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린 세라를 10년 후에 선후배로 만나게 된다
1학년 때부터 녹지 음악학원에 다녔다. 중간에 3학년인가 4학년 때 예전 음악학원으로 옮겼다. 이유는 기억이 안 난다. 암튼 하교 후 녹지 음악학원에 가기 전에 이따금 동아상회에 갔다. 입에 넣자마자 살살 녹다 못해 형체가 없어지는 보르르 캬라멜은 백 원(지금 생각하면 가루약 싸 먹는 그 종이 재질인 듯), 바니 드롭스도 백 원, 돈돈은 이백 원이었나? 암튼 이백 원짜리가 더 맛있었지만 국민학생도 가성비라는 걸 알았기에 늘 백 원짜리를 샀다. 카운터엔 아주머니가 앉아계셨고 나는 그 백 원짜리들 사이에서도 늘 고민했다. 어느 날은 아줌마 옆에 있던 어린 여자 아이가 징징대며 울었다. 세라야! 그만 좀! 아, 쟤 이름이 세라인가 봐. 이름 되게 신기하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보르르 값 백 원을 내고 녹지 음악학원에 갔다.
그로부터 10년 후 서문여고 방송반 PD 면접에서 세라를 만나게 됐다. 아, 네가 그때 그 세라였니?
현재 우리는 모두 불혹의 문턱을 훌쩍 넘었지만, 나에게 세라는 언제나 그 꼬마 세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