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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빛 Sep 04. 2023

요가를 못하는 이유

워킹맘에게는 천금 같은 시간, 시간, 시간!

  기숙사에 살던 대학생 때 캠퍼스 안 스포츠센터에 요가 프로그램이 생겼다. 태권도 학원 한 번 다녀보지 않은 내가 처음으로 등록한 운동이었다. 그리 오래 배우지는 않아서 첫 요가가 어땠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좋은 경험이었음은 분명하다. 취직 후 자연스럽게 요가센터를 찾았기 때문이다. 6개월 등록 시 할인이라는 광고를 보고 찾은 요가센터는 일반적인 요가뿐만 아니라 플라잉 요가, 소도구 필라테스, 핫요가 등 여러 프로그램을  골라 들을 수 있었다. 플라잉 요가는 살을 쥐어짜는 것 같은 아픔이 있었지만 매달려 있는 것 자체가 재미있었다. 다른 요가 프로그램들도 운동을 마치고 나면 손가락 끝이 찌릿한 느낌이 좋았다. 마치 어딘가 막혀 있던 피가 온몸을 도는 듯했다.


  바쁜 유치원 생활 때문에 요가센터에 재등록을 하지 못했다. 또다시 몇 년이 흘러 한 반 정원이 3명인 작은 요가원에서 다시 요가를 시작했다. 선생님은 요가의 정신(?)과는 조금 결이 달라 거친 느낌이 있었다. 수강생들의 줄지 않는 뱃살에 대한 의문,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조금씩 가진 말린 어깨와 굽은 목에게 하는 지적, 심지어는 작고 짧은 나의 손가락이 다 큰 게 맞는지에 대한 의심까지 외모에 대한 발언을 거리낌 없이 하는 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곳에서 요가가 내 몸을 느끼고 수련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거친 언어에 2년을 채우지 못하고 슬그머니 요가원을 그만두긴 했지만.


  수리야나마스카라의 순서를 외우지 못하고 차투랑가를 버티지 못하며 물구나무서기는 그저 로망일 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요가를 좋아한다. 심지어 복직 후 요가를 좋아하는 두 명의 동료 선생님과 자체 동아리 '새만요(새벽에 만나... 가...)'라는 새벽 요가 동아리를 만들어 원데이 요가클래스를 다녀오기도 했다(애정하는 새만요 이야기는 따로 써볼 것이다!). 이렇게나 요가를 좋아하는 나는 왜 평소에 요가를 하지 못하는 것인가?


  어이없게 들릴지도 모른다. 내가 요가를 못하는 것은 참으로 간단한 이유에서다. 바로 샤워를 두 번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쓰고 나니 좀 더럽게 느껴지기도 하고 생각하던 것보다 더 어이가 없. 허허. 하지만 나는 시간이 천금과도 같은 워킹맘이기에 샤워를 두 번 한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너무나도 사치스러운 일이다.


  프로 계획러 성향이 다분했던 나는 육아를 하며 더욱더 계획적으로! 효율적으로! 를 외치며 움직이게 되었다. 출근, 등원 준비를 동시에 하기 위해 움직일 순서를 생각하며 잠이 들고, 퇴근길에는 저녁 식사 메뉴의 레시피를 떠올리며 최적의 요리 순서를 정하곤 한다. 샤워할 때도 가장 덜 움직이고 빠르게 끝내는 나름의 순서를 지키고, 출근과 동시에 하루 일과를 체크리스트로 만들어 써둔다. 이쯤 말하면 샤워를 두 번 할 수 없어서 요가를 할 수 없다는 나의 변명이 조금은 이해가 되려나.


  실상은 프로 '계획러'이지 '실행러'가 아니라서 욕심과 의욕만 앞서고 완벽히 해내는 일은 잘 없다. 하고잽이라 벌리는 일은 많은데 수습이 잘 안 되니 더 시간과 효율에 집착하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를 키우는 것, 내 일을 하는 것. 그 자체가 분명 행복하긴 한데 깊은 내면에는 채워지지 않는 틈이 있어서 무언가 중요한 것들이 새어나간다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시간에 볶아쳐지는 삶을 살지 않아야 하는데 늘 시간이 부족하다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것일까.


  그깟 샤워 한 번 더 하면 어때. 고작해야 20분도 안 되는 시간인데. 까짓 거 오늘은 요가매트를 한 번 펼쳐야겠다. 한참을 말아두어서 끝이 살짝 말린 요가매트를 바닥에 꾹꾹 누르고, 그보다 조금 더 말린 내 어깨도 쭉쭉 펼치자. 붙잡아두고만 싶었던 시간을 오늘은 그냥 흐르게 두어야지. 수련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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