다.  

 

  책을 안 읽었어도 읽은 것처럼 아는 척할 수 있게 해주는 콘텐츠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아직도 책을 읽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반갑고 고맙다. 그들은 자세히는 몰라도, 설명할 수는 없어도 직접 책을 읽는 것에는 무언가 다른 점이 있음을 감으로 알고 있다. 연대 의식을 느낀다. 나는 책에 담긴 시간을 이해하는 그들과 그곳에 함께하기를 원한다.     

 

잘 안 읽어짐에도 계속 읽기를 고민하는 여러분들!

여기서 나아가 써 보고자 애쓰는 동지들! 

일단 밑줄부터 그어 보시죠. 

그리고 그다음은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해 보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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