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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자까 Mar 31. 2020

전 올해 27살로 아직 이뤄놓은 게 없습니다.

그렇지만 나도 나름의 쓸모가 있겠지?



난 좀 심각하다


1. 내 삶은 남부럽지 않게 다사다난하다. 

1-1. 사회에서 말하는 '나이별 달성 목표'를 고려해보면 바람직하지 않다. 적당히 대학을 나와 취업을 하고 돈을 벌고 이성과 결혼하여 떡두꺼비 같은 아이를 낳아 바닥을 뚫고 내려가는 저출생 사회에 기여하기 등이 그 예시인데, 한 30%는 달성했으나 그 외는 희망이 없다. 전에도 언급했듯이 나는 예술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이다. 이 문장 안에서 그 어떤 '취업/돈'의 해당사항이 느껴지는 사람이 있는가? (있다면 제발 연락을 달라). 그래도 어쨌든 스펙은 괜찮은데 취업할만한 구석은 없다. 가방끈은 길지만 그만큼에 비례하는 소득 수준은 기대하기 어려운 여성이며, 남자 친구 말고 여자 친구가 있다. 하필 퀴어이기까지 하다니 나는 정말 이 사회가 바라는 인간은 못 된다. 

지난 설 정의당 현수막.

1-2. 부모님 세대들은 대부분 그렇듯 나의 부모님도 저 일련의 나이별 튜토리얼을 무리 없이 따라가셨다. 꿈과 상관없이 돈과 일에 집중하셨고 본인 자식들은 하고 싶은 거 할 수 있게 물심양면 뒷바라지도 해주셨다. 그러나 나는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곱게 커서 무지렁이가 되어 버렸지 뭔가. 예술을 한다는데 겁도 없이 환영하고 장려해주신 부모님과 고집 세고 독립적인 자식의 환상적인 협동은 이토록 막막한 'B.F.A. Bachelor of Fine Arts'라는 학위를 나에게 안겨주었다. 지금 진행 중인 M.F.A 마스터 오브 파인아트는 좀 덜 막막할지.

빅뱅이론 세계관에선 당연히 휴짓조각이나 다름없을 석사.


2. 나는 대학원에 들어오기 전 거대한 우울과 무력감을 맞닥뜨렸다. 독일 유학을 시도했으나 접고 돌아와 대학원 합격을 받아놓은 뒤, 달리 할 일이 없어 집에서 집안일을 하며 잠깐의 휴식을 즐기던 중이었다. 
2-1. 내가 있는 세계와 집은 참 안전한 곳이다. 하지만 너무 안전했다. 좀 이상할 정도로 안전했다. 십리 밖에선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데 나만 거대한 정원에 들어앉아 커피를 마시는 기분이었다. 이렇게 극도로 안전한 세계에 살면 멀리서 덮쳐오는 모든 소란을 모르는 척할 수 있겠지만, 나가는 순간 나는 1초도 살아남지 못할 거란 예감이 들었다. 남들은 뭐라도 들고 싸울 것 같은데 어쩐지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았다. 
2-2. 나는 비옥한 토양에서 온난한 기후 속에 쑥쑥 잘 컸지만 내가 옮겨 심어져야 할 공간이 그에 준할 수 있을지는 기대할 수 없다. 실제로 그렇다. 수도권 중산층 이상의 집에서 풍족한 자본을 누리면서 문화생활을 하고 자신을 발전시켜 왔다. 그러나 이제 어른이 된 나는 그 환경을 그대로 나에게 제공하기 어렵다. 팔자 좋게 태어나 돈벌이엔 관심 없고 순수예술이니 철학이니 미학이니 하는 것만 좋아했기 때문이다 (아이고 세상에!) 능력치로 말하자면 글이나 좀 쓰고, 사진이나 좀 찍고, 독일을 제 집처럼 드나들어서 어정쩡하게 외국물 먹은 게 전부다. 이 실속 없는 사람이 어떻게 밥벌이하고 사냔 말이다. 운 좋게 돈을 번들 내가 누리고 살아온 것을 그대로 재현할 수 있을 정도가 될까. 우선 이 정도의 집을 얻으려면 140살 까지는 살아야 할 것 같은데. 
2-3. 그래, 대학원에는 가지. 정말 가고 싶어서 가는 것도 맞고,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실제 작가의 삶을 시험판 버전으로 경험할 수 있을 거란 기대도 컸다. 그러나 그 봄부터 찾아온 지독한 무력감은 종종 모든 걸 부질없게 만들었다. 그나마 대학원 학기가 시작하고 머리를 터뜨려가며 바쁘게 살다 보면 이 무력감을 느낄 겨를도 없다. 어떻게든 앞으로 가다 보면 답도 생기고 조금씩 선명해져 가는 현실을 버텨갈 자신감이 더해진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가끔 찾아오는 무력감이 꽤 심각하다. 내가 꿈나라에만 사는 사람도 아니고 현실 세계에 사는 사람인데 어떻게 마냥, '에이 세상에 돈만 중요한가, 내가 나를 지키고 내 꿈을 실현시키면 되는 거지, '라는 곱디 고운 생각만 하고 살 수 있겠나. 나를 미워하고 싶진 않다. 하지만 나는 나를 어디까지 지키고 살 수 있을까.
2-4. 어쩌면 지금 나는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인생을 진행하고 있는 게 아닐까. 
2-5. 이런 간담 서늘한 자각이 들어본 적 있는가? 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 순간 지독하게 외로워졌다. 이제 와서 모든 것을 후회하기엔 너무 먼 길을 온 것 같아서. 하지만 어떡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어서. 



