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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sty 묘등 Apr 14. 2021

부모님의 육아방식에서
무위(無爲)의 가치를 발견하다

[도덕경 제5장] 짚으로 만든 개처럼

도의 무편 무당성

하늘과 땅은 편애(仁) 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짚으로 만든 개처럼 취급합니다.
성인도 편애하지 않습니다.
백성을 모두 짚으로 만든 개처럼 취급합니다.
하늘과 땅 그리고 성인, 따라서 이들로 대표되는 도는 인간적 감정에 좌우되어 누구에게는 햇빛을 더 주고 누구에게는 덜 주는 따위의 일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모든 것은 우주 전체의 조화로운 원리와의 상관관계에 따라 순리대로 되어갈 뿐이라는 것이다.
-35P-
도는 이처럼 한결같을 뿐이다. 따라서 도를 향해 나를 더 사랑해 달라고 조르거나 간구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들에 핀 백합화를 보라. 특별히 조르거나 간구하거나 잘 보일 일을 하지 않아도 한결같은 도의 덕으로 입을 것 입고 먹을 것 먹는 것 아니냐는 뜻이다. 도는 우리의 변덕스런 이기적 요구 사항에 좌우되지 않으므로 오직 한결같은 도의 근본 원리에 우리 자신을 탁 맡기고 쓸데없이 안달하지 않는 태도가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36P-


이번 [5장]에서는 나의 성장과정과 부모님의 육아방식을 끄집어내어 무위(無爲)의 가치를 발견합니다.


다른 기질의 남매


한 배에서 태어났지만 오빠와 나는 기질도 성격도 달랐습니다. 오빠는 소위 '순둥이'라 불리는 욕심이 없고 그저 착하고 순한 아이였습니다. 그에 반해 나는 지적 호기심은 왕성하고 욕심  많은 고집 센 아이였습니다.


태어났을 당시 오빠와 나는 외모부터 달랐습니다. 오빠는 머리카락 없이 민머리로 태어났지만, 나는 새카만 머리카락이  충분히 자란 상태로 태어났습니다. 엄마는 첫아이였던 오빠를 아기의 기준 삼았기에 빽빽하게 우거진 머리카락을 가지고 태어난 나를 보고 당황하셨 심지어는 징그러웠다고 합니다.(욕심 많은 나는 머리카락도 제대로 갖추고 태어났나 봅니다.)


오빠는 내가 태어난 이후로 나에 대한 배려와 양보를 시작합니다.


우선 오빠는 엄마 젖을 나에게 양보해야 했습니다. 아니 뺏겼습니다. 내가 분유에는 입도 대지 않고 모유만 쪽쪽 빨아먹는 바람에 오빠에게 줄 젖이 남아있지 않았다고 합니다. 귀한 장남임에도 불구하고 오빠는 본의 아니게, 졸지에, 당연하다는 듯이 나에게 엄마 젖을 내어줍니다.


그렇게 동생의 탄생과 동시에 오빠는 본인의 것이라 할 수 있는, 아니 본인의 것이었을 것들을 동생에게 양보하기 시작합니다.


오빠는 친구들과의 시간을 나에게 양보합니다. 돌봄이 필요한 어린 여동생은 미취학 남자아이들의 무리에 합류하는데 장애물 불과합니다. 친구 무리들은 여동생을 두고 와야 같이 놀아주겠다 합니다. 하지만 오빠는 또래 집단과의 신나는 놀이 시간 대신 여동생의 손을 꼭 잡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본인이 아는 세상을 여동생에게 보여주는 시간을 선택합니다. 욕심이 많아  장난감을 빼앗으려 오빠를 꼬집고 때려 결국은 자신을 울리는 여동생을 말입니다.


그에 반해 배움에 대한 호기심이 충만했던 나는 오빠를 이용해 욕망을 채웁니다. 어느 날 합기도가 배우고 싶었던 나는 무작정 도장을 보내달라고 하면 "무슨 여자애가  합기도야"라며 부모님께 거절당할 거라는 결론을 예상하고 오빠를 꼬드깁니다. 오빠는 흥미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합기도가 배우고 싶다고 말합니다. 다만 나와 같이 다니고 싶다고 합니다. 무언가를 배우고 싶다는 의지 표명이 드물었던 오빠였기에 부모님은 기꺼이 이를 허락하고 오빠는 나와 함께 합기도 도장을 같이 다녀줍니다.


