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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sty 묘등 Apr 08. 2021

단아한 미니멀리스트를 추구하는 난잡한 맥시멈리스트

[도덕경 제4장] 도는 그릇처럼 비어



도의 쓰임새


9년 전 빌라 특유의 결로 현상으로 인해 집 천장이고 벽이고 가릴 것 없이 곰팡이들이 퍼지기 시작합니다. 곰팡이 제거제도 써보고 벽지를 뜯어 다시 도배를 해봐도 한 번 퍼진 곰팡이는 도무지 잡힐 기미가 보이질 않습니다. 끝도 없이 세를 확장해가는 곰팡이에 치를 떨며 2년 계약도 못 채우고 이사를 추진합니다.

저리의 대출을 미끼로 내 집 장만에 대한 유혹이 기승을 부리고 있던 때라 나 또한 이러한 꼬드김에 어김없이 넘어가버립니다. 20평도 안 되는 빌라에서 32평 아파트로 이사를 하니 집 안이 왜 이리 휑하고 허전하게 느껴지던지요. 그때부터 인테리어라는 빌미로 유명 블로그들을 돌며 가구며 인테리어 소품들을 게걸스레 사들이기 시작합니다. 다수의 블로그에서 수집한 인테리어 팁들을 짜맞춤 하다 보니 우리 가족 소유의 첫 집은 나날이 정체불명의 난잡함들이 자리하게 됩니다.


인테리어에 대한 과도한 욕망이 불러일으킨 집의 난잡함은 끝없는 물건에 대한 욕망이 가져온 결과입니다. 다양한 기능의 물건들과 화려한 집기들이 삶의 풍요로움과 생활의 안락함을 가져다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아름답게 꾸민 집에서 살면 내가 한 층 나은 사람처럼 느껴질 것 같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마음의 결핍이 집으로 투영된 듯합니다.


" 지금 아는 것을 그때는 왜 몰랐을까요?"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컨셉도 없고 편의성도 없고 그렇다고 개성이랄 것도 없는 공간들이 눈에 거슬리기 시작합니다. 잡다한 물건들에게 영역을 뺏긴 인간 주인들은 절대적 양量으로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는 물건들을 관리하느라 점점 지쳐갑니다.  

발에 채이는 물건들에 짜증이 늘어나고 있을 때쯤 책을 읽다 사진 하나가 눈에 들어옵니다.  


'말하는 건축가' 정기용 선생님의 댁인 듯합니다.

(2015년에 찍었던 사진인데 정작 책 제목은 기억이 나질 않네요...^^;;)


여백을 뽐내며 펼쳐진 방바닥에 한쪽 구석만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과 가구가 보입니다. 가구라고는 고작 책상을 대신하는 단출한 좌탁과 문구류를 올려놓은 단출한 좌탁 두 개뿐입니다.

'단정하고 아담'합니다.'단아'라는 단어가 공간에 감겨있습니다. 단순히 공간이 보여주는 소박한 여백의 아름다움 뿐만이 아니라 그 공간에 자연스레 녹아드는 정기용 선생님의 풍요로운 편안함이 내 마음에 가득 차오릅니다.


이 사진을 보는 순간 난잡한 맥시멈리스트인 나는 단아한 미니멀리즘에 눈을 돌리게 됩니다.

홍수처럼 쏟아져 나온 미니멀리즘에 대한 책을 십 수권 읽으면서 자책도 해보고 집에서 물건을 쫓아내기 위한 시도도 다양하게 해 봅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집의 난잡함은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고, 여전히 나는 정기용 선생님의 방과 같은 정갈하고 단출한 우리 집을 꿈꾸고 있습니다.  




날카로운 것을 무디게 하고,
얽힌 것을 풀어 주고,
빛을 부드럽게 하고,
티끌과 하나가 됩니다.
깊고 고요하여,
뭔가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 31P -
"도가 날카로운 것을 무디게 하고, 엉킨 것을 풀어 주고, 빛을 부드럽게 하고, 티끌과 하나가 된다고 했을 때 우리도 그처럼 너무 날카롭거나, 너무 얽히고설킨 관계를 유지하거나, 너무 광내려 하거나, 너무 혼자 맑은 체 도도하게 굴거나 하지 말고 양쪽을 포용하고 조화로운 관계를 유지하도록 하라는 것을 동시에 이야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33P -


[4장]을 한두 번 읽는 것만으로는 도통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감이 오질 않습니다. 여러 번 반복해서 읽다 보니 그제야 소유욕(물질, 관계), 인정욕(외적, 내적)과 같은 인간의 욕망에서 초래되는 결핍이 더 큰 욕망을 창출하게 되는 악순환의 구조가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글귀 하나하나에서 느껴지는 다양한 인간의 욕망들이 "도(道)"에 의해 순화되고 조화로워짐을 개인적 시선으로 들여다봅니다.


