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가족 렌터카 여행(2020.1.20-2.5) 속세에서 로그아웃
"슬픔에 빠지거나 마음에 상처를 입었을 때의 특효약은 / 잠시 속세를 떠나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장희, 주호민 <빙탕후루>, 64화)
몹시 마음이 지쳐있던 어느 날, 마치 시내산에 오른 모세가 십계명을 만난듯, 장희, 주호민 <빙탕후루> 64화에서 이 문장을 만났다. 너무 좋은 문장이니 다시 반복하자.
"슬픔에 빠지거나 마음에 상처를 입었을 때의 특효약은 / 잠시 속세를 떠나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 구체적으로 2019년말, 2020년초에 꽤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 꾸역꾸역 버티어 가던 중에 둘째 딸 고등학교 졸업을 기념해 가족여행을, 제법 길게, 기왕이면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으로 가자고 약속을 해 포르투갈로 떠나게 되었다.
참 무신경하다. 사람을 어떤 상황에 던져놓고, 이해해 달라고 오해가 있었다고 말한다. 한번 벌어진 상황은, 그 경험은 돌이키기 쉽지 않다. 게다가 한번 돌이켰던 사람이라면 더더욱.(2019.1.19. 페이스북)
출발하기 며칠 전 어떤 사건이 있었고, 위 문장은 출발하기 하루 전 1월 19일에 페이스북에 남겼다. 몇 달이 참 모질었다.
포르투갈로 가기로 한 결정은 2019년 9월쯤 내려졌다. 적극적으로 가족여행을 주도한 아내가 '포르투갈'을 대상지로 선정했고 나와 두 아이도 동의했다. 때마침 아시아나 항공이 리스본 직항으로 취항을 해서 비행기 표도 고민없이 구입했다. 아내는 리스본과 포르투 두 곳으로 숙소를 잡고 에어비엔비에서 예약했다. 좋은 전망, 편한 접근성, 멋진 내부, 슈퍼호스트 몇가지 요소들을 종합해 숙소를 선택했다. 리스본, 포르투 두 숙소 모두 마음에 들었지만, '주차장'이라는 옵션은 고려하지 못했다. 포르투갈에서 차가 있는 건 여행자의 동선을 확장하고, 가족이라면 피곤을 줄여 해볼만 하다. '렌터카 대참사'에서 정리했듯 의외의 변수(유리창 파손을 동반한 도난)을 만나면 오래도록 트라우마가 남으니 '주차장' 옵션이 포르투갈 숙소에서 중요 고려 사항 중 하나가 되어야 한다.
리스본은 조르주 성 아래 알파마(Alfama) 지구에 숙소를 얻었고, 포르투는 동루이스 다리 근처에 얻었다. 주요 관광지의 접근성은 모두 최고였다.
예상치 못하게 포르투갈에서는 <빙탕후루>의 충고대로 속세에서 완전히 떠나 있게 되었는데 두 가지 요인 때문이었다. 첫 번째 요인은 현지 유심. 두 번째 요인은 애플워치 파손이다. 20일 한국에서 오후 비행기를 타고, 같은 날 저녁에 리스본 공항에 도착했다. (렌터카 찾아서 주행한 초기 적응기는 뒤로 미루고)
미진하게 몇 개 마감을 남겨 둔 찜찜함이 여전히 연속되던 여행 이틀째인 22일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남겼다.
오래만에 휴가를 떠났다. <빙탕후루>의 충고대로 떠났는데, 몸은 여전히 한국 시간에 묶여있는 듯. 새벽에 일어나 뒤척이다 몇 줄 남긴다. 그나저나 유심 바꾸니 전화가 완전히 차단되어서...스마트폰 불안증에서 벗어나는 듯.(2020.1.22.페이스북)
유심이 없으니 전화도, 문자도 없었다. 학교에서는 20일부터 행사가 이어졌지만, 나는 한국에서 떠나 있었다. 카톡방 몇 개에서 숫자가 올라갔지만, 구태여 내가 참견할 필요가 없는 이슈들이었다. 홀가분하지만 불안한 어떤 기분. 주문을 외우듯 페이스북에 자꾸 속세를 떠났다는 글을 올렸다. 26일 글이다.
모처럼 긴 여행 중이다. 속세를 떠난 셈인데, 포켓 와이파이 대신 현지 유심을 구입했다. 모든 문자와 전화가 자동으로 차단된다. 못한 마감 하나는 시차를 이용해 보내줬다. 나머지 마감은 한국에서 하고 왔다. 운 좋게 지면 하나가 설 때문에 일주일 마감이 연기되어 떠나기 전 좋아했던 건 안비밀.
스마트폰과 연동되어 문자나 메시지가 오면 늘 확인해야 되었던 애플워치도 교묘하게 현지에서 이렇게 되었다. 첫 번째 출시되었을 때 오모테산도 애플숍에서 산 애플워치 1이다. 이렇게 말하면 무슨 앱등이처럼 보이겠지만 하필 일본 출장갔을 때 아직 한국에는 출시가 안되었을 때라 샀을 뿐.
현지 유심, 애플워치 사망으로 속세를 제대로 떠나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