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치과 가는 게 두렵지 않다
아, 내가 다닌 치과. 서진치과였나? 세진? 서인? 아무튼 ㅅ 이 들어간 이름. 그곳에는 항상 보물섬 최신호를 구비했기에 치과 가는 것이 즐거웠다. (기억났다! 신일치과!)
실은 치과 진료를 받으면서 아픈 걸 표현하면 혼나는 줄 알았고, 쫄아서 아픈 줄도 몰랐고, 참아야 하는 줄 알고 그냥 참았는데 (아프긴 한데 참는 용기보다 아프다고 말하는 용기가 더 나지 않았던 거다) 의사 선생님 간호사 언니 모두 칭찬에 칭찬을 퍼부었다. 우와, 열 살 언니보다 잘 참네! 지켜보던 엄마도 내가 잘 참고 칭찬받는 게 대견했는지 기분 좋아했다. 돌아오는 길에 문방구에 들러 피노키오 크레파스 18색을 사줬다. 기차 모양의 케이스, 향기가 퐁퐁 나던 크레파스. 우리 엄마가 즉흥적으로 뭘 사주는 사람은 아닌데, 굉장한 파격이었던 거다. 나는 그래서 치과 가는 게 즐거워졌다. 칭찬받으니까. 엄마가 좋아하고 상도 받았으니까. 보물섬을 실컷 읽을 수 있으니까.
나도 어린애였으니 길 가다 갖고 싶은 게 보이면 뭘 그렇게 사달라고 징징댔다. 그런데 늘 다 지나와서 떼를 썼다. 엄마 딴에 묘수를 냈다. 갖고 싶은 게 있으면 그 자리에서 말했어야지. 음, 알겠어. 미미의 응접실 세트가 진열된 문구점 앞에 서자 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사달라고 졸랐다. 왜 안 사줘! 바로 얘기하면 사준다고 했자나아아. 엄마의 난처한 얼굴. 약속은 지켜야 하는데 돈은 없고. 엄마라고 왜 안 사주고 싶었겠어. 어렸던 나지만 참 왜 그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