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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경희 Dec 17. 2020

대만-타이베이

동아시아 4국과 우리나라

 

Ⅲ. 타이완      

 중국 본토 남동 해안에서 161km 떨어진 타이완은 태평양의 북회귀선에 걸쳐 있는 섬나라이다. 1949년 이후 국민정부에 의해 타이베이가 임시수도로 지정되었다. 타이완 전체 인구는 인구가 2천380만(2020년) 면적은 3만 5천㎢으로 남한의 30% 수준이다. 국토의 모양은 남북 길이 약 395km, 동서 길이 약 145km로 약간 동쪽으로 기울어진 타원형이다.    

수도 타이베이는 북부에 위치, 주민의 3/4 이상이 수도 타이베이를 비롯 서쪽 해안에 모여 살고 있다. 타이베이 면적은  657명/㎢, 인구는 238만으로 세계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지역 중 하나이다. 국민의 98%는 한족, 14%가 중국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고 나머지는 원주민들이다. 중국 문화가 우세하고 불교와 도교를 주로 신봉하고 있으며, 곳곳에 절과 사원들이 눈에 띈다.    


상산에서 바라본 타이베이 시가지

 

북쪽은 아열대, 남쪽은 열대기후가 나타나고, 겨울철 평균기온은 약 15℃, 여름철은 30℃ 정도이다. 연평균 강수량은 2,590㎜로 비가 많이 오는 다우지이다. 1년에 보통 3, 4차례 불어닥치는 태풍은 우리나라처럼 7∼9월 동안 집중되어 있다. 열대 및 아열대 상록수가 많아 겨울 여행에도 초록 초록한 세상을 만날 수 있다.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 모두 타이완에 대한 관할권을 주장하고 있다. 쑨원을 임시 대총통으로 삼아 1912년에 탄생한 중화민국은 일본과 싸우면서 공산당 통제에 실패했다. 와중에 1932년 4월에 윤봉길의 상하이 의거 이후 상하이 임시정부는 국민당 및 장제스 총통의 후원을 받았다. 공산당과의 전쟁에서 패배 후 장제스가 이끄는 국민당은 결국 1949년에 타이완섬으로 옮겨갔다. 우리나라는 60년 동안 중화민국과 국교를 유지했다.

 그러나, 우리 외교부는 타이완 측에 철수를 요구하고, 1992년 8월 중국과 정식으로 수교함으로써 중화민국과 단교를 했다. 타이완과 중국의 정치문제에서 우리나라는 의리와 실리를 놓고 고민하다, 결국 중국과 손을 잡았다. 타이완은 국제적으로 고립노선을 취하고 있으나, 실제 미국·일본 등과 민간관계의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93년 7월에 경제적·국제정치적 관계를 바탕으로 협의를 거쳐 서울과 타이베이에 대표부를 설치했다. 2019년 1월 기준 타이완은 한국의 6위 교역대상국, 한국은 타이완의 5위 교역대상국이다.          

                 

중국과 타이완-두피디아


1. 타이베이     

  불교와 유교, 한자 등의 공통점을 갖고 있는 동아시아 국가들을 여행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더구나 타이베이는 교통망이 잘 구축되어 배낭여행자들이 아주 쉽고 편안하게 여행할 수 있는 도시이다. 6월 초, 더워지기 전에 얼른 다녀오려고 김포공항에서 출발한 저가항공에 몸을 실었다. 


 타이베이는 중국 남동 타이완 해협을 가로질러 195㎞ 떨어져 있는 타이완 섬 북쪽 끝에 있다. 동아시아 해상 교통의 중심지에 위치하여 17세기 스페인과 네덜란드 등 서구 열강의 쟁탈전이 일어났다. 청나라의 영토로 편입되면서 중국인들이 이주하여 타이베이 성을 건축하였으나 청일 전쟁 후 반세기 동안 일본의 식민 통치를 받았다. 2차 대전 이후에 반환되어 1949년 중국에서 넘어온 국민당 정부의 수도가 되었다. 이런 복잡한 역사적 배경으로 다원적인 문화 특색을 가지게 되었다. 현재 타이베이는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이며, 세계적인 그린시티로 인정받고 있다.   


