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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함의 중독

친절 요정의 자기반성

자칭 타칭 친절한 편인 나는 어디에서나  친절함을 기대한다.

아니

그동안은 기대한다는 걸 몰랐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유난히 친절한 사장님이 있는 가게가 정이 가고

집 근처 중고 거래자도 친절할 때 더 좋다

친절한 사람에게 물건을 팔든 사든 그런 사람과의 만남만으로도 신나나보다


얼마 전 가게를 오픈한 지인에게도 무조건 친절해야 된다며 미소와 말투를 지도(?)하고 돌아왔다.

손님에게 친절한 사장이 되어 손님에게 가게 이미지를 또 가고 싶게 만든다는 나의 지론은 참으로 앞뒤가 맞는 당연한 소리 같다.


그리고 오늘.

불친절한 사람을 둘을 연속으로 만나고 나서야

어쩌면 나는 친절 중독자는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독은 중심을 잃게 만든다.

치우치는 것만큼 위험한 게 없기 때문에 내가 제일 경계하는 것 중 하나도 중독이다.


오늘 만난 두 사람은 나에게 친절할 필요는 없었다.

사실 그 누구도 마찬가지지.

그럼에도 나는 기분이 나빠졌다.

이왕 만나는 거 좀 친절하면 어때 라며 친절하지 않은, 심지어 다신 보지 않을 그들에게 서운해졌다.

또 나의 친절이 무안해졌다.


 친절한 것은 나의 선택이었는데 나도 모르게 그들도 선택해주길 기대했나 보다

친절이 뭐길래?


하나도 같은 사람이 없듯이 친절의 기준도 다 다를 텐데

나는 나의 잣대로 그들의 표정과 말투로 판단하고 나아가 스스로까지 불쾌하게 만들었다.


중심을 잃는 건 이런 거다.

내가 친절해서 타인도 친절해야 한다는 아집.

친절을 보답받고 싶은 욕심

그 보답이 단 한 번의 미소뿐이여도.

스스로를 의심하게 되는 것.

나의 색을 잃는 것.


타인과의 관계에서 나는 '그럴 수도 있지'마인드인데

이런 마인드는 상대와 나를 좀 더 안전한 관계로 만들어주는 것 같다

가령 이해가 안돼도 (먼저 너와 나는 다르기 때문에 나는 안 그럴 테지만 너는) 그럴 수 있지...라고 생각하면 좀 더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난다.

이런 내가 타인이 '친절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적용하지 않고 있지 않았나 싶다.


설령 그들이 진짜 친절하지 않았을 수도 있는데

그럼에도 내 친절이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무안할 필요도 없는 것.


어찌 되었건 나는 친절한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나대로 친절 요정이 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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