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실은 따뜻하다가도 그렇지도 않았다. 새들은 날아와 머리를 들이받고 충격으로 인해 쇼크에 빠져선 숨을 가쁘게 쉬다가 눈꺼풀을 아래에서 위로 닫고 천천히 식어갔다. 온실은 물리적 자극으로 인한 보호에 나약하였으며 한시적인 유지장치의 기능만 있었다. 온실 안에 잉꼬새를 풀어놓고 키우려는 시도는 수 차례 실패하고 낮과 밤의 기온차로 생체리듬이 깨져 버린 잉꼬들은 야생 고양이들의 먹잇감이 되곤 했다. 하나 둘 잉꼬는 죽어갔고 주말 관람객들의 먹이체험을 위해서 또 잉꼬 한 마리 사 오고 그것도 잠시, 주말이 지나면 잉꼬는 죽고 다시 죽고, 돈 주고 사 오기를 반복했다. 이 온실은 마암리에 있었고 내 기억에도 뿌리 박혀있다. 그렇다 온실은 가변적인 시설물이다.
온실, 도로 위에 가변설치 알루미늄 파이프80X65cm 2013 나는 오랜 시간 이동해 왔다. 일정한 것은 없고 늘 변화하고 있고 거시적 시각에서 볼 때의 변화는 아주 미세하지만 그 미세한 변화들을 포착하고 스케치하며 사는 것이 작가적 마인드를 가질 수 있게 해 주었다. 한시적이다. 불변하는 것은 없으며, 다 변하기 마련이다. 때문에 계획이라는 것은 늘 없었다. 어떻게 보면 계획이 없어서 더욱 무모하기도 하고 단순하기도 했었다. 살아있는 생명이 매 순간 변화하듯 하는데 유독 인간만이 한 가지 범주에서 오랜 시간 머무는 유일한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모든 것이 가변적이라면 지금 온전한 형태들은 모든 것이 다 가짜임이 틀림없다는 반증이 생기기도 했다. 그렇다 따지고 보면 모든 것은 다 가짜이다. 인간의 손을 거치치 않은 문자 없고 물질 없으며 현상 또한 도식화하기를 좋아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공간“에서 사이 間을 뺀 ”空”에 실마리가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철저히 그렇다고 해석할 수 있지만 지금 써 내려가는 문자들 자체 또한 온전한 것이 아니며 핵심은 구성하고 있는 물질 아닌, 물질과 비물질 사이에 비어있는 유효한 시간에 주목했다.
공간 안에 놓인 물체는 불변할 수는 있으나 시간이 개입되면서 그 형태는 온 데 간 데 없어져 버리는 것이다. 여기까지 해당되고 우리가 알고 있는 부분으로 실재했던 것, 존재의 부재를 해석하려는 움직임으로 보일 수 있으며, 그것이 온실인지는 보는 이의 몫이다.
2015.4.2
2017.1.12
죽은 동물 위에 설치를 끝으로 사용에 대한 가치를 스스로 소거시켰다. 늘 자연과 가공된 것의 경계 사이에 대한 고민을 하곤 했다.
그 이전에 시점은 항상 특정하되 비정형적인 곳을 응시하였고 일반적이며 보편적이지 않은 곳을 일부러 분석해 갔다.
문명과 자연의 경계지점에서 늘 생명력을 잃고 방치된 사물들을 발견하게 되면서 기물의 파편에서 알 수 없는 조각, 도로 위와 창틀 위에 남은 동물들의 껍데기들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것들에 분명하고 명쾌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소거된 언어들이 자리하고 있음을 파악한다.
가령 그 언어들은 형태를 잃었다 해도 충분히 재구성이 가능한 것들이었으며 온실의 양면성과 배치시킬 때 더욱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단순히 설치물을 통한 매개의 작용으로 상징하는 것은 극히 몇 분에 불과한 행위로 받아들일 수 있는데 이러한 유기된 사물들의 위에 온실을 올려놓는 과정을 통해 그 정체를 더욱 불분명하게 흩트리는 작업을 한다.
결국 그 불분명한 일련의 모순들을 해석하는 타자의 입장에서 다르게 인지될 수밖에 없도록 한 상징적 의식을 녹여내는데 여기서 말하는 의미는 틀리거나 다른 행동이 아닌 미술품에 의해 읽히는 특질 자체에 대한 것으로 이야기되며 고고학적 관념론으로 보는 사물 자체에 대해 분류표기학적 욕망과 가치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