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로니크 드 뷔르의《체리토마토 파이》를 읽고
나이를 먹었구나
내가 나이를 먹었구나 하고 느끼는 순간은 갑자기 온다. 나이가 들었다, 늙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부정하다가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다른 사람들은 다 잘 사는 것만 같은데 나만 바보 같다는 생각에 괴롭다. 이런 생각이 건강하지 않다는 자각은 있다. 그래서 나만 바보 같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보려고 노력한다. 누가 만나자고 하면 군소리 없이 나가고 도서관에도 정기적으로 간다. 빌린 책을 반납해야 하니 안 나갈 수가 없어 대출 기한이 정해진 것이 도움이 된다.
도서관에서 《체리토마토 파이(베로니크 드 뷔르 글, 이세진 옮김, 청미 펴냄, 2019)》를 빌렸다. 책을 펼치면 표제면 다음에 차례가 나온다. 차례 페이지를 넘기니 아주 작은 글씨로 ‘나의 어머니께’라고 쓰여 있다. 그 글자들을 보니 ‘나의 어머니’와 내 딸의 어머니인 ‘나’가 떠올랐다.
엄마는 돌아가시기 전에 기억력이 떨어졌다. 내 이름을 한 번 만에 부르지 못했고 손자들을 볼 때마다 몇 살이냐고 물었다. 돈 단위를 틀리게 말하고 날짜나 요일을 헷갈려했다. 나는 그때마다 왜 그걸 자꾸 잊어버리느냐고 짜증을 냈다. 언젠가부터 나도 단어가 얼른 떠오르지 않아 버벅거리고 헛소리를 한다. 그러면서 눈치도 못 챈다. 조카들은 엄마와 이모들의 대화를 지켜보며 어이없어한다. 말도 안 되는 소리들을 어쩜 그리도 진지하게 하느냐고. 엄마가 그때 그래서 그랬구나. 내가 직접 당해 보니 이제야 조금 이해가 된다.
그래도 괜찮다
《체리토마토 파이》는 프랑스 할머니가 봄부터 일 년 동안 쓴 일기 형식의 소설이다. 책은 자기소개로 시작한다. 이름은 잔, 나이는 아흔 살, 키는 163센티, 발에는 티눈이 있고, 남편은 죽었으며, 시골의 큰집에서 혼자 산다. 옷 입는 것에서 장 보는 것에 이르기까지 취향이 확실하다는 자부심이 있다. 지팡이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고 전화 목소리도 젊은 여자 같다는 소리를 종종 들으니 몸 관리도 잘된 편이라고 생각한다.
잔은 혼자 살면서도 심심해하지 않는다. 옆집에 산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해지는 이웃 부부가 있고, 먼저 저승으로 간 친구가 많기는 하지만 아직 친구가 남아 있어 매주 성당에서 만난다. 친구 누구 집에서든 모여 식사와 다과를 나누고 카드놀이도 한다. 올해는 정원에 어떤 꽃이 필까 궁금해하고, 텃밭에서 수확할 수 있는 채소나 열매를 어떻게 갈무리할까 고민도 한다. 크리스마스나 생일 같은 특별한 날에 자식들과 손자들이 찾아와 법석을 떨면 조금 귀찮아하기도 한다.
친구를 초대한 점심 식사 자리에서 체리 대신 체리토마토를 넣은 파이를 대접하고는 드디어 노망이 났구나 하고 한탄한다. 하지만 곧 젊어서도 요리할 때 실수를 종종 했으니 새삼스러울 것 없다고 마음을 달랜다. 치아가 가끔 말썽을 부리고 귀가 조금 안 들리지만 괜찮다고 한다.
젊은이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 나이 들면 그렇지 못하게 된다. 이 또한 당연한 일임에도 막상 겪어 보면 당황스럽다. 문자를 타이핑할 때 오타가 많아지고 음식을 먹으면서 질질 흘리게 된다. 쓸데없는 걱정이 늘고 잔소리가 는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잊어버리면서 잊어도 좋을 일들은 잘 기억한다. 내가 왜 이러지 하다가 늙어서 그래 하며 익숙해진다. 익숙함은 곧 나를 위로하는 것으로 바뀔 것이다. 그래서일까 잔이 괜찮다고 할 때마다 자신을 위로하는 것 같아 짠하다.
