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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빛 Jan 04. 2024

지은 것 같이, 지어져 있는 집

집이 나에게 물어온 것들(장은진, 2023)

  인스타에 주택 살이, 단독주택 등의 해시태그에 '좋아요'를 눌러두고 다른 사람들의 생활을 엿본다. 오늘의 집에 올라오는 단독주택 온라인 집들이를 평수별로 찾아보기도 하고, 네이버 메인 ‘리빙’ 탭에 뜨는 예쁜 집 소개를 구경한다. EBS의 다큐 프로그램 ‘건축탐구 집’을 보다가 번뜩 생각이 뻗쳐 ‘00동 단독주택 매매’ 같은 검색어로 살아봄 직한 동네의 단독주택 매물을 찾아본다. 그러다 생각이 좀 더 날개를 다는 날이면 ‘00동 토지 매매’를 검색해 이 정도 땅에는 어떤 집을 지으면 좋을지 무에서 시작되는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기억도 가물가물한 유년기 이후로는 쭉 아파트에서만 살아온 나는 무슨 바람이 들어서 단독주택에 대한 로망을 이렇게나 키워가는 걸까.


  로망이 커가는 동안 현실은 30살이 넘은 아파트를 고쳐 들어앉은 지 벌써 만으로 8년이 되어가고 있다. 부동산에 무지하고 겁이 많은 사회초년생 신혼부부였던 우리는 오래 살았던 동네에서 최소한의 대출로 구할 수 있는 집을 선택했다. 이후 남편이 불러온 각종 크고 작은 풍파는 경제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우리를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고, 그렇게 8년이 흘렀다. 다행히도 우리는 변화를 추구하는 성향이 아니었기에 여태껏 큰 불편함 또는 불만이 없이 지냈다. 단독주택에 대한 로망이 늘 있긴 했지만, 로또당첨이라는 주제와 비슷한 수준의 상상일 뿐이었다. 그러나 요즘 들어 우리 부부의 대화에는 이사와 단독주택이 자주, 구체적으로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이유는 단 하나, 30개월에 접어들자 거의 날아다니다시피 하는 딸, 다다를 위해서다.


  다다가 순한 성향에 한 군데 진득이 앉아 노는 편이라 여태까지는 집에서 그다지 뛰어다니지 않았고, 마침 아랫집에는 남편의 지인이 부모님과 같이 살고 있기도 해서 우리는 층간소음에 무신경했다. 그러나 다다가 두 돌이 넘어서자 갑자기 달리기라는 어린이의 숙명을 깨우치고야 말았고, 두 발모아 점프를 습득하면서 가열하게 점프 연습까지 하는 것이 아닌가. 4cm의 두꺼운 매트와 점프는 침대 위에서만 하라는 약속은 우리 부부의 마음에만 잠깐의 면죄부가 되었을 뿐이었다. 거기에 더해 어떤 사정으로 2주 동안 저녁마다 6살, 7살 조카들이 우리 집에서 시간을 보내게 되었고, 결국 어느 주말 아침 아랫집의 민원이 있었다는 경비실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 단 한 번의 전화로 우리 부부는 급격히 예민해졌고 다다는 물론이고 무고한 강아지 콩이와 서로에게까지 살금살금 걸으라는 주의를 주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이사 계획에서 '아파트'라는 선택지를 완전히 지워버렸다.


  단독주택에 대한 우리 부부의 로망은 꽤나 구체적이다. 이제 막 가정을 꾸리는 시기라면 sns에서 보던 예쁜 것, 좋은 것에 눈이 가겠지만, 8년 간 한 집에서 살며 제법 단단한 일상이 생겼다. 가장 바쁜 아침에는 어떤 동선으로 움직이는지, 저녁엔 어디에 모여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지, 주로 사용하는 살림살이의 규모는 어떤지 우리는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에게 꼭 필요한 공간과 시간, 물건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것들을 모으고 담아 '집'이라는 실체를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이다.


  우리의 통장은 새집을 짓는 것을 반대한다. 애매하고 두루뭉술하며 이상이 가득한 우리 부부의 집 이야기는 통장이 구체적이고 논리적인 숫자로 보여주는 반대 의견에 슬그머니 멈추곤 한다. 집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돈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집이 나에게 물어온 것들'에서 작가의 남편의 '지은 것 같은 집'이라는 표현에 처음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팔려고 내놓아도 아무나 살 것 같지 않은 그런 집을 지으면 만약에... 나라는 사람은 참 짓지도 않은 집을 팔 생각부터 한다. 실소를 짓는 와중에 건축가인 아빠와 집을 짓는 딸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건축탐구 집에서 본 이야기던가. 건축주이자 지어질 집에서 살 딸은 안방도 만들지 않고 주방의 위치도 특별하게 하고자 하고, 건축가인 아빠는 그래서는 안된다며 나중에 고칠 수 있도록 수도와 가벽을 몰래 만들어두었단다. '지은 것 같은 집'을 원하는 딸과 누구나 들어와서 살기 쉽게 '지어져 있는 집'을 원하는 아빠의 충돌이었다.


  나는 지은 것 같이, 지어져 있는 집을 원한다. 우리 가족의 일상에 딱 맞으면서도 누군가가 들어와 잠시 지내더라도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집. 우리 가족의 구성이 달라지더라도 덜거덕 거리지 않고 함께 변화할 수 있는 집. 우리 가족을 위해 지은 것 같으면서도 누구에게라도 들어맞게 지어져 있는 집. 아, 정말 그런 곳에 살고 싶다.




  공간에 대한 생각

안방은 잠을 위한 방. 침대와 작은 협탁만 들어간 아늑하고 약간 어두운 구석이면 된다. 안방이 메인 방일 이유가 없다.

화장실과 세탁실, 드레스룸이 연결되어 씻고 옷을 갈아입고 세탁하고 다시 옷을 정리하는 동선이 짧게 연결되어야 한다.

주방은 조리대가 식탁을 바라보고 있어 고립되지 않도록, 식탁 옆으로는 외부와 연결되는 문이 있어 식사 장소를 다양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

아이 방은 두 개. 다다의 침대방과 놀이방으로 쓰다가 둘째가 생기면 각자의 방으로 나누어줄 수 있도록 만든다.

서재가 있되, 고립되어서는 안 된다.

마당은 텐트를 치고 앞에 의자 4개를 둘 수 있을 정도의 크기로. 한쪽에 1m 정도의 작은 텃밭도 있어야 한다.


  공간을 나누는 것 외의 생각

어느 한 공간도 손이 닿기 어려운 구석이 있어서는 안 된다.

샤워실에 물을 틀었을 때 주방의 수압이 약해지면 안 된다.

일괄 소등이 가능한 스위치가 필요하다.

고양이와 강아지를 위한 선반과 휴식 공간이 필요하다.

가족 구성원이 어디에 있든 대화할 수 있는 개방감



집이 나에게 물어온 것들, 장은진(2023)

집을, 순례하다, 나카무라 요시후미(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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