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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sty 묘등 Apr 02. 2021

롤모델 알레르기

[도덕경 제3장] 마음은 비우고 배는 든든하게

안민(安民)의 길


제약 마케터로서 일한 지 8년이 넘어가던 시점에 부서장과의 불화로 “실장님의 기대에 부응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호기롭게 외치며 사직서를 던졌습니다. 이직 회사가 확정된 상태였으나 여러 가지 이유로 내근직 부서 이동을 제안받아 작은 변화만 시도해보기로 했습니다.


제약 마케터는 직업 특성상 외근 및 외박이 비일비재해서인지 모르겠지만 여성 마케터들 중 결혼과 출산을 경험한 선배가 거의 없다시피 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내근직 부서로 이동 후 1개월 시점에 만난 지금의 남편과 8개월 만에 부부의 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결혼 1년 후 딸이 세상 밖으로 나왔고 3개월의 출산휴가만 쓰고 직장에 복귀하였습니다. 출산휴가 들어가는 시점에 승진했기에 회사와의 의리 상 육아휴직은 애초에 고려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딸의 돌잔치를 하고 직장 어린이집에 딸을 입소시킨 후 제품 마케터는 아니지만 마케팅 조직 내에 마케터들과 긴밀히 협업(Co-work)하는 스텝 부서로 다시 이동하게 됩니다.

마케팅 조직에서 잠시 벗어난 그 시간 동안 참으로 알차게 연애, 결혼, 임신, 출산, 육아 등의 발달과업*을  수행하고 마케팅 조직으로 컴백하게 된 것입니다.

* 미약하지만 어른으로 성장하게끔 함에 따라 나에게는 발달과업처럼 느껴졌습니다.


마케터의 경력을 십분 발휘 해 새로운 업무에 재미를 느끼며 나름 열정적으로 일을 하고 있을 때입니다. 어느 날 후배 여성 마케터가 깜빡이도 안 켜고 훅 말을 던집니다. (후배는 예의 바르고 진지하게 이야기했지만 나에게는 이렇게 느껴졌습니다.)


선배님은 저에게 롤모델이세요. 마케팅하신 여자 선배님 중 지금까지 결혼, 출산, 육아하면서 일선에 남아 계신 분이 없잖아요(지금은 아니지만 그때는 그랬습니다). 저도 선배님처럼 결혼도 하고 육아도 하면서 마케터로서 능력도 인정받고 열정적으로 일을 계속하고 싶어요.

선배님이 우리의 길을 만들어 가시고 있는 거예요”




훌륭하다는 사람 떠받들지 마십시오.
사람 사이에 다투는 일 없어질 것입니다.
귀중하다는 것 귀히 여기지 마십시오.
사람 사이에 훔치는 일 없어질 것입니다.
탐날 만한 것 보이지 마십시오.
사람의 마음 산란해지지 않을 것입니다.
-27P-
노자는 우리에게 일반적으로 떠받들고 있는 그 훌륭하다는 것, 귀중하다는 것, 탐날 만하다는 것이 진정으로 바람직한 궁극 가치인가 하는 근본적 물음을 가져 보라고 말하는 게 아닐까?
-29P-
중요한 것은 이런 일상적 지식이 절대적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일상적인 것을 넘어서는 경지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일상적 지식을 넘어서는 참된 통찰이 필요하다는 것, 그런 통찰을 얻기 위해서는 일상적 지식이 주는 편견에서 해방되어야 한다는 것 등을 깨닫는 것이다. 하상공의 말처럼 우민이 아니라 안민(安民)의 장이다.
-30P-


누군가에게 보여지기 위한 삶을 살아오지 않았고 나의 삶이 어느 누구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라 추호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에 후배의 말은 나에게 너무나도 낯설게 다가왔습니다. 사실 나의 어떤 점이 ‘훌륭’하고, ‘탐날 만한 것’인지 도통 눈치채지 못해 더욱 충격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누군가의 롤모델일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스스로 점검하게 만들었습니다. 의식의 흐름대로 일상을 흘려보내는 듯 살아온 나인데, 다른 사람 눈에 비친 나의 모습을 점검하게 되는 경험이 성가셨습니다. 누군가의 인생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부담스럽고 나의 행동에 대한 의식적 자기 검열이 걸리적거렸습니다.


내 멋대로 나의 기준대로 살아왔다고 자부합니다. ‘무엇이 되겠다.’, ‘누구처럼 되겠다.’라는 뚜렷한 목표도 존경하는 롤모델도 없이 살아왔습니다. 한 때는 이러한 내가 목표 없이 삶을 살아가는 것 같아 삶에 대해 무책임하고 게으른 태도는 아닌 지 자책하기도 했지만, 뚜렷한 목표 의식이 희미할 뿐 나만의 삶의 기준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기에 그냥 생긴 대로 살자로 결론 내며 스스로를 괴롭히는 일 중 하나를 인생에서 삭제시켜 버린 것이지요.  


“다른 사람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좋은 기회일 수 있는데, 나는 왜 이리 알레르기 반응을 나타낼까? 이타적 개인주의를 지향하는 내가 아직은 수양이 많이 부족한가 보다”로 치부하려다 생각을 바꾸어 봅니다.


오늘 3장이 자기 합리화의 좋은 구실을 제공해줍니다. 일명 ‘확증편향’ 일 수 있겠네요.

3장에서 이야기하는 ‘일상적 지식’의 한 조각이 '롤모델'일 수 있다는 가정 하에 나의 롤모델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은 근본적 물음에 다가가는 면역반응이었다 믿어보려 합니다. 삶의 태도에 대한 긍정적 시그널로 이해하겠다는 이야기입니다.


지금이 그때였다면 나는 후배에게 이렇게 이야기해줄 것입니다. ("너 속고 있는 거야"라고 차마 말할 수 없기에) 나에게서 보았다는 후배의 “일상적 지식(그 훌륭하다는 것, 귀중하다는 것, 탐날 만하다는 것)”이 “진정으로 바람직한 궁극 가치인가 하는 근본적 물음을 가져 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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