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비츠키, 지블랫의《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를 읽고
고층 빌딩이 지어지기 전 건축가들은 무엇보다 지반의 상태를 면밀히 조사한다. 아무리 화려한 외관과 혁신적인 설계를 자랑하는 건물이라도 그 아래 지반이 연약하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위험한 균열이 생기고 결국 기울어져 붕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라는 정치 체제 역시 마찬가지다. 겉으로는 웅장하고 단단해 보이는 민주주의 제도가 실은 약한 지반 위에 세워져 있다면 우리가 느끼는 안정감은 일시적인 환상에 불과할 수 있다.
강도가 약한 토대 위에 세워진 건물은 처음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인다. 누구도 그것이 매일 0.1밀리미터씩 기울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한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창문이 깨지고, 벽에 균열이 생기며, 엘리베이터가 멈추는 순간이 오면 사람들은 놀라게 된다. 그러나 그 붕괴는 갑작스러운 사건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친 침하의 결과다. 민주주의의 붕괴도 이와 다르지 않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선거, 삼권분립, 언론의 자유와 같은 제도적 장치들이 실은 불안정한 타협의 산물이라면 그 기울어짐은 서서히 일어난다. 처음에는 승자독식 선거제도의 불공정함을 당연시하게 된다. 다음으로는 소수의 권력자들이 다수의 의견을 무시하는 것을 용인하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 체제를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를 읽으며 반성과 함께 민주주의에 대한 나의 무지와 무관심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동안 나는 민주주의를 당연한 것으로 여겨왔다. 선거일에 투표소에 가서 한 표를 행사하는 것만으로 민주주의적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했던 내 안일함이 부끄러워졌다. 오늘날 민주주의의 위기는 쿠데타나 무력 혁명과 같은 극적인 방식으로 오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익숙하게 여기는 제도와 법의 틈새를 통해 심지어 민주적 절차를 통해 서서히 침식된다.
미국의 헌법이나 선거인단 제도가 사실은 노예제를 유지하려는 세력과의 타협의 산물이었으며, 의도적으로 특정 집단에게 권력을 부여하기 위해 설계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러한 낡은 제도들은 여전히 소수의 극단주의자들이 다수를 지배할 수 있는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에 놀랐다.
2021년 1월 6일 미국 국회의사당 습격 사건은 우연히 발생한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표면적으로 충직한 민주주의자들”이 자신들의 당파적 이익을 위해 극단주의 세력과 위험한 동맹을 맺은 결과였다. 이러한 사례는 비단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책에서 소개된 프랑스, 헝가리, 태국 등의 사례를 보면 민주주의의 취약성은 보편적인 문제임을 알 수 있다. 당연히 우리나라에도 해당된다.
우리의 헌법과 제도는 과연 모든 시민의 평등한 권리를 보장하는가? 우리 사회에도 소수의 기득권층이 다수의 의지를 무시할 수 있는 제도적 허점은 없는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가장 큰 위험은 외부의 적이 아니라 내부의 무관심과 무지였다. 다수의 시민들이 정치에 무관심해지고 민주주의의 원칙과 제도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때 소수의 극단주의자들이 권력을 장악할 기회를 얻게 된다.
이 책은 내게 민주주의가 완성된 제도가 아니라 끊임없이 개선하고 지켜나가야 할 과정임을 일깨워주었다. 평소 정치적 논쟁을 피하고, 사회 문제에 관심을 두는 것을 ‘피곤한 일’로 여겼던 나의 태도가 민주주의의 위기에 일조한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독서 토의를 하면서 김샘은 반성은 했지만 실천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구샘은 다가오는 선거에 뽑을 인물이 없어 투표를 안 할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황샘은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서는 시민의식의 성숙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동안 서로 정치와 관련한 의견을 말하는 것을 매우 조심스러워하고 삼갔던 시간이 많았던 만큼 정치 상황과 관련한 여러 이야기가 오고 갔다. 정치적 성향과 지향점이 다른 사람들끼리 자신의 의견을 내비칠 수 있다는 것은 구성원 간의 신뢰 수준이 매우 높을 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독서 토의 시간에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기뻤다. 민주주의가 차이와 갈등을 타협으로 극복하는 과정에서 발전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우리는 민주주의 발전에 한몫하고 있는 셈이다.
일상에서 민주주의의 가치를 실천하고 지켜나가는 능동적인 시민이 되려면 우리 사회의 제도와 법이 진정으로 다수의 뜻을 반영하고 있는지, 소수자의 기본권을 보호하면서도 특권층에게 불공정한 혜택을 주지는 않는지 비판적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또한 정치적 담론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환기시키는 역할을 해야 한다. 무엇보다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위협하는 어떠한 세력에도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선거 결과에 승복하고, 폭력을 거부하며, 극단주의를 경계하는 것은 민주시민으로서의 기본 의무임을 잊지 않아야 한다.
선거, 의회, 언론과 같은 표면적인 제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밑에 깔린 시민의식, 관용의 문화, 그리고 법치에 대한 존중이다. 이런 민주주의의 지반이 튼튼하지 않다면, 우리가 자랑스럽게 여기는 민주주의 건물은 언제든 기울어질 수 있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일은 지속적인 지반 강화 작업과 같다. 그것은 일회성 공사가 아니라 끊임없는 유지보수의 과정이다. 우리가 민주주의의 연약한 지반을 직시하고, 그것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한다면 어느 날 우리의 자유는 서서히 기울어져 무너질 것이다.
레비츠키와 지블랫 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우리는 지금 낡은 제도를 개혁하지 않는다면 더욱 끔찍한 미래를 마주할 수도 있다는 기로에 서 있다. 다양한 구성원이 공존하는 민주주의 국가가 되느냐, 소수만이 권리를 누리는 독재 국가가 되느냐의 선택은 결국 시민인 우리의 몫이다. 민주주의는 결코 완성되지 않는 과정이며, 우리가 끊임없이 노력하고 지켜나가야 할 소중한 가치임을 잊지 않아야겠다.
민주주의 수호는 이타적인 영웅의 과제가 아니다. 민주주의를 위해 일어선다는 말은 우리 자신을 위해 일어선다는 뜻이다. 우리가 이 책을 쓰기 시작한 1월 5일과 1월 6일의 상황을 다시 떠올려보자. 우리는 과연 어떤 사회에서 살아가고 싶은가? 젊고, 나이들고, 종교적이고, 현실적인, 그리고 우리가 떠올릴 수 있는 모든 다양한 피부색을 가진 미국인들이 2020년 여름에 정의의 이름으로 거리를 가득 메웠던 때를 떠올려보자. 그 여름에 행진에 참여 한 젊은이들은 국가 시스템으로부터 외면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투표로 시선을 돌렸다. 새로운 세대의 미국인들이 불완전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일어섰다. 그리고 동시에 더 나은 민주주의, 즉 모두를 위한 민주주의 비전을 보여줬다.
시민권 세대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면서 진정한 다인종 민주주의를 구축해야 할 과제는 이제 우리에게 남겨졌다. 미래 세대는 훗날 그 책임을 우리에게 물을 것이다. 369~370쪽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지블랫 글, 박세연 옮김, 어크로스 펴냄,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