[날카로운 것을 무디게 하고] : 무언가를 채워서 욱여넣으려 하면 물리적 공간뿐 아니라 마음의 공간 또한 더욱 협소해지기 마련입니다. 충족되지 않는 욕망의 결핍감이 마음을 '밴댕이 소갈딱지'로 만들어 날카로운 예민함의 아우라를 뿜어내고는 합니다.

[얽힌 것을 풀어 주고] : 소속감(관계)의 욕구가 지나쳐 발현되는 '인맥 자랑'을 통한 존재감 확인은 속 빈 관계망들이 얽히고설킨 실타래가 되어 역(易)으로 자신을 옭아맬 수 있습니다.

[빛을 부드럽게 하고] : 과도한 인정 욕구 충족을 위한 지나친 치장(과도한 광내기=뽐내기)은 스스로의 존재감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나의 본모습을 숨기고 타인의 시선으로 살아가는 삶은 아무리 화려하게 치장한다고 한들 불쾌한 눈부심만 제공하여 주변 사람들이 나로부터 눈을 돌리게 할 수 있음을 마음에 새겨봅니다.

[티끌과 하나가 됩니다] :  '혼자 맑은 체 도도하게 굴어' 다른 사람을 하대하는 모습이 보입니다(일례로 '개, 돼지 사건'이 있겠네요). 비뚤어진 자만심은 스스로를 세상에서 고립시키는 지름길임을, 세상과의 어울림 속에서도 자신의 기개(氣槪)를 지켜나가는 힘이 진정한 도의 실천력임을 배웁니다.   


뫼비우스의 띠와 같이 쉼 없이 돌아가는 욕망과 결핍의 연결고리를 끊어낼 수 있는 것이 '도道'임을 발견합니다. 취하려 할수록 옹졸해지고, 비우려 하면 더욱 여유로워지는 이치를 생각합니다. '도'가 가진 비움의 여유가 '날카로운 것을 무디게 하고', '얽힌 것을 풀어 주고', '빛을 부드럽게 하고', '티끌과 하나 되게'하여 조화를 이루어 나가는 모습이 이제야 머릿속에 그려집니다.


도는 그릇처럼 비어,
그 쓰임에 차고 넘치는 일이 없습니다.
심연처럼 깊어,
온갖 것의 근원입니다.
- 33P -


무언가에 과도하게 집착하거나 욕심 내는 것을 쟁취하지 못해 괴로워할 경우, 우리는 종종 욕심과 번민 등을 "비우고 내려놓아라"라고 하는 것은 이러한 이치에서 비롯된 듯합니다.


"너는 그 그릇이 되느냐?"라고 질문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 나는 "더 많은 것을 담고 채워 넣을 수 있도록 그릇을 키우겠습니다"가 정답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릇만 키우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 생각하며 스스로를 닦달하면서 자학 아닌 자학을 했습니다.  하지만 [4장]을 이해하려는 이 순간, 이는 "비우라"고 말하는 '도'에 반하는 사고였음을 깨닫습니다. 욕망에 사로잡힌 사고를 비틀어 생각해야 할 때임을 자각합니다. ‘도’라는 것은 애당초 이미 비워질 만큼 비워진 원초적인 비움의 상태로 ‘도’처럼 ‘도’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끊임없이 비워내는 삶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릇을 키우는 것이 아닌...


"내려놓아라"라는 말은 심연처럼 깊은 근원의 '도'로 돌아가라고 이야기합니다. 심연에 가라앉혀두었던 나의 존재에 더욱 가깝게 다가가라고 재촉하는 것 같습니다. '도'에 멀어져 날카로워질 때마다 비우고 내려놓아 고무줄처럼 튕겨 다시 '도'로 되돌아오는 '도'를 향한 탄력성을 알아갑니다.




난잡한 맥시멈리스트로 살아온 나는 비우면 비울수록 공간이 한없이 넓어져 경계 없이 커져만 가는'도'의 이치를 애써 외면하고 있었음을 깨닫습니다. 앞서 고백한 집의 난잡함은 많은 쓰임들을 과도하게 집어넣은 나의 소유욕에서 기인합니다. 물질적 충족의 과도한 추종은 더 큰 결핍을 불러일으킴을 간과했습니다. 욕망에 사로잡혀 마음은 옹졸해지고 그릇은 작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욕심의 세(勢)는 더욱 확장되어 무언가가 비집고 들어 갈 틈이 없다는 사실이 내 눈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4장]을 통해 집에 대한 단편적인 욕망에서 나아가 삶 전반에 걸친 다양한 욕망에 대한 고찰의 필요성을 절감합니다. 단아한 미니멀리스트를 추구하는 지금, 단순 물건(물질)에 대한 소유욕을 줄이는 협의의 미니멀리스트가 아닌, 인간이 쫓는 모든 욕망들을 비워나가는 광의의 미니멀리스트로 생각을 확장해보려 합니다.  

 


(타이틀 이미지 출처: <a href='https://www.freepik.com/photos/business'>Business photo created by bedneyimages - www.freepik.co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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