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희 Mar 08. 2022

구반포에서 만난 유명인

생전의 피천득 시인도 만났다. 그러나 기억은 잘 안난다. 

아파트 단지가 워낙 컸던 덕분인지 구반포 내에는 유명인들이 제법 많이 거주했다. 준공 후 입주 당시에는 서울대 교수 아파트로 쓰였다는 얘기도 있고(실제로 셔틀버스도 다녔다고), 계획형 대단지이다 보니 이래저래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이 많이 살았다(는 것으로 전해진다). 


몇 학년 때인지 기억은 안 나는데 국민학교 3-4학년쯤? 엄마랑 한신상가를 지나는데 웬 남자를 지나친 후에 엄마가 조용히 속삭였다. "지금 지나간 사람이 피천득 시인이야." 그게 누군데? 평범한 국민학생이 피천득 시인을 알 리 없었다. 엄마는 그냥 유명한 소설가라고 했다. 아, 그 후에 오십몇 동을 지나는데 유일하게 '샤시'를 하지 않은 집이 있었는데 그 집이 피천득 시인의 집이라고 했다. 이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으나, 거의 모든 베란다에 갈색(좀 오래전에 샤시 단 집은 은색) 샤시로 도배되어 있던 그때, '노 샤시' 세대는 무척 눈에 띄었다. 나는 그것마저 좀 낭만적이라고 생각했다. 현대화를 거부하는 어느 문인의 낭만... 곰인형들이 잘 때 눈이 아플까 봐 밤에 안대를 씌워준다는 분인데, 베란다가 아플까 봐 그런 것은 아니었는지... (라고 나만의 주접을 떨어본다...)  


얼마 전 (구)구반포인들을 만나 구반포에 어떤 유명한 사람이 살았는지 얘기를 나눴다. 피천득 시인을 지나쳤을 무렵, 또 어떤 유명인을 발견하게 될까 하고 눈을 부릅뜨고 다녔는데 삼십몇 동 공터에 주차하고 나오시는 고우영 화백을 봤다. 여고생 스타 이미연이야 워낙 유명했고, 92년인가 현대백화점 반포 레저타운 앞을 지나는데 넘나뤼 잘생긴 남자가 지나가서 (당시 이성에 관심 1도 없던 나이) 미어캣처럼 모가지를 포물선 그리듯 움직이며 쳐다본 기억이 있는데 그거슨 반포의 대표 미남 김원준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비주얼 쇼크였다. 


그의 친구 류시원도 비슷한 시기에 데뷔해 유명해졌는데 반포 안에서는 그의 차가 더 유명했다. 당시 수입차가 귀하디 귀한 시절, 그의 차는 쉽게 알아볼 법한 벤츠도 BMW도 아니고 미쯔비시 이클립스 노란색이었다. 세븐일레븐 골목을 향해 '부웅-' 소리를 내며 지나가면 우리는 '류시원...류시원이다!'라고 소리쳤다. 이미연은 97동, 김원준은 73동(김원준을 너무 좋아한 내 친구 중 하나는 집 전화번호를 알아내서 불나게 전화하다가 그의 형과 친해졌다), 류시원은 88동. 이제 다 없어질 예정이니 중한 개인 정보도 아니지만 ㅎㅎ 구반포 재건축 파워 조합원 오영실은 예전에 105동이었던 것 같은데(내 친구 이웃이었나 그랬다) 최종 데이터는 모른다. 


아무튼 김신조(박정희 모가지 따러 월남한 북괴 간첩의 아이콘. 후에 남한에서 목사가 되고 결혼도 함)도 구반포에 살았고(주공 아파트라 그런지 국가 차원에서 집을 내어준 듯), 밀라 논나 여사도 얼마 전까지 구반포에 거주하셨다(세라가 유튜브 영상으로 추리함). 참 많은 사람이 거쳐갔겠지. 그중에 우리 가족도 있고.        

작가의 이전글 토요일은 장이 열린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