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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

by 유목상점

몇 날 며칠 빈집을 다니면서 누적된 긴장에 이제는 헛것이 들린다. 가늘거나 둔탁한 사물을 두드리는 소리라던가 웅웅 거리는 공명의 울림 같은 것이다. 아마도 방죽말 폐가에서 필사적으로 전화 콘센트를 떼어내려다가 손을 베여 피가 흐른 놀람의 순간이 더더욱 온몸의 소름이 장악했던 사건이었을 것이다. 목을 굳히거나 길게 빼고 눈과 발을 조심스레 옮겨가며 문지방을 넘어설 때마다 눈앞에 펼쳐질 예상밖의 충격적 풍경을 상상하며 식은땀 흘리고도 다시 뭔가에 홀린 듯 빈집을 배회하고 있는 나를 보면서 이윽고 유령이 되었구나 인정하게 되는 것 같았다. 그렇다 해도 이미 집들이 갖고 있던 음해한 기운들은 나를 대문밖으로 내쫓는 계기가 된다. 물론 모든 빈집이 다 그렇지는 않지만 말이다. 작품 <환영>은 빈집에서 습득한 아이브로우 (눈썹 그리는 화장도구)와 먹(문방사우 중에서 벼루를 갈 때 쓰는)으로 분명하지 않는 존재를 스케치한 것이다. 눈으로 보았지만 설명할 수 없는 대상이 되었던 두 동물들은 과연 있어서는 안 될 장소에서 등장했다. 아니 내 기준에서 그랬을 것이다.

매 순간 환영이 나를 어디로 홀렸는지 모르겠으나 원하는 이미지를 만들어내기 위해 형체를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은 도시라는 장소가 약속된 암묵적 룰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평행논리를 따르고 있어서인 것 같다.

환영2 캔버스에 아이브로우 40X40cm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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