타이완 국립고궁박물관


 약 2시간 반 정도 비행 후 도심에 위치한 송산 공항에 도착하였다. 공항에서 지하철을 타고 한 정거장 위로 올라가니 대도 역. 3.2km 떨어진 곳 약, 8분 거리에 있는 국립고궁박물관으로 향했다. 베이징에 있던 박물관의 이름을 따온 것으로, 고대 중국의 공예품·서예품·회화 및 도자기를 소장하고 있다. 세계 4대 박물관에 속한 만큼 대단한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장개석 총통이 대만으로 올 때 60만 점의 보물을 가져왔다고 한다. 1초에 한 번씩, 10년 동안 봐야 다 볼 수 있다는 엄청난 분량의 중국 고대 유물은 3개월에 한 번 교체 전시한단다.     


국립고궁박물관의 전시품 왕의 모자걸이, 동파육과 취옥 배추

   

 인기 있는 유물은 취옥백채, 19세기 청나라 광서제의 부인 근비가 결혼 때 가져온 혼수품이었다. 흰색의 줄기와 녹색의 잎은 근비의 숭고한 인품을 상징하며 밤에 시끄럽게 우는 메뚜기와 여치처럼 부부가 밤마다 행복하라는 뜻이 담겨 있다. 돌멩이에서 부들부들한 촉감과 육즙이 막 터져 나올  것 같은 동파육 같은 모형, 육형석은 자연적 외형을 완벽하게 이용하였을 뿐 아니라 인간의 창조적인 감각을 이용한 최고의 작품이었다. 서태후의 옥병풍도 매우 아름다웠다.


 궁에서 사용되는 왕의 모자걸이 상아공은 3대에 걸쳐 70년 동안 만들어졌다. 총 17겹으로 되어있는데 현대 기술로는 14겹까지 밖에 만들지 못한다고 한다. 너무 방대한 규모를 다 둘러볼 수 없고, 워낙 많은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어 하루에 다 볼 수 없다고 판단, 다시 찾기로 했다. 근처 원주민 박물관을 둘러보고 그들의 입장에서 타이완의 문화를 이해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귀엽고 예쁜 머리 장식을 한 원주민 인형을 샀다.         

  

타이베이 지하철 역 입구 웅진코웨이 광고 
도시를 광고하는 타이베이 지하철 


 다안 역에서 붉은색 단수이 노선으로 갈아탄 후 101층 전망대 역에서 내렸다. 지하철 역에서 나오자 바로 연꽃 모양이 차곡차곡 쌓아진 101층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온라인으로 구매한 할인 티켓을 들고 101층으로 올라가 망고 주스 한 잔 마시며, 타이베이 시가지를 360도 둘러봤다.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시선을 권력이라고 했다. 진짜 도시의 구석구석을 다 바라볼 수 있었다. 강이 어느 방향으로 흐르고, 시가지가 어떻게 형성되고, 도로가 어느 곳으로 이어지는가를 살펴볼 수 있었다. 내진 설계 장치를 보고, 밖으로 나오니 뉴욕이나, 독일, 일본, 제주도 본태박물관 옥상 등에서 만날 수 있는 로버트 인디아나의 팝 아트 love 조형물이 건물 앞에 세워져 있다. 

  

101층 건물 내진 시스템
101 층 건물과 타이베이 시가지-클룩
101층 건물 앞 로버트 인디아나의  love


상산에서 바라보는 타이베이의 야경이 가장 아름답다고 해서, 해 지는 시간에 맞춰 상산 역에 도착했다. 우리나라도 지하철에서 음식물을 먹는 사람이 없지만, 이곳에서는 지하철에서 음식을 먹으면 벌금을 낸다. 많은 사람들이 청결하게 지하철을 이용하는 법적 규제이다. 덕분에 지하철역과 주변 공간이 깨끗했다.     

