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가계부: 연쇄적인 작은 성공의 스노우볼
두 달 동안 초기단계에 해당하는 phase 1, 2, 3을 진행하다 보니 이제는 어느 정도 틀이 잡혔다. 나는 매번 화이트보드에 적어가며 분석을 했기 때문에 여기서 좀 더 효율적으로 중복되는 항목을 묶어줄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phase 3 방식에 x 축 y 축을 바꾸기로 했다. 테마 (theme)와 카테고리 (category)는 내 생활패턴에서 고정이 되어 좌측에 세로축으로 배치하고, 매주 한 줄씩 목표(target)와 기록(log)을 세로로 채워 넣었다. 좀 더 효율적으로 기록하고 분석할 수 있게 되었다.
시간 가계부를 진행하면서 이걸 앱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지속적으로 했다. 그리고 만약에 그 앱을 만든다면 분석을 하는 과정에 메모 기능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매주 분석을 하고 다음 주 목표에 대해서 생각을 하지만 그 기억은 휘발되기 십상이다. 우리는 너무 바쁜 삶을 살지 않은가. 내가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생각하는 시간도 아까웠다. 나는 이제 기억을 믿지 않고 기록한다. 그래서 내가 왜 목표를 그렇게 세웠는지에 대한 인사이트도 간단하게 메모해 두기로 했다. 이제 매주 시간 가계부를 분석하며 얻은 인사이트를 메모하고, 기록된 간단한 메모만 반복적으로 회고했다.
시간을 기록하다 보니 나도 몰랐던 나의 생활 패턴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월요일에 시작된 내 의지는 채 수요일까지 지속되지 못했다. 아침에 정신력은 저녁이 갈수록 떨어졌다. 출근 전에 운동을 하기보다는 출근 후에 운동을 하는 게 더 맞았다. 나의 생활 패턴뿐만 아니라 외부적인 요인들의 패턴도 익혀졌다. 출근할 때나 퇴근할 때 버스를 몇 시에 타는 게 나의 생활패턴에 최적인지 자연스레 출퇴근 소요시간만으로도 파악할 수 있었다. 내 삶이 좀 더 선명하게 보였고, 조금씩 더 내가 원하는 삶에 가까워졌다. 나는 내 삶을 잘 통제하고 있었다. 작은 목표가 하나씩 달성되었다. 연쇄적인 성공의 스노우볼이 굴러 이내 큰 성취감과 자신감으로 돌아왔다.
세 달 간의 기록방식을 보니 이제는 라벨링 방식이 좀 더 목적 지향적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까지 해온 방식은 밥 먹는 시간을 "eat"라고 기록하고, 업무시간을 "work"라고 기록하는 식이었다. 이렇게 기록을 하니 기록들을 분석할 때 그 시간의 목적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보낸 시간이 잘 보낸 시간인지 아닌지 평가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시간의 라벨링 방식을 바꾸기로 했다. 라벨링 자체에 나의 평가를 넣어서 소비(spending), 낭비(wasting), 투자(investing) 시간으로 쪼개는 방식을 떠올렸다. 완전한 가계부의 형태를 갖춘 시간 기록 방식이었다.
새로운 방식은 그전까지 neutral 영역에 있었던 시간에 대한 평가가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neutral 영역의 시간이란 업무시간(work), 쉬는 시간(cool down) 등으로 이전까지 특별히 평가하지 않았던 영역의 시간들을 말한다. 업무시간이 길어지는 게 좋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짧아지는 게 좋은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쉬는 시간도 마찬가지로 뇌를 휴식시켜주는 꼭 필요한 시간이라 이 카테고리의 시간이 늘어나고 줄어드는 것에 평가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같은 업무시간에도 집중하는 시간이 있고, 그냥 소모하는 시간이 있으며, 낭비하는 시간이 있다. 쉬는 시간도 마찬가지다. 뇌를 쉬게 해 준다는 명목의 시간은 오히려 SNS나 불필요한 영상을 보면서 허비하는 시간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런 시간들에 대해서도 세세하게 평가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새로운 기록방식은 기록하는데 좀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단점이 있었다. 예를 들면, 이전까지 측정 방식에서는 업무시간이 9시에서 5시까지 라고 한다면 통으로 work라고 표기하였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업무시간의 매 분매초는 다 같은 업무시간이 아니다. 집중했던 시간이 있고, 흘려보낸 시간이 있고, 버려진 시간이 있다. 이제는 이 시간을 매 순간 판단을 해야 하기 때문에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메타 인지가 요구된다. 그만큼 기록하는데 어렵고 품이 많이 들어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 가계부를 처음 시작했던 목표를 돌이켜 보면 몰입하는 절대적인 시간의 극대화였기 때문에 이 방식이 더 맞다고 생각했다. 돌아가도 똑바로 가자.
