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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빛 Jan 25. 2024

싫은 걸 싫다고 말한 내가 싫어

1월, 대화의 조각

- 그렇게 좁은 복도에서 인사하는데 쌩 지나가는 건 아니지 않아요? 상사는 그런 식으로 인사를 무시해도 되는 거예요?

- 못 보신 거 아니에요?

- 못 봤다는 게 말이 안 될 정도로 좁은 곳이었어요. 거의 외나무다리. 눈도 마주쳤는데?

- 그분 원래 성격이 그렇잖아요.

- 원래 성격이 그러면 더 문젠거죠. 그리고 인사는 기본 중에 기본이라고 생각해요. 사회성 결여 같아요.

- 우리한테는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시나 보다. 하긴 점심시간에 밖에서 마주쳐도 비슷하긴 하잖아요.

- 그러니까요. 못 볼 사람 만난 것도 아닌데 말이에요. 인사하는 게, 아니 받는 게 뭐가 어렵다고. 저는 확실히 그분이랑 안 맞아요.

- 그래도 좀 친해지면 괜찮은 것 같던데? 00쌤이랑 작년에 나간 00쌤이랑 다 같이 사적으로 모임도 하는 것 같더라구요.

- 그럼 사람을 대놓고 가리는 거네요. 어휴. 더 별로.



  점심시간, 직장 동료들과의 대화.

  좋은 걸 좋다고 말하는 건 미덕(여둘톡!)이지만 싫은 걸 싫다고 말하는 건 아무래도 별로였지 싶다. 게다가 아주 적극적이고 직설적인 언어로 이토록 싫음을 표현했다니. 출장지에서 만난 상사의 태도가 진심으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직장을 떠나 인사라는 건, 그것도 하라는 것도 아니고 좀 받으라는 건데, 기본 중에 기본 아닌가 이 말이다. 그래봤자 그분은 상사고 나는 부하직원이니 내가 그분을 싫어해봤자 달라지는 건 없다. 심지어 속으로만 생각하는 것과 밖으로 내뱉는 건 다른 일이다. 대화 상대가 직장 동료였으니 평화로워야 할 점심시간에 그들은 나의 싫음을 들으며 싫은 시간을 보내야 했을 테다. 익히 다들 아는 상사의 태도를 나는 왜 굳이 싫다고, 정말 싫다고 외쳐야 했는가. 될 수 있는 대로 공적인 관계에서는 나의 호불호를 드러내지 않는 편이지만 공과 사의 경계에 있는 편한 동료들 앞에서 그만 느슨해져 버렸다. 싫은 걸 싫다고 말해버린 내가 너무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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