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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sty 묘등 Apr 26. 2021

민들레와 하양꽃

척박한 '틈'속에 피어난 굳은 생명력


민들레와 하양꽃


민들레와 하양꽃의

고향은 그 들판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인간과 꽃들의

힘이 차이가 나도 그 마음들은

꺾을 수가 없다

그건 바로 용기와 굳은 의지였다

그 마음은 나무의 뿌리처럼

100년 된 나무처럼 아무도

꺾을 수가 없다


[8세, 2019.03.09]




봄이 기지개를 켜고 깨어나고 있을 때쯤 길을 걷고 있는데 딸이 갑자기 길가에 멈춰 선다.

딸의 발걸음이 머문 자리로 눈길을 돌리니 노란 민들레 한 송이와 이름 모를 하얀 야생화가 듬성듬성 피어있다.

차도 옆 흙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좁은 보도블록 사이의 틈을 비집고 나와 수줍게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는 여린 풀꽃들을 보고 있자니 애처로우면서도 싱그러운 생명력이 경이롭다.

여리여리 고운 꽃들과 말없이 꽃들을 응시하고 있는 어여쁜 딸을 번갈아 보다가 딸이 걸음을 멈춘 구체적 의도를 확인하고 싶어 진다.


"왜 걸음을 멈춘 거야? 꽃이 예뻐서 보려고 한 거야?"


딸이 나를 올려다보며 이야기한다.


"엄마, 나 시상詩想이 떠올랐어"


빈손으로 동네 마실 오듯 가볍게 나온 터라 필기도구가 있을 리 만무했다. 하지만 딸의 시상이 휘발될까 마음이 조급해진 나는 핸드폰의 녹음 기능을 활용하기로 한다.


"엄마가 '시작'하면 떠오르는 시상을 얘기해봐. 우선 목소리로 기록했다가 나중에 종이에 옮기자."


나의 '시작'  소리에 맞춰 딸의 입에서 옹골찬 목소리를 타고 '시'가 흘러나온다

 


"어떤 느낌을 받았길래 이런 멋진 시를 생각해낸 거야?"


"그냥... 꽃을 보니까 갑자기 시가 떠올랐어."


어른의  혼탁한 호기심이 아이의 순수한 문학력에 간섭이 될까 시인의 생각을 더 이상 되묻지 않기로 한.


집으로 돌아온 딸은 스케치북을 펼쳐 시를 쓰고 시의 주인공인 민들레와 하양꽃을 그려 장식하며 그렇게 작품 하나를 완성한다.



어린 시인... 딸아~


여린 풀꽃들의 고향은 어딘가에 있을 넓고 푸른 들판이었을 텐데... 너의 눈앞에 있는 민들레와 하양꽃은 어쩌자고 척박한 보도블록 틈에 피어나 인간의 힘에 의한 꺾임에 노출되어야만 했을까?


하필이면 좁디좁은 도로 틈 사이에 생명을 움튼 자신의 처지가 서럽고, 어쩌면 고향이었을 들판이 그리워 하소연하듯 지나가던 너의 발걸음을 잡았을까?


음~ 아니네. 너의 시詩를 들으니 엄마의 오해인 듯 하구나!


민들레와 하양꽃은 자신들의 처지를 비관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생명력에 대한 용기와 굳은 의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그렇게 너에게 말을 걸었나 보다.


자동차들이 매연을 뿜어내고 인간들이 혼잡하게 지나다니는 도로변 한복판의 협소한 틈이라는 공간적 열악함에도 여린 풀꽃의 경이로운 생명력은 이를 아랑곳하지 않았구나. 생명체로써 존재해야 함에 대한 자연의 의무에 그저 충실할 뿐 환경의 열악함을 두려워하지도 슬퍼하지도 원망하지도 않은 듯하네.


비록 좁은 틈에서 생명의 움을 튼 여리게만 보이는 민들레와 하양꽃이지만 그들의 기억 속 고향은 그 넓고 푸른 들판이었기에 여린 풀꽃의 뿌리가 아닌 100년 된 나무뿌리의 기개를 간직하고 있었나 보다.


그런 단단한 싱그러움이 너의 눈부신 푸르름과 공명해 서로를 끌어당겼구나.

풀꽃의 여린 어여쁨만을 흘기듯 보지 않고 생명력 밑에 도사린 풀꽃의 용기와 굳은 의지의 이야기를 읽어낸 우리 딸이 엄마는 참으로 대견하단다.


주변을 바라보는 푸릇하고 깊은 너의 시선이 풀꽃의 생명력을 닮아 100년 된 나무처럼 네 안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엄마는 너의 고향이 되어주고 들판이 되어주겠다 다짐을 해본다.


- 어른의 시선으로 너의 생각을 헤아려보며,

엄마가 -




(타이틀 이미지 출처: Freepik, bearf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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