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내 인생에 들어왔다

- 레프 똘스또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읽고

by philosophers needlework

똘스또이(1828.9.9.~1910.11.20.)는 젊어서 이상주의와 쾌락주의 둘 다에 충실했던 인물이다. 쾌락에 휘말리고 나서 환멸을 느끼는 이런 모순적 태도는 똘스또이 자신을 괴롭혔고 또 역설적이게도 그의 사상과 저작의 큰 자산이 되었다. 그는 문학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어 젊은 시절 방탕한 생활을 하며 졌던 빚을 청산하고 새로운 영지를 살 정도가 되었다. 대문호라는 명성과 함께 성인으로 떠받들어지기도 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그의 단편 중 완성도가 매우 높은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이반 일리치는 판사로 살다가 병을 얻고 앓다 죽었다. 이것이 작품의 줄거리다. 매우 간단하다. 조금 더 살을 붙이자면 주인공이 성공한 삶을 살다가 갑자기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 걸린다. 고통을 겪으며 서서히 죽어가다 자신의 인생을 돌아본다. 삶의 의미를 깨닫고 고통의 근원인 죽음이 사라졌다고 선언하며 이야기가 끝난다. 이반의 부고로 시작하여 장례식, 갈등과 깨달음 그리고 죽음 이런 구조로 전개된다.

단편이라고 간단하지 않다. 장편, 대하소설을 압축한 듯하여 문장 하나 단어 하나 글자 하나 구두점 하나 쉽게 넘길 수가 없다. 똘스또이는 죽어보았던 사람인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한 인간이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이토록 세밀하게 쓸 수 있었겠는가.

소설은 인생이란 무엇인가를 깨닫는 과정을 치밀하게 쌓아가고 있다. 죽음을 앞에 두고 홀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과정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동료들과 가족의 입장에서 묘사하고 있어 사실감을 더한다. 이반 일리치의 부고를 전해 들은 동료는 공석이 된 그의 지위에 관심이 더 많다. 그나마 좀 친하다는 뾰뜨르조차 카드 놀이하고 싶은 마음에 조문 가는 일을 귀찮아한다. 결국 그는 장례식장을 서둘러 나와 카드를 놀러 간다. 아내는 남편의 죽음 이후 자신이 받게 될 연금 혜택이 더 궁금하다.

이반 일리치를 곁에서 돌보는 게라심은 젊고 건강하고 선량하다. 그 활기는 이반을 괴롭히지 않았다. 죽어가는 이반의 가장 험한 뒤치다꺼리를 하면서 하나도 힘들지 않다고 말한다. 인간은 누구나 죽을 것이고 지금의 수고는 나중에 자신이 죽을 때 돌려받을 것이라는 믿음에 기반한 선함이다. 이런 순환은 산 자에게 큰 위안이 된다.



죽음 대신 빛이 있었다.

“그래, 바로 이거야!”

갑자기 그는 소리쳤다.

“아, 이렇게 기쁠 수가!”

이 모든 것은 한순간의 일이었고 이 한순간의 의미는 이제 흔들리지 않았다. 지켜보는 사람들에게는 그가 그러고도 두 시간이나 더 괴로워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의 가슴에서 뭔가 부글부글거렸다. 쇠약할 대로 쇠약해진 그의 몸에 경련이 찾아왔다. 부글거리는 소리와 숨이 차서 쉭쉭거리는 소리는 점차 찾아들었다.

“임종하셨습니다!” 누군가 그를 굽어보며 말했다.

그는 이 말을 듣고 마음속에 되뇌었다.

끝난 건 죽음이야. 이제 더 이상 죽음은 존재하지 않아.’ 그는 길게 숨을 들이마시다가 그대로 멈추고 온몸을 쭉 뻗고 숨을 거두었다. 118~119쪽

《이반 일리치의 죽음》레프 니꼴라예비치 똘스토이 글, 이강은 옮김, 창비 펴냄, 2017


‘죽음은 끝났고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의 의미를 잘 모르겠어서 독서 모임 친구들에게 물었다. ‘죽었으므로 죽음 다음은 내 몫이 아니다, 고통과 두려움이 끝났으므로 구원받았다’는 뜻으로 이해했다는 답을 들었다.

나는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이 작품을 읽으며 ‘죽음은 무엇인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 그래서 어떻게 살 것인가’, 이 궁금함이 반복되어 돌아가는 수레바퀴에 올라탄 느낌이다. 죽음이 내 인생에 들어왔다. '끝을 생각하라 respice finem*'고.


*이반 일리치가 법률학교를 졸업하면서 10등 문관의 자격을 부여받게 되자, 아버지는 제복을 장만하라고 돈을 주었다. 그는 그 돈으로 샤르메르 양복점에서 옷을 맞추고, respice finem(끝을 생각하라)이라는 라틴어 문구가 새겨진 메달을 시곗줄에 매달았으며, 은사인 공작을 찾아가 작별 인사를 하고 친구들과 도논 레스토랑에서 축하연을 가졌다. 28~29쪽 《이반 일리치의 죽음·광인의 수기》레프 톨스토이 글, 석영중·정지원 옮김, 열린책들 펴냄,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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