새로운 측정 방식은 좀 더 오래 걸렸지만, 목표는 오히려 단순해졌다. Wasting을 최소한으로 Investing을 최대한으로 하자. Investing 시간을 늘리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 방법은 spending과 sleep 시간을 줄이는 것이다. spending을 줄이는 방식은 초기에 적용했던 방식이 여전히 유효했다. 이를테면 일찍 일어나서, 아침 일찍 회사 근처로 이동하고, 퇴근 후에도 운동을 회사 근처에서 마치고 최대한 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방식이다. 매우 간단하고 자명한 방법인데 막상 실천하기는 참 어렵다. 여러 가지 시도를 해봤지만 총 사용 사간의 spending 시간을 20% 아래로 떨어트리지 못했고, 총 20-30% 라면 만족하기로 했다. sleep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는 특별히 노력하지 않았다. 나는 잠자는 시간이 좀 많은 편이다. 최소 7시간 30분은 자야 한다. 총 측정 시간에 수면시간이 30% 가 떨어진 날에는 오히려 퍼포먼스의 저하를 느꼈다. 결국 spending과 sleep 시간은 내 인생에 50-60% 를 차지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기서 핵심은 규칙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 시간을 너무 줄이려고 하지 말자. 규칙적이자, 그 하나만 기억하고, 두 번째 방법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두 번째 방법은 wasting 시간을 줄이는 것이다. 이상적으로는 낭비되는 시간을 0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내게 가장 효과적이었던 방법은 Instagram을 포함한 모든 SNS 어플을 지워버리는 것이었다. 아이폰 유저들은 settings에 screen time 기능을 사용하면 내가 평소에 무슨 어플을 많이 사용하는지 쉽게 알 수 있다. 나는 습관적을 Instagram, YouTube에 들어갔고 거기서 1주일 동안 소비되는 4시간, YouTube에서 소비되는 6시간이 너무 아까워 어플을 전부 삭제했다. 외부 소식에 좀 더 무뎌져도 괜찮다. 요즘은 정보가 넘치는 시대가 아닌가. 필요한 정보가 생기면 검색을 하면 된다. 그전까지는 나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는 내 삶에 더 집중하자. 다른 사람들의 말은 지나가는 바람이고, 나는 성이 되어 바람을 흘려보낼 줄 알아야 한다. 그렇게 확보된 시간에 몰입할 수 있게 많은 방식을 시도해 보았고 내게 맞는 방법 몇 가지를 찾았다. 이 방식에 대해서는 또 다른 글에서 자세하게 다루도록 하겠다.
이런 방식의 시간 기록을 친구들에게 소개했을 때 소비(spending)된 시간과 낭비(wasting)된 시간은 어떻게 판단하냐고 나에게 많이 되물었다. 하지만 이건 직접 해보면 알게 될 것이다. 친구를 만나더라도 어떤 시간은 소비되었다고 느껴질 것이고, 어떤 시간은 버려졌다고 느낄 것이며, 어떤 시간은 정말 미래를 위한 투자의 시간이라고 느껴질 것이다. 본인이 느낀 그대로 솔직하게 기록하면 된다. 처음에는 힘들 수도 있다. 진실은 생각보다 날카롭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거짓 없이 솔직히 기록해야 의미가 있다. 그렇게 회고할 때 내가 낭비하는 시간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비참함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기록의 의미는 내가 얼마나 비참한 삶을 살아가는지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고쳐서 내가 원하는 삶을 살지를 계획하는 데에 있다. 비참하게 느꼈다는 것은 지금 살아가는 방식이 자신이 원하는 삶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당신이야 말로 시간 가계부가 필요한 사람이다. 오늘부터 기록하고 하나씩 바로잡아 보자. 지금 당신이 가장 자주 쓰는 캘린더 앱을 켜서 이 글을 읽은 시간을 "investing"이라고 표시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