                     

깔끔한 타이베이 지하철 내부


 상산 역 인근 공원 따라 1km 정도 가면 건물과 아파트로 둘러싸인 상산 입구가 나온다.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형태인 타이베이에 코끼리 코처럼 도심을 향해 쑥 들어와 있어서 상산이다.  흙길과 나무들이 그런대로 자리 잡은 상산, 자연의 느낌 그대로 존재해 준 상산이 맘에 들었다. 관광객을 포함하여 현지 주민들도 많이 찾아오는 곳이었다. 하이킹 트레일의 대표 명소인 상산의 오르막 급경사 계단을 낑낑 대고 올라가니 서서히 도시 건물들에 불빛이 들어왔다.        


상산 입구와 상산 표지석
송산에서 바라본 타이베이 시가지

                

 드디어 101층을 비롯 멋진 건물들의 야경과 조명의 화려함을 맛볼 수 있는 전망대를 지나 조금 더 올라가니 타이베이 전망이 멋있다. 30분 이상 도시 불빛이 켜지기를 기다렸다. 연꽃이 겹겹이 쌓인 듯한 101층 건물을 비롯 곳곳에서 서서히 켜지는 노란빛 조명의 향연이었다. 습하고 더운 공기를 뚫고 땀을 뻘뻘 흘리며 올라온 보람이 있었다. 거대한 바위 위에 올라가 사람들이 101층을 비롯한 도시의 야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데 줄이 너무 길어 그냥 옆에서 한 컷. 그래도 아주 멋진 사진을 얻었다. 

     

송산에서 바라본 타이베이  야경

 

 타이베이 중앙역 근처 호텔에 짐을 풀고 스린 야시장에 나가 흑당 밀크티를 비롯, 열대과일과 꼬치구이 등 여러 먹거리를 섭렵했다. 놀거리와 볼거리도 많고 재미있고 자잘한 소품도 많았다. 천으로 만든 손지갑과 타이베이의 명소들이 그려진 컵홀더를 장만했다.           



용산사 본당을 찾은 시민들


 다음날, 새벽 블루라인 지하철을 타고 찾아간 곳은 용산사였다. 시먼과 인접한 용산사 일대는 타이베이 최초의 도심지역으로 서울의 종로와 같은 느낌이었다.         

 용산사는 불교, 도교, 유교의 중요한 신을 함께 모시는 종합 사찰로 이른 새벽인데도 많은 참배객들의 향불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용산사는 본당 앞  네모 모양의 마당을 둘러싸고 있는 구조가 3번 반복되는 3진 사합원의 궁전식 건물로, 타이완 전통 사원 건축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 벽면의 생생한 그림, 정밀한 조각이 된 석조, 기둥과 처마의 경계 부분은 못을 쓰지 않는 전통 방식으로 되어있다. 지붕의 사방에는 용, 봉황, 기린 등 상서로운 상징물이 화려한 색채들로 조각되어 있었고, 기와도 붉은색으로 채색되었다. 1738년 지어졌으나 자연재해와 화재 등으로 여러 차례 파괴된 것을 1757년 새로 지었으며, 국가 2급 고적으로 지정되었다.     


선량함이 느껴지는 시민들의 신앙생활 

 

용산산의 감동은 기도하고 경전을 읽고, 향불을 피우고, 절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선량함과 신성함이 가득한 타이베이 주민들의 삶의 모습과 따뜻함에 종교와 일상이 하나된 모습을 느꼈다. 종교는 바로 그런 것, 자신의 삶에 성실을 다하는 실천이라는 것을 느꼈다.      


보피랴오 거리

     

 근처 시창제 골목을 따라 들어가면 약초 상점이 밀집해 있다. 약초 거리에서 신선한 한약재로 만든 건강식품과 천연 웰빙 식품이 각광을 받고 있다. 보피랴오 거리는 6년간의 보수 공사를 벌여 지나간 100년 세월을 복원한 청나라 거리이다. 붉은 벽돌담, 아치형 테라스와 창문이 눈에 띄는 이국적 건물들이 보였다. 오래된 서양식 건물이 눈에 들어오는 보피랴오 거리, 64개의 건물들이 보존되고 있다. 이곳은 원래 소방용 저수지였던 곳인데,  지금은 시간을 거슬러 청대의 생활상을 보여주고 있는 곳이다.  


