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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 in Africa Oct 16. 2023

 나는 왜 세상에 존재한 걸까?

지금 여기 감사일기9. 딸의 일기에 가슴이 철렁했다. 

제목: 나는 왜 태어났을까? 

나는 이 새상에서 왜 태어났을까? 이러께 쓸모 없는데

난 왜 이 새상에 왜 존재한걸까? 

난 아무것도 못하고 운동도 못하고 무시만 밨고!

엄만 왜 날 낳았을까?

아무것도 못하고 학교에서는 맨날 넘어지고

난 왜 태어났을까 놀림만 밨고 


6살 딸아이가 몰래 쓴 글을 훔쳐보고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직 맞춤법도 제대로 익히지 못한 만 6살 아이가 무슨 "삶과 존재"에 대한 사유를 이리도 지독히 한단 말인가! 

내가 그렇게 사랑을 주고 칭찬해 주며 키웠는데, 

쓸모가 없는 인간이라 느끼다니! 

뭐라고?  왜 낳았냐고?? 

내가 혹시라도, 한 번이라도  딸에게 "쓸모없는 존재"라는 느낌을 갖도록 말하거나 행동했었을까? 

내가 무의식 중에 딸이 운동이나 무언가를 못했을 때 딸을 무시하는 행동이나 말을 했었던 걸까? 

내가 뭘 잘못한 거지? 뭐지? 뭐지? 왜 저런 생각을 하게 된 거지? 

화도 나고 걱정도 되고 자괴감도 느껴지고 만감이 교차하며 가슴이 쿵덕 쿵덕 뛰었다.  


당신을 감정적으로 흥분하게 만드는 일이 일어날 때마다-그것이 특정한 사건으로 나타나든 아니면 타인의 행동으로 나타나든 간에- 당신은 과거의 반영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이 규칙에 예외는 없다. '감정적 흥분=기억의 상기'인 것이다. 
그것이 당신에게 감정적으로 불편한 영향을 끼치는 이유는 '그것이 당신에게 아직 통합되지 못한 과거의 불편한 무엇인가를 떠올리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마이클 브라운, 현존수업 중에서


요즘 읽고 있는 "현존 수업"이라는 책 속 구절이 떠올랐다. 

아.. 이 사건 또한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하나의 단서로 내 삶에 나타난 건가? 


차분히 생각해 봤다. 

난 왜 딸의 일기에 이렇게 감정적으로 흥분하는 거지? 

딸의 일기가 내 과거의 어떤 불편한 기억을 떠올리게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 


특별히 예쁘지도, 공부도 운동도 특별히 잘하는 게 없던 수줍음이 많았던 소심한 아이

항상 말이 없던 아이, 사람들 앞에 서면 머릿속이 하얗게 되어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못 하던 아이

사랑받고 싶고, 칭찬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해서 항상 의기소침해 있었고, 다른 친구들처럼 예쁘지도, 성격이 좋지도, 뭔가를 특별히 잘하지도 못했던 내가 부끄럽고 창피했던 아이. 

내가 딸아이의 나이였을 때, 나는 이런 아이였다. 

(아이고.. 그렇게 오랜 시간 긍정 확언을 하고, 내면 아이를 다독여 주었다고 생각하는데도 내 과거를 떠올리면 아직도 이런 아이가 떠오른다.) 

그랬네.. 

내가 그 시절에 나를 쓸모없는 아이, 부족한 아이라고 느꼈고, 

내가 그 시절의 나를 그렇게도 무시했었네. 그리고 여전히 그러고 있었네...


나는 딸아이의 일기에 어린 시절의 내가 떠올라 그렇게 감정적으로 격하게 반응했던 거였다. 


요즘 몰입해서 읽고 있는 "현존수업"이라는 책 덕분에 나는 이 갑작스러운 감정적 폭풍의 상황에 빠져 오래 허우적대지 않고, 이성을 되찾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죄책감과 당황스러움에 빠져 나를 자책하고 딸아이를 원망하며 한동안 이해가 되지 않는 이 상황에 우울한 시간을 보냈을 뻔했다. 


감정을 추스르고 딸아이에게 차분히 물어봤다. 

"어떨 때 지아는 무시당하는 느낌이 들어?"

"내가 친구 이름을 불렀는데, 친구가 내 말을 못 들은 척할 때"

"그 친구가 진짜 못들은 건 아닐까?"

"아니야 분명히 들었어" 

" 지아도 엄마가 부를 때 잘 못 들은 적이 있었잖아. 언제 그랬지?"

" 내가 뭔가를 하고 있을 때나, 아니면 딴생각을 하고 있을 때 못 들었겠지" 

" 그때 지아는 엄마를 무시한 거였어?"

"아니.. 그냥 다른 일을 하고 있을 때는 못 들을 수 있지" 

"그럼 친구들도 지아를 무시한 게 아니라, 그냥 다른 일 때문에 지아가 부르는 걸 못 들은 걸 수 있겠다 그지?

앞으로는 그렇게 무시당한다는 느낌이 들 때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 다시 한번 말하거나, 아니면 직접 가서 물어볼까?" 

"그래 그러면 되겠네."

"응" 

"지아가 속상한 일이 있거나 슬픈 일이 있으면 엄마한테 꼭 알려줘. 엄마랑 같이 방법을 찾아보자 알았지?" 

"응"

" 지아가 엄마 딸이어서 엄마는 너무너무 행복해. 사랑해~"


우리가 왜 세상에 태어났는지, 왜 존재하는지에 대한 철학적 문제에 대해서는 엄마인 나로서도 아직 답을 찾지 못했기에 지아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내가 해결하지 못한 내 내면의 문제는 아직도 숙제로 남아있다. 

딸을 키워가며 함께 성장하다 보면 언젠가 알게 될까? 내가 왜 세상에 존재하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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