3. 그러나 억울하기도 하다. 내가 뭘 잘못한 게 아니잖아! 
3-1. 예술을 하고 싶고, 사진으로 자기표현을 하는 게 가장 좋고 잘하는 일이라서 열다섯에 진로를 정했다. 원하는 대학에 가서 원하는 전공을 했고 거기에 필요할만한 경험도 빠짐없이 해왔다. 그리고 사회와 동떨어져 산 것도 아니었다. 계속해서 이슈의 흐름을 관찰하고 사회적 소수의 이야기를 언론을 통해 조명하는 활동에도 참여했다. 최소한 게으르게 산 적은 없었다. 하고자 하는 게 있었고 내가 가고자 하는 길로 열심히 갔다. 노오력을 안 해서 내가 이 모양이라면 무슨 노오력을 더 해야 하는가. 내가 양성애자-바이섹슈얼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잘못된 일은 아니지 않나.

3-2. 태어나서 나름대로 빈칸 없고 떳떳한 삶을 꾸려왔다 생각했는데 사회인이 되니 상황이 좀 암담했다. 대학만 가면 뭐든 될 줄 알았는데 4년제 대학 졸업한다고 취업되는 것도 아니고, 예술 좀 공부하고 제1세계 서구권 국가에서 유학 좀 하다 들어왔다고 경쟁력이 생기지도 않는다. 그리고 내가 미성년자나 아동을 건드린 것도 아니고 사귀고 싶은 사람이 남자와 여자 둘 다 될 수 있는 것뿐인데 죄지은 양 숨어 살아야 할 껄끄러운 존재가 되어있었다. 남자와 결혼한다고 하면 이 나라에선 이상하리만치 환영해주면서 집도 주고 빨리 애를 낳으라고 독촉도 하겠지만, 여자와 결혼하려면 비행기 티켓을 끊어야 한다. (캐나다 or 미국, 당신의 선택은?) 그깟 티켓이야 끊으면 그만이겠지. 그러나 내가 이 사람을 얼마나 사랑한들, 우리가 서로를 진실한 인생의 파트너로 여긴 들, 자식도 낳을 거라고 읍소한들 중요하지 않다. 한국을 포함한 이성애 중심 국가에선 여자와 남자의 사랑만을 진정한 사랑으로, 그 둘의 결합만을 가정 공동체로 인정하니까. 