국립 중정기념관


 국립 중정 기념당은 타이완 초대 총통인 장제스를 기념하기 위해 1980년에 지어진 건물이다. 중국의 전통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웅장한 건물들은 고대 중국의 왕릉과 비슷한 규모로 설계되었다. 정면에 있는 높이 76m의 거대한 대리석 건물인 기념당은 청색과 흰색을 주요 색조로 하고 천장은 하늘을 향해 둥근 형태를 띠며, 89개의 계단을 오르면 기념당 2층이다. 그곳에는 높이 6.3m, 25톤 무게의 장제스 총통 동상이 중국 대륙을 향해 앉아 있어 타이완의 역사적 의미를 생각했다. 내부 전시실에는 장제스 총통의 유품과 사진 등이 전시되어 있다. 우리나라와 교류했던 자료들도 있어 외교적으로 친숙한 관계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예류 해변 사암층


 타이베이 중앙역에서 아침 9시 20분에 출발하는 1일 버스 투어를 신청했다. 예류, 스펀, 진과스, 지우펀을 둘러보는 일정이었다.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모여있어 영어와 중국어로 진행했다. 한국인도 몇 있었다. 차가 많이 막혀 예류에 도착하니 11시 정도 되었다. 예류는 지형학적으로 관심이 많은 곳이었다. 기대감을 갖고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예류 명물 버섯바위

 

 예류는 좁고 긴 곶에 자리하고 있으며, 암석층은 주로 1000~2500만 년 전에 생성된 두터운 사암층이다. 사암층에 예류 명물인 버섯 바위가 있고, 다른 암석층에는 촛대 바위, 생강 바위 등이 자리하고 있다. 수만 년의 침식과· 풍화 작용을 겪으면서 1,700m에 이르는 예류 지질 공원을 만들어 냈다. 곳곳에 해식동, 해식구 등의 지질을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볼 수 있다. 자연의 풍화작용과 침식에 의해 생겨난 다양한 바위를 보며 신비함과 경이로움을 느꼈다. 


여왕 머리 바위
여왕 머리 바위


 자연이 만들어 놓은 신기한 조각품들 중에 인기 있는 것은 단연 여왕 머리 바위. 고대 이집트의 네페르티티 여왕을 닮았다고 해서 ‘여왕 머리’라는 이름이 붙은 바위이다. 지각이 융기하는 과정에서 해수의 침식 작용으로 여왕의 모습을 갖추어 왔으며, 가장 높은 부분이 해발 8m이다. 여왕 머리 바위의 연령은 4,000년 이내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오랜 세월 햇빛과 비바람을 맞는 동안 여왕 머리 바위의 목 부분이 점점 가늘어져, 현재의 목둘레는 158cm에 불과하며, 직경은 50cm 정도이다. 독특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독특한 생김새로 사람들의 관심을 가장 많이 받은 곳이었다.



스펀 철길마을 풍등 날리기

 

닭볶음 밥을 먹고 천등이 하늘 위로 떠 오르는 스펀 옛 거리로 향했다. 스펀은 철도가 놓인 후 마을이 형성되어 기찻길과 상점, 풍등의 문화가 조성되어 있다. 스펀 옛 거리의 주택 대부분은 철로를 따라 지어져 기차가 항상 집 앞을 지나가게 된다. 기차가 지나는 철로 양옆의 아슬아슬한 경험과 하늘 높이 풍등을 날리려는 여행자들도 붐비는 곳이었다. 기름 냄새와 열기로 가득한 이 곳을 굳이 찾아온 것은 지난 시절들에 대한 향수 때문일까?                          

