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이주를 마치고 30년 넘게 운영한 부모님 가게도 문을 닫은 후배 세라가
가게 앞에 빨간 공가 딱지만 붙는 게 싫다며(그 선동적인 컬러, 폰트, 레이아웃이 주는 다소 폭력적인 감성과 그로 인한 쓸쓸함의 증폭...매우 동의), 마지막으로 반포에 관한 사진과 글을 게시하겠다고 했다.
조금 끄적여서 전달했는데 멋지게 작업해주었다. 프린트해서 붙인다고 하니 보러 가야지
고려당 기억해? 코스코 슈퍼, 뉴욕제과, 맥도날드와 세븐일레븐은?
현대백화점 반포점 시절 수영장 볼링장 가본 사람?
구반포 사람들 모이면 시작되는 기억력 배틀.
방학이면 책세계에서 만화 빌려 읽고, 영화마을에서 비디오 빌려다 보고,
파리 크라상에서 팥빙수 사 먹고 나오는 길에 뭐 새로운 노래 안 나왔나 기웃대던 예림 레코드 앞.
생일이면 연제과 생크림 케이크의 초를 불고, 특별한 날 반포 스튜디오에서 가족사진을 찍고,
눈이 오면 집 앞마다 아이들 웃음소리로 가득 찼던 곳.
울창한 나무를 누리는 대가로 모기에게 몸을 내어주고,
계단을 오르내리며 하체 훈련에 힘써야 했던 구식 아파트
발걸음 닿는 곳마다 내 친구의 집, 내 친구의 친구의 집이 있던 넓지만 아늑했던 동네
육교 위에 서서 거리를 내려다보고 있노라면,
화면을 빠르게 돌린 것처럼 그동안의 기억들이 순식간에 스쳐갑니다.
1974년부터 지금까지
그냥 사람 사는 곳, 별다를 것 없는 흔한 아파트지만,
누군가 천둥벌거숭이 같은 유년 시절을 보낸 곳
누군가 가정을 꾸리고 처음 정착한 곳
누군가 자식을 길러내고 노년을 보낸 곳
누군가 세상에 처음 나오고, 또 누군가는 고운 생을 마감한 곳
수많은 사람들의 삶과 이야기를 품은 구반포가 점점 희미해져 갑니다.
안녕, 구반포
함께 한 추억이 많이 달아나지 않도록, 기억 속으로 자주 찾아와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