혼자 있고 싶네요 모두 로그아웃 해주세요

3-3. 그러나 사회에서 보기에 변변찮단 이유 만으로 내가 내린 선택들을- 종국에는 나 자신을 모두 다 후회해야 하는가. 대충 살았으면 말이나 안 하지, 그러자면 너무나 억울했다. 
3-4. 나도 잘 모르겠다. 사회가 원하는 것을 맞춰줄 수도 있겠지만 굳이 그래야 할까. 정말로 꼭 그래야만 하냔 말이다. 사회가 원하는 요구조건에 다 맞아야만 내 진정한 존재가치가 100% 인정받는 건 아니잖아. 그런 식으로 인간의 가치가 좌우되면 천부인권은 다 무슨 소용이야.
3-6. 나도 내 밥벌이는 좀 할 줄 알아야 하지만. 상황이 한심한데 딱히 잘못한 건 없다 보니 점점 억울충이 되어간다. 



4. 그렇지만, 난 내가 사회에 요긴하게 쓰일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4-1. 우선 예술을 한다. 글을 쓴다. 즉 소통을 하려 한다. 글이라는 언어나 내가 가진 시각언어로 세상을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것에 조금이라도 일조하고 싶다. 반드시 정치인만이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 아니다. 예술을 하고 작품을 만들어 사회에 내 보이는 모든 행위가 바깥세상에 거는 대화의 시작이다. 사람들의 마음에 조금에라도 물음표를 던질 수 있다면. 나의 작업을 본 후에 마음 어딘가에 잔잔한 파장이 그려진다면 그 이상 바랄 것이 없으며, 더 효과적으로 말을 던지기 위해 내가 가진 능력을 벼리고 있다. 그것에 시간과 돈을 쓰느라 '취직과 결혼에 적당한 때'를 지난 들 중요하지 않다. 보다 나은 미래에 대해 다가가기 위해 아주 작고 사소하지만 새로운 질문을 던져서,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 나의 직업이고 소명이다.
4-2. 물론 나는 주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한다. 큰 담론을 건드리는 건 간이 떨려서 못한다. 하지만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도 보편적일 수 있다. 사회적인 사람인 이상 개인 경험의 모든 구석에는 사회가 들어있다. 지금도 나는 정말 개인적인 이야기만 하고 있지만,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도 이 지난한 글 안에서 당신 자신의 경험이 소환되는 작은 구석은 발견할 수 있지 않는가. 하다못해 아예 정반대의 입장으로 살아왔대도 괜찮다. 세상엔 가지각색의 사람이 있어서 흥미로운 거니까. 그리고 이 다양한 사람들은 서로 긴밀하게 연을 맺고 있다. 
4-3. 내가 굳이 큰 담론이나 언어를 가져오고 싶지 않은 건 그 때문이다. 결국 어떻게든 우리의 세계는 연결되기에. 반대의 위치에 있든, 바로 옆에 있든, 우리는 이 공동체 안에서 서로의 이웃이기에. 
4-4. 이런 당연하지만 중요한 사실을 틈틈이 조명하고 싶어서, 크고 작은 질문을 던지고 싶어서 나는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무력감이 태풍처럼 몰려오곤 해도 대체로, 당당할 수 있다. 
4-5. 당연히 내가 관심종자라는 것도 이 행위에... 한몫한다. 

아무도 관심 없지만 정말 열심히 떠드는 나



5. 어쩌면 난 답할 수 없는 질문에 섣부른 답을 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막상 27살 먹고 이룬 게 하나도 없다고 인정하자니 체면이 체면인지라 부랴부랴 내가 왜 이 사회에 필요한지 어필하고 있는 거 같다. 지금 문득 이 글 안에서 대체 '사회'라는 단어를 몇 번이나 쓴 건지 감이 안와 무서워졌다. 그래도 인정한다. 이 모든 게 인정 욕구가 끄집어낸 허술한 답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5-1. 여전히 사는 건 요지경이다. 내가 세상이 바라는 전형적인 사람은 못 된다는 건 이미 알고 있다. 그래도 나는 사회적 기득권과 소수자의 입장에 동시에 속해있는 만큼 경험의 폭도 -상대적으로!- 넓을 테니, 나만의 이야기로도 다양한 지점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5-2. 바깥에서 부여하는 일시적인 가치에 타협하지 않고, 멀리 보았을 때 더 중요한 것들을 내 가치판단의 기준으로 삼고 살고 싶다. 그리고 그 기준 하에서 세상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기꺼이 하고 싶다. 이렇게 쓸데없이 생각 많고 소통에는 영 서툰 나지만. 
5-3. 내가 필요한 경우도 하나쯤은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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