 스펀 옛 거리에는 이곳의 역사를 알려 주는 백 년이 넘은 쌀국수집과 기념품 가게들이 있다. 풍등과 기차역 모습 등이 담긴 스펀 만족이라는 기념엽서를 사고 바로 풍등을 띄우러 갔다. 여행지 곳곳에서 풍등을 띄웠지만, 이곳에서는 가족 건강의 소박한 염원을 담아 하늘로 띄워 올렸다.                

 1918년 일본 광업 회사가 석탄 운송을 위해 스펀 역을 건설하였으나 지금은 타이완 정부에서 회수하여 운영하고 있다. 스펀 역은 핑시선 중 제일 큰 역으로 1992년 탄광업이 몰락하면서 현재는 관광 열차로 분위기를 바꿔 새롭게 운행하고 있다. 기차가 숲을 가로질러 갈 때는 빛이 밝았다 어두워졌다 하여 그 변화가 아주 다채롭다.            

   

시원하게 떨어지는 스펀 폭포


스펀 역 부근 스펀 폭포는 지룽 강 상류에 위치, 대만의 나이아가라 폭포라고 부른다. 높이 약 20미터, 너비 약 40미터로, 타이완에서 가장 큰 폭포로 녹음 사이 예쁘게 떨어지고 있었다. 가까이 가면 물이 다 튀어서 옷이 젖지만, 바라보는 경치가 너무 시원스럽고 예뻤다. 더웠지만 가볍게 산책하는 시간을 가져서 기분도 좋았다.      


진과스 황금박물관


 진과스는 일제 강점기에 금광 개발로 성장한 곳으로  황금 생산량이 아시아에서 최대였다고 한다. 일본이 적극적으로 금광을 개발하면서 진과스는 큰 번영을 이루었고, 지금도 황금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관광 명소이다. 황금 박물관, 황금 폭포, 황금 신사, 제련소였던 13층 유적 등의 명소가 있으며 당시 광부들이 먹던 도시락은 여행객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별미가 되었다.

황금은 더 이상 나오지 않지만 황금시대의 흔적이 남은 진과스만의 독특한 분위기와 가을과 겨울 사이에 많은 꽃이 피어 하얀색 꽃 마을로 변하는 모습 때문에 영화와 광고의 촬영지로 사랑을 받는 곳이다.          

              

주펀으로 가는 길


그리고, 기대하던 주펀으로 가는 길은 환상적이었다. 푸른 바다에 어울리는 아름다운 붉은 사원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한적한 산골 마을이었던 주펀은 아홉 집 밖에 없던 외진 산골 마을이었다. 1890년, 철도를 깔던 인부가 이 곳에서 사금을 발견하게 되었고, 사람들이 금을 캐기 위해 이 곳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조그만 산골 마을에 불과했던 지우펀은 본격적으로 성장하다 일본군이 타이완을 점령한 이후 그 성장세는 최고조에 달했다.      

타이완 광산업에 진출한 최초의 일본계 후지타 기업은 매달 수천 엔의 수입을 거두어들였다. 현재 지우펀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은 대부분 일본의 통치시기에 만들어진 것들이었다. 전쟁이 끝난 이후 금광산업은 쇠퇴하였고, 1971년에는 완전히 폐광되었다. 지우펀은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했고, 결국에는 거의 잊혀진 마을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주펀 다원 풍경

 

 금광으로 유명해지면서 화려하게 발전했으나 금광산업이 시들해지면서 사람들이 떠나고 급속한 몰락을 맞게 되었다. 주펀의 분위기를 담은 영화 비정성시가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으면서 다시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져 지금은 타이완에서 손꼽는 관광 명소가 되었다. 지우펀의 고풍스런 분위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향수를 불러일으켰고, 관광 마을로 탈바꿈하였다.      

 2001년에는 지우펀이 일본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배경과 닮았다는 이유로, 다시 한번 주목을 받았다. 일본 언론과 잡지들은 타이완과 함께 지우펀을 소개하기 시작했고, 일본인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면서 관광명소가 되었다.      


