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hilosophers needlework Jun 04. 2024

어느 날 남편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 "한두 글자 사전"의 서문

 남편은 ㅡ와 ㅓ발음에 취약하다. 서울에서 생활한 지가 고향인 경남에서 산 시간보다 훨씬 길건만 여전히 그 발음은 어려워한다. 평상시에는 티가 잘 안 난다. 하지만 발음을 의식하는 순간 더 안 된다. ‘성희’라는 친구가 있는데 그 이름이 ‘승희’라는 사실을 최근에야 알게 되었다.

 다른 단어들은 혹여 발음이 틀렸더라도 맥락으로 이해하면 소통에 문제가 없다. 그렇지만 고유명사의 경우에 틀리면 곤란할 때가 있다. 내가 못 알아들어서 다시 물으면 더 틀리게 발음한다. 역시 알아채지 못하면 소리를 크게 하여 나름 또박또박 말한다. 나는 목소리가 작아서 못 들은 게 아니라고 한다. 결국에는 괜히 서로 서먹해진다. 아주 중요한 때는 써 보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이런 일이 되풀이될 때마다 참 궁금해진다. 초등학교 때 받아쓰기 백 점을 어떻게 맞았는지. 선생님이 틀린 발음으로 단어를 불러주면 틀리게 받아쓸 수밖에 없었을 텐데. ‘성희’라 부르고 ‘승희’라 쓰는 방식으로 시험을 보았나 보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도 아니고 참으로 힘들었을 것 같다.      

 남편에게 ‘서슴없이’와 같은 단어는 너무나 어려운 단어다. 한 음절씩 끊어 소리 내 본다. 그때는 발음이 된다. 하지만 연결해 읽을 때는 ‘스슴없이’나 ‘서섬없이, 스섬없이’가 되고 만다. 나랑 딸은 엄청 많이 웃어서 눈물이 났고 뱃가죽이 당기고 허리가 아프다. 남편은 힘들다고 그만하자고 한다. 진심으로 힘들어 보이기는 한다. 다음에는 ‘쓰르라미’를 말해 보라고 해야겠다.

 그런 사람이 글을 썼다. 발음 좀 정확하게 못 한다고 글을 쓰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그림은 아니므로 분명 글이라 불러야 마땅하겠지만, 글이라 단언하기에 뭔가 걸리는 것은 왜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짐작해 보자면 남편이 글 쓰는 것을 본 적이 없어서거나 오래되어 잊어버린 탓인 것 같다.      

 남편은《한 글자 사전(김소연 글, 마음산책 펴냄)》을 보고 떠오르는 생각을 스마트폰 메모장에 적기 시작했다. 나름 퇴고도 하는 듯하다. 어느 날 수줍게 보여주며 글쓰기는 참 어렵다고 했다. 기대 이상이라고 호평했더니 ‘기대가 얼마나 낮았기에’라고 중얼거리면서도 내심 기뻐하는 것 같았다. 술이 거나해져 돌아온 날에도 소파 끄트머리에 대충 걸치고 앉아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핸드폰에 뭔가를 적어 넣었다. 지웠다 썼다 하면서 큭큭거리기도 하고 심각해져서 화면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하였다. 딸과 영상통화를 하고 있으면 자리를 지키고 앉아 대화에 끼어들기도 했다. 예전에 없던 행동이었다.

 딸과 내가 매우 즐거워하자 남편은 놀라워했다. 계속 쓸 용기가 생긴다고 하면서 열심히 써 보겠다고 하였다. 남편과 딸과 나는 “한두 글자 사전”이라는 이름의 워드 파일을 공유하고 각자 글자 색을 달리하여 함께 써 나갔다. 한둘 서너 음절로 된 단어를 소재 삼아 생각을 간단하게 정리해 보는 형식의 글이다. 남편이 쓴 것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육칠십 개 정도 항목이 만들어졌을 때 브런치 연재를 위해 합평을 하기로 했다. 주말마다 시간을 정해 나름 편집 회의 같은 것도 하면서 발행 시기와 방법을 의논했다.      

 우리는 매우 치열하게 의견을 나누었다. 뜻이 충돌하여 접점을 찾기 어려울 때는 필자의 입장을 우선하기로 했다. 가끔 글에서 경상도 사람의 태생적 한계인 ㅡ와 ㅓ 구분이 헷갈려서 틀리게 쓴 것이 발견되기도 했지만 감성이 다칠세라 되도록 안 고쳤다. 여기서 잠깐 내 의문이 풀리기도 했다. 역시 받아쓰기 백 점은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다. 교과서에 나온 것들로만 시험을 보았으니 들리는 것과 쓰는 것을 따로 외워서 선생님이 ‘하늘 천’하면 학생이 ‘따 지’하고 장단이 잘 맞았을 뿐인 거였다. 언어학자들이 이 문제를 연구해 주었으면 하는 강한 바람이 있다.     

 우리는 “한두 글자 사전” 이야기를 하며 적잖은 시간을 보냈다. 배꼽 빠지게 웃을 때도 많았다. ‘나무’에서 주어의 위치가 애매하여 나는 ‘작년에 너무 안 이뻤던 집사람’이 되었고 심지어 ‘미친년’이 되기도 했다. 지금도 우습다. 가족 모두 열렬히 편집에 참여하면서 뭔가 끈끈한 가족애 같은 것이 생기는 것 같았다.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 구체적으로 알게 되니 더 깊이 이해하는구나 싶었다. 무엇 때문에 싸웠는지도 모르면서 화해한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남편의 글은 얼른 보면 말이 안 되는 것 같은데 다시 읽어보면 이상하게 말이 된다. 다시 읽게 하는 힘과 맛이 있다. 글이 그러면 된 거 아닌가. 때로는 먼저 써 놓고 나서 의미를 발견하는 경우도 있다. 시와 산문 사이 그 어딘가에 있어야 할 것 같아 장르를 말하기도 어렵다. 한국도서분류표에서 818번(르포르타주 및 기타: 인용구, 경구, 표어, 일화집, 수상록, 수기, 콩트 등)을 받을 것 같은 글이다. 그러고 보니《한 글자 사전》도 818번 대에 위치한다. 어머니나 아버지가 다른 형제자매 같다.

작가의 이전글 어머니는 왜 죽고 싶어 했는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