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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sty 묘등 May 03. 2021

질책인 듯, 위로인 듯

딸이 전하는 편지

복잡 다난한 회사 업무와 인간관계의 갈등에 치여 심신이 나락으로 떨어진 듯 하루하루 살아내기가 힘에 부친다. 우선 나부터 살아야겠다는 생존 본능이 발동했는지 주말이면 일어나지 못하고 침대에 널브러져 휴식을 통한 에너지 채움을 한 지 수주째다. 엄마가 침잠하며 스스로의 치유 시간을 보내고 있는 동안 딸은 나름대로 혼자 흘려보내는 외로움의 시간을 꾸역꾸역 견뎌내고 있었나 보다. 흘러내릴 듯 위태로워 보이는 엄마에 대한 안쓰러움과 아직은 어린 본인을 방치하는 엄마에 대한 노여움의 감정이 혼재되어 심리적으로 힘들었나 보다.

지속되는 혼자만의 시간과 누적된 심심함의 무게를 견디다 못한 딸이 이대로는 안 되겠는지 엄마에게 글로 말을 건다. 혹여나 본인의 마음이 전달되지 못할까 하는 불안감을 잠재우려는 듯 야무지게 우표를 그려 놓은 편지 한 장을 침대에서 흐느적거리며 자고 있는 엄마의 머리맡에 살포시 놓아두며 묵직한 조언을 건넨다.


To. 엄마

엄마 안녕? 나 현경이야.
엄마가 요즘 아픈 것 때문에 힘든 건 아는데 내 기분도 생각해주었으면 좋겠어.
아빠는 자꾸 외출하고, 나도 너무 심심해.
아,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엄마가 너무 무리하지 말고 적당히 일을 하면 좋겠어.
그리고 주말에 잠만 자고 그러지 말고 좀 외출도 하고 바람도 쑀으면 좋겠어.
엄마가 몸이 아픈 것도 알지만 그래도 최대한 건강하게 주말을 보낼 수 있도록 노력해줘.


[어느 주말, 10세 딸이 엄마 머리맡에 두고 간 편지]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는데

어이쿠...
나의 힘듦이 딸에게도 전염됐네

진작 끊어진 줄 알았던 탯줄이
아직도 온기를 머금은 채
위로를 흘려보낸다

스스로를 못 챙기는 엄마에게
질책하듯 위로하는 딸아~

엄마가 한 눈 판 사이
어느새 많이도 자라 있구나



(타이틀 이미지 출처 : Pixabay, Antonios Ntoum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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