다방면으로 지적 호기심과 배움에 대한 욕심이 많았던 나는 특별한 욕심 없이 노는 거 좋아하는 오빠의 배려 속에서 각자의 기질에 맞춰 조화롭게 성장합니다.  



기질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육아방식


각자의 기질에 맞춘 결핍 없는 성장은 부모님의 자식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었기에 가능할 수 있었습니다.

 

장남의 사회적 성공을 위한 지원이 우선시 되는 것이 자연스러웠던 시절이었습니다. 사회적 분위기 상 첫째이고 남자인 오빠에게 갖는 부모님의 기대 또한 남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부모님은 장남으로서의 책임감으로 오빠를 옥죄지 않았습니다. 사회적 기대를 오빠에게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식의 기질을 이해한 부모님은 학습적 지원의 무게 중심을 장남에서 막내딸에게 옮깁니다. 학습에 대한 지원이 오빠에게는 압박감으로, 나에게는 동기부여 및 욕구 충족의 방법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셨던 것입니다.


부모님의 눈에 비친 오빠는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따뜻한 심성의 재능을 가진, 나는 강한 지적 호기심과 실천력으로 학습에 대한 재능을 가진 개별적 존재였을 뿐입니다.


부모님은 사회의 획일적인 잣대로 우리 남매를 평가하지 않았습니다. 각자가 가진 고유성을 인정해주고 그 가치를 존중하도록 가르치셨습니다. 삶의 가치가 다양하다는 것을 경험으로 일깨워 주셨습니다.


오빠의 재능은 세상에 꼭 필요하고 귀중한 재능이며, 이런 오빠의 재능에서 기인한 오빠의 배려를 내가 당연시하지 않도록 경계하셨습니다. 성적이 우선시 되었던 주위 환경의 영향에 휩쓸려 내가 우쭐할 수 있음을 우려한 부모님은 오빠가 가진 재능의 가치에 대해 이해시키시며 손아랫사람으로서 오빠를 존중해야 함을 강조하셨습니다.


성적으로만 평가받던 학생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성적은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작용하지 않았습니다. 오빠보다 우수한 성적은 그저 수천수만 가지의 능력 중 내가 가지고 태어난 하나의 재능일 뿐이었습니다. 나는 그냥 내가 하고 싶고 잘할 수 있는 일을 즐기면서 하면 될 뿐이고, 이를 위한 부모님의 지원과 오빠의 응원에 감사할 의무만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부모님이 추구하셨던 삶의 가치, 그리고 자식에게 기대하셨던 삶의 태도는 각자 타고난 기질과 능력이 자연스레 발현되어 충족감을 느끼고 이러한 삶의 충족감이 다른 존재의 가치 인정과 존중으로까지 이어짐이었습니다.


[도덕경 5장]을 읽고 있는 지금, 존재 자체의 '그러함'을 인정하고 '그러함'에 거스르지 않는 부모님의 육아방식은 도덕경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무위(無爲)를 닮아있었음을 알아갑니다.


이러한 가르침과 돌봄으로 오빠와 내가 추구하는 삶의 가치의 시선은 위를 향하고 있지 않습니다. 적어도 사회적 인정만을 맹목적으로 쫓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습니다. 사소한 일상에서 의미를 발견하려 하고, 스스로의 존재를 가치롭게 할 방법을 찾아 시선은 주변과 아래로 향합니다.


부모님께서 물려주신 존재의 가치로움에 대한 이해가 우리 남매에게 유산이 되어 삶을 풍요롭게 하는 자산이 되었음을 감사히 여깁니다.


오늘도 오빠는 길에서 어미를 잃은 젖먹이 새끼 고양이들을 집으로 데려와 보살피고 있으며, 나는 그런 오빠를 자랑스러워합니다. 모난 곳 없이 둥글고 넉넉한 포근함을 가진 오빠를요...




(타이틀 이미지 출처: Pixabay, Julia Casa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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