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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빛 Jul 11. 2023

조용하고 치열한 주전경쟁

  운동을 마치고 모인 회식 자리에서였다. 언니들이 물었다. "너네는 배구하면서 제일 힘든 게 뭐야?" 제각기 서브, 서브캐치, 오버토스, 구체적으로는 공 찾아 들어가기 등이 힘들다고 답했다. 나도 답했다. "주전경쟁이요."


  그렇다. 우리 팀은 주전 경쟁이 나름 치열하다. 다만 3선 수비의 양 옆에서 국지적으로 일어나는 경쟁이라 다른 사람들이 그 치열함을 모를 뿐이다. 한 명의 후보선수도 없이 딱 9명을 맞춰서 대회를 나가곤 했던 우리 팀에서, 그것도 수비수 라인에서 주전경쟁이 시작된 건 최근 일이다.


  거의 고정적으로 레프트백을 담당하던 언니의 포지션이 공백이 생긴 앞차 자리로 바뀌었다. 그런 와중에 올해 초 입단한 신입멤버 두 명의 실력이 어느 정도, 그러니까 경기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좋아졌다. 빈자리는 레프트백, 라이트백 두 개인데 그 자리에 설 수 있는 선수는 나를 포함해 5명이 된 것이다. 2.5:1이라니. 이 얼마나 치열한 주전경쟁이란 말인가!


  처음 배구를 시작했을 때부터 작년까지는 주전에 대한 욕심을 가지지 않았다. 일단 주전을 차고앉을 실력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혼성으로 뛰는 학교 팀에서 여자 선수는 대회 규칙에 따라 채워야 하는 머릿수로 존재했기 때문에 어쩌다 배구를 잘하는 50대 이상의 남자 직원이 있으면 여지없이 대체되곤 했다. 그런 상황에서 주전 욕심은 무의미했다. 하지만 여자배구팀에 들어오고 심지어 얼떨결에 대회 데뷔까지 하게 되면서 스멀스멀 욕심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치열한, 욕심' 등으로 표현해 서로 눈을 부라리고 피 나는 훈련을 하며 주전을 노릴 것 같지만, 우습게도 이 주전경쟁은 나 혼자만 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5명의 선수를 실력으로 줄 세우면 나는 3번이다. 우리 팀 누구에게 물어보더라도 확신의 3번일 것이다. 내 뒤에는 올해 배구를 시작한 신입 멤버 두 명이 있다. 그들은 사실 주전 경쟁에 아직 관심이 없다. 내 앞의 두 명은 확실히 나보다 잘하기 때문에 주전 경쟁이 의미가 없다. 심지어 이 둘 중 한 언니는 "나는 경기에 안 뛰어도 괜찮다. 동생들이 돌아가며 다 같이 뛰는 것도 즐겁다."며 인자하게 말함으로써 가진 자의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 이 얘기를 들은 나는 괜히 마음이 찔렸었다. 하하.


  주전경쟁이라 해봤자 열심히 운동하는 당연한 일과 내가 주전을 노린다며 연습 때마다 공공연히 얘기하는 일 정도의 소소한 것이다. 이렇게 말하니 앞서 치열한 주전경쟁으로 표현한 게 점점 더 우스워지는 것 같다. 하지만 주전으로 뛰고 싶다고 생각하고 장난스럽지만 선포하는 것만으로도 운동에 큰 동기가 된다. 덕분에 진심을 담아 열심히 운동하게 되는 것이다. 피곤하고 바빠도 운동을 빠지지 않으려고 하고, 어떤 포지션 연습이든 최선을 다하게 되는 건 전부 나 홀로 하는 주전경쟁 덕이다.


  나는 오늘도 조용하고 치열한 혼자만의 주전경쟁을 하러 체육관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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