주펀 광장의 등불


 밤이 되면 홍등의 잔잔한 조명이 환상적인 경치를 만들어내는 낭만의 도시, 주펀은 산을 끼고 바다를 바라보며 산비탈에 자리 잡고 있는 지형의 특성상 모든 길이 구불구불 계단으로 이어졌다. 그 계단을 따라 오래된 집들이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골목마다 독특한 분위기의 상점과 음식점 그리고 찻집들이 끝도 없이 이어져 있다. 점차 어두워지자 등불 켜진 주펀을 보려고 사람들이 밀려들어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골목마다 빼곡히 들어선 상점과 신비하고 이국적인 분위기는 영화 속으로....      

    

사람 많은 시먼 역 앞
시먼 홍루-하나투어


 타이베이 중앙역에서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시먼 역으로 이동하였다. 시먼은 차량 없는 보행자 거리로 옷, 신발, 액세서리, 화장품 등의 상점들이 가득한 멀티 쇼핑 지역. 자유분방한 젊음의 거리답게 길에서 만나는 청소년들의 독특한 코스프레 분장도 재미있고, 다양하게 새긴 타투와 그라피티가 눈에 띄기도 했다.      

 안쪽에 위치한 시먼 홍루는 1908년 타이완 총독부에서 건축한 최초의 공영 시장이었다. 처음에는 2층 높이의 붉은 벽돌 팔각형 건물과 십자형 건물이 연결된, 매우 특이한 구조로 되어 있었다. 2000년 화재로 뒤쪽의 십자형 시장 건물이 소실, 지금의 팔각형 건물만 남게 되자 2008년 복원 작업을 마치고 타이베이 도시 경관 대상을 받았다. 이후 100주년 행사를 하면서 널리 알려져 여행자들이 꼭 찾아오는 명소가 되었다. 주말에는 광장에서 벼룩시장이 열리는데 개성 있는 핸드메이드 소품 등이 많다.      


타이베이 시립미술관
사방이 트인 미술관 구조


 타이베이 시립미술관은 지상 3층, 지하 3층으로 이뤄졌다. 언뜻 보면 매우 단순하고 소박한 외관이지만 건물 자체가 현대적인 감각을 갖춘 조형 예술품이었다. 건물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井’ 모양으로 되어 있는데, 마르지 않는 우물처럼 예술 문화의 원천이 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사방의 벽면에는 전면 유리를 사용하여 개방감과 생동감이 있으며, 대형 창을 통해 시시각각 변하는 외부 풍경을 즐길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흰색 위주의 구조, 담백함이 돋보이는 깔끔한 건축물이었다. 프런트에 짐을 맡기고 여유롭게 작품을 둘러보았다. 


타이베이 시립미술관
전시작가의 작품에 담긴 인생
디지털 예술 작품


 타이베이 시립 미술관은 전시의 질과 양에서도 관객을 압도하고 있다. 전시장 절반을 채우고 있던 디지털 예술 전시가 대단했다. 인터렉티브 아트, 모션 그래피도 돋보였고 영상 또한 재미있고 다양했다. 디지털 영역의 전시 규모가 엄청났다. 이제 미술교육도 디지털 아트 영역에 대해 확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곳곳에 조각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5개 담배창고를 개조한 송상 문창 원구 
삼례 예술촌 북카페
삼례 농협 창고를 개조한 전시관


 타이베이 여행의 마지막 코스를 송상문창 원구로 잡았다. 5개의 담배공장을 개조한 문화예술공간이라고 해서 호기심이 있었다. 학교처럼 복도와 교실이 있고, 내부는 새롭게 변신을 했다. 전시관 혹은 작업실, 기념품 판매실 등이 있었는데 아기자기하고 예쁜 소품들이 많이 있었다. 안에는 여러 예술가들의 작업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들어갈 수 없었다. 우리나라 지자체들의 청년 박스 같은 곳이었다. 농협 창고를 개조해 문화센터로 만든 삼례 예술촌과 유사한 곳이었다. 도시, 이제 새롭게 재탄생해야 하는 시기가 되었음을 다시 깨닫는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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