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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빛 Sep 12. 2023

부족한 기초를 위한 변명

  나는 배구 동호인이다. 주변에서 배구를 즐겨 본다는 사람은 있어도(특히 지난 올림픽 이후로) 본인이 배구를 한다는 사람은 흔치 않다. 게다가 배구를 하는 여자는 더 보기가 힘들고. 하지만 유독 교직 사회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이유는 모르지만 교사(특히 초등과 특수)에게 배구는 축구보다메이저한 운동이다. 나는 학교 배구팀으로 입문하여 자연스럽게 여자 배구 동호인이 되었다.


  사실 나는 기초를 제대로 배우지 않은 채 배구를 시작했다. 선수 출신으로 엘리트 배구 코칭을 오래 했다는 당시의 코치님은 신입들에게도 자세부터 꼼꼼히 가르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일단 손을 모으고 팔을 뻗어 어떻게든 공을 받아내도록 했고, 무릎이 남아나지 않게 넘어지고 미끄러져야 받을 수 있게 공을 구석구석 쳐주는 레슨은 스파르타 그 자체였다. 덕분에 두려워하지 않고 몸을 던지는 담력은 생겼지만 소위 안 좋은 습관이 몸에 배어 고치느라 여전히 애를 먹고 있다.


  안 좋은 습관이라 하면 팔을 뻗는 각도, 공을 받을 때, 공을 받기 위해 들어가는 위치 같은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별 것 아닌 것이다. 하지만 그 5도쯤의 각도, 5센티의 높이, 한 발자국이 너무나도 큰 차이를 가져온다. 기초는 그래서 중요하다. 기초가 조금씩 흐트러질 때마다 결과의 차이는 점점 크게 벌어진다.


  기초 체력은 또 어떻고. 레슨 중 가장 피하고 싶은 것을 꼽으라면 무조건 기초 체력 훈련이다. 언더로 공을 치며 코트를 한 바퀴 도는 것은 보기에는 쉽지만 하고 나면 온몸이 진동머신에 붙들린 것처럼 바들거린다. 잔발로 오도도 뛰는 것도, 스쿼트처럼 낮은 자세를 유지하는 것도 재미는 없고 힘들기만 하다. 10년은 기본으로 운동을 해온 언니들에게 "언니, 저 기초체력이 부족한 것 같아요."라고 말하면 조용히 뒤를 돌아 답한다. "기초 훈련은 조용히 혼자 해. 코치님 들으면 우리 다 시킬라." 베테랑 동호인들도 피하고 싶은 것이 기초 체력 훈련인 것이다.


  특히나 임신과 출산을 거쳐 코트에 2년 만에 복귀한 나는 아직도 기초 체력이 떨어져 매주 언니들의 걱정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숨이 가쁘다 못해 입술이 퍼렇게 변하기 직전까지 가서 내 얼굴을 보지 못하는 나보다 보는 팀원들이 더 힘든 운동이 되버리곤 한다. 가끔 한 번 넘어지면 못 일어날 정도로 힘든데 내 차례가 끝나지 않을 땐 입술이 정말 파래지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도 있다. 그건 정말 가끔(맹세코 가끔)이고 대체적으로 나의 부족한 기초 체력이 늘 아쉽다.


  자세든 체력이든 기초를 단단히 하기 위한 방법은 연습, 그리고 훈련이다. 기초가 없으면 흔들리고, 흔들리는 선수에게는 기회가 오지 않는다. 배구에서만이 아니다.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온다는 말이 있다. 나는 여기서 말하는 준비는 모든 것이 다 완벽한 상태라기보다 기초가 세워져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완벽한 사람에게만 기회가 오는 것은 너무 야박하지 않은가.


  삶은 언제나 완벽할 수는 없지만 예의와 성실, 인내와 감사 같은 기본적인 것들 누구나 가질 수 있고 가져야 하는 것들이니까. 운동에서도 삶에서도 기회를 얻기 위해서 기초를 다져나가야겠다.


  덧. 깨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초체력훈련은 정말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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