망각과 함께 나 홀로 남았다
11월 8일 일요일
이 모든 일이 거의 60년 전이라는 생각을 할 때면 나는 현기증이 나고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어떤 추억들은 쉬이 떠오르지 않는다. 옛날에는 그렇게 가까웠던 사람들의 얼굴이 이제 잘 기억나지 않는다. 심지어 우리 어머니 아버지 얼굴도 희미해져 가고 목소리도 생각이 날 듯 말 듯하다. 나의 청춘이 흐려지고 색이 바랜다. 나의 지난날은 물이 쏟아진 수채화 같다. 그렇게 어떤 이름이 나에게서 도망가고 어떤 추억이 사라진다. 어떤 날짜, 어떤 나이…… 바로 이런 순간에 세월의 무게가 여실히 느껴진다. 부모님, 삼촌, 이모, 사촌, 옛날 친구가 그립다. 이제 나에게는 아무도 없다. 어떤 이미지, 어떤 이름, 어떤 말, 어떤 장소를 나에게 확인시켜 줄 사람이 없다…… “너도 기억나니?”라고 물어볼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나 홀로 이 보잘것없는 기억력, 누렇게 변한 사진들을 붙잡고 있다. 망각과 함께 나 홀로 남았다. 289, 290쪽
이 부분은 다시 보아도 눈물이 난다. 나이 듦을 어쩜 이렇게 절절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싶어서. 함께 나이 먹어 가는 남편, 언니와 오빠들, 친구들과 왜곡된 기억을 두고 서로 자기 기억이 옳다고 다툴 때가 있었다. 이제는 내 기억이 맞다며 우기지 않는다. 기억력이 쇠퇴했다는 것을 알고 인정하는 것이다. 네가 맞냐 내가 맞냐 할 때가 차라리 나았구나 생각이 든다.
흐르는 시간을 두려워하면 안 된다
9월 26일 토요일
해마다 9월 26일이면 생각한다. 그이가 살아 있으면 몇 살이더라? 헤아려 보고, 한 번 더 헤아려 본다. 세상에, 아흔다섯 살이겠네! 그이가 살았다면 어떻게 늙어갔을까? 세월에 쪼그라들었을까? 조금씩 쇠약해지고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해지면서 나이 앞에서 포기해야만 하는 소소한 것들을 그이는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앞일을 계획하기보다는 옛일을 돌아보기 좋아했던 그이가 그래도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을까? 흐르는 시간을 몹시 두려워하던 그이가 이 세월을 어떻게 넘어왔을까? … 그래, 르네는 늙기 전에 죽기를 잘했다. 그이는 그래야 하는 사람이었다. 224, 225쪽
나이 들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소소한 것들을 포기해야 하고 그런 나를 받아들여야 한다. ‘왕년에~’와 ‘라떼는 말야~’하며 지난날에 미련을 갖게 되면 앞으로 나아가기 어렵다. 흐르는 시간을 두려워하면 안 된다. 잔이 가르쳐주는 지혜다. 흐르는 세월을 받아들이고 끝을 향해 나아가는 것을 두려워한다면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하는 것은 잔의 독한 유머인가 사랑인가.
일기를 써 보기로 하였다
이 책은 친구를 만나 나눈 이야기, 라디오에서 들은 소식, 죽은 남편 흉보기, 시어머니에 대한 불평, 옆집 부부의 다툼 등 누구에게라도 일어날 법한 일상의 소소한 순간을 세밀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소설임에도 사실처럼 느껴진다. 책을 읽고 있으면 90여 년 세월을 살아 내며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는 주인공의 삶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지금이라도 프랑스 어느 시골 마을 주일미사에 가면 잔 할머니를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왜 잔의 일기에 감탄하는 걸까. 아흔이 넘은 노인네가 자신의 삶을 온전히 사랑하는 모습이 부러워서일까. 잔은 자신의 삶을 성공이냐 실패냐로 재단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즐기고 최선을 다하여 살아간다. 그리고 일기를 쓴다.
일기를 쓰는 것, 일상을 기록하는 것은 자신의 삶을 소중하게 여긴다는 의미다. 사소해 보이는 것들까지도 기록함으로써 내 시간이 역사가 되게 한다. 쓰는 순간 그 사소함은 흘러 지나가지 않고 머물러 내 삶이 그리 의미 없는 것들로만 채워진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일깨운다. 나는 잔이 살아가는 것처럼 살고 싶다. 그래서 나도 잔을 따라 일기를 써 보기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