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포에서의 인생이 시작된 시점
삼천리 연탄, 아니 삼표 연탄이었던가. 사당동 (정확히는 관악구 남현동) 군인아파트에서 정확히 5일간 강남구 반포동 반포 국민학교로 등교해야 했다. 5일의 등교 동안 나는 엄마와 버스를 탔다. 몇 번 버스였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아마도 555나 567번이었던 것 같다. 안내양한테 얼마큼의 차비를 건네고 나서 사당역을 금세 벗어나고 있다는 사인은 삼표연탄을 지나는 것이었다. 한자로 석 삼자가 쓰인 삼표 연탄. 도시도 아니고 시골도 아닌 사당동의 풍경을 벗어나면 잠시 후 신호등을 아주 많이 지나고 (이수역으로 추정되는 그 중간 풍경은 생각나지 않는다) 도시로 진입한 느낌을 받으면 거기가 바로 반포였다.
1985년 3월 4일에 입학했다. 입학한 날부터 한 일주일은 밖에서 수업을 받았기에(내 기억엔 그랬다. 아니 그런데 왜 애들을 밖에서 세워놓고 수업했지? 수업시간이 그렇게 짧았나?) 키는 선 자리에서 대충대충 쟀다. 나는 7번이었고 연두색 사과 모양의 이름표를 받았다. 학년과 반, 이름이 손글씨로 쓰여있었다. 아마도 선생님의 글씨. 강명자 담임 선생님.
날짜가 정확히 기억나는 건 그날 방송국에서 촬영을 나왔기 때문이다. 카메라가 와서 우릴 찍고 있다니! 그날 저녁 엠비씨 뉴스데스크에 나왔다. 오늘 서울 반포 국민학교 입학식이 열렸습니다(그 멘트는 아니었겠지만 내 귀에는 그렇게 들렸다). 산만하게 줄 서 있는 수많은 1학년들과 카메라로 다가와 장난치는 천둥벌거숭이들의 모습이 나왔다.
입학식이 끝나고인지 아님 그 다음다음날쯤 됐는지 엄마와 고려당에 갔다. 고려당은 동아상회의 옆 옆집쯤에 있었다. 아마도 반포치킨 옆쯤? 빵도 사주고 우유도 먹었다. 우유는 따뜻했다. 빵집에 앉아 포크로 빵을 찍어먹는 것이 처음이었다.
며칠 지나 드디어 교실에서 수업을 하게 됐다. 아, 서서 수업을 할 때의 내 짝꿍. 남자 7번은 이남수였다. 내 기억이 맞다면. 교실수업을 시작하며 키재기를 다시 했는데 나는 여전히 7번. 이남수는 13번쯤으로 저 뒤로 갔다. 진짜 번호는 21번이었던 것 같다. 번호는 생일순이었고 1월 생은 나 혼자였다. 남자는 몇 번까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나는 꼬래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