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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경희 Dec 16. 2020

대만-가오슝

2020년 1월 3일, 비행기 타고 두 시간 반 정도 지나 도착한 곳은 대만 서남단 국제항구도시 가오슝.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가오슝은 해안가를 중심으로 평온하게 모여있는 모습이었다. 1863년 무역항으로 개항된 가오슝은 설탕, 바나나, 파인애플 등 내륙 농산물 수출 기지 역할로 세관항이 되었다. 일본 점령기에 철도, 항만, 공업의 중심지로 발돋움했으며,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주요 군사기지가 되었다. 그리고 현재 국제무역항으로 발전하고 있는 도시이다.

 인구는 276만 명이고, 홍콩, 싱가포르 다음으로 큰 컨테이너 항구를 갖춘 가오슝은 부산을 닮았다. 중심가에는 85 스카이 타워와 50층의 세계 무역 센터 등 마천루들이 솟아 있다.         


가오슝 시가지 모습


 입국 수속을 마치고, 후덥지근한 공기를 가르며 밖으로 나오니 교통 연계가 잘되어 있었다. 공항에서 지하철을 타고 미려도 역에서 내렸는데 두 개의 지하철이 환승하는 곳이다 보니 사람들이 붐볐다. 개찰구로 나오는데 붉은색과 파란색의 유리 기둥이 화려하게 나타났다. 여행 정보 사이트에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하철역 중 2위에 선정된 곳. 신비스러운 느낌을 주는 ‘빛의 돔 The Dome Of Light’이 내부 중앙을 장식하고 있다. 이탈리아의 예술가가 4년에 걸쳐 완성한 작품으로 총 6천여 개의 유리판으로 만들어졌다. 천장의 그림은 지름이 30m 이상으로, 규모와 화려한 색감을 자랑하는 예술품이다 보니 미려도 역이 필수 방문지 중 하나로 꼽힌다. 가오슝은 사람들의 일상 공간 지하철 역사를 잘 활용해 하나의 예술작품을 만들어냈다. 그렇지, 생각을 바꾸면 일상이 예술이라는 것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미려도 역 '빛의 돔'


 역에서 나와 숙소에 짐을 놓고 리우허 야시장을 찾았다. 가오슝에서 규모가 가장 큰 리우허 야시장은 대만에서 3대 야시장으로 꼽힐 정도로 먹거리와 볼거리가 많다. 시장 입구부터 사람들로 붐비고 먹거리와 볼거리가 넘쳐나는 곳이었다. 다양한 생김새의 붉은빛, 노란빛 열대과일, 다양한 생김새의 과일과 누가 캔디를 사고, 우육면 한 그릇 먹고 이것저것 구경하다 시장 한쪽에서 발 마사지를 시원하게 받았다.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팥과 원형의 새알 등이 담긴 따끈한 음식을 사 왔다.           


리우허 야시장 화생탕원

                                   

 둘째 날 아침, 08시 20분 중앙역에서 출발하는 타이완 남쪽 끝 컨딩 지역 1일 체험에 참가하였다. 두어 시간 남쪽으로 향하던 오른쪽에 해안이 펼쳐지고 푸른 녹음이 겨울을 무색하게 했다. 버스는 컨딩 국가 공원 내에 위치한 국립 해양 생물 박물관에 도착, 돌고래 조각상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니 건물 뒤편에 또다시 푸른 바다가 펼쳐졌다.


컨딩 해양생물관 돌고래 조각상
컨딩 해양생물관의 북극관

 

 이 곳은 아시아에서 가장 긴 해저 터널과 세계적으로 희귀한 해양생물로 유명하다.  보유한 어종이 풍부하며, 대만 수역관, 산호 왕국관, 세계 수역관으로 나뉘어 있다. 수족관 터널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무리를 지어 이동하는 물고기 떼를 비롯 상어, 해파리 등 바닷속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다. 특히 내셔널 지오그래피에서 만났던 하얀 고래와 백상어를 만나는 설렘이 있었다. 남극의 모양과 기온을 유지한 상설전시관에는 펭귄이 보였고,  유유자적하게 노니는 작은 백고래와 상어 등 해저세계에 걸어 다니는 듯한 인상이었다. 오키나와의 해양생물관처럼 넓은 수족관에 여러 유형의 물고기들이 유유자적 헤엄치고 있었다. 또한 가상 해양 세계 VR 체험관에는 해양 세계의 모습 이해, 극지방 탐험차량, 세계로 떠날 수 있는 체험시설이 갖춰져 있다.


푸른 바다와 용반공원
별구경하기 좋은 용반공원


붉은빛의 석과와 노란빛의 망고 주스를 마시고, 찾아간 곳은 태평양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용반공원이다. 입구에 나무로 된 테크 길이 놓여있고, 하얀 풀꽃도 보였다. 바람에 누워있는 풀들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는데 역시 강한 바람이 불어왔다. 이 바람과 파도를 맞으면서 절벽이 깎여 있는 경치가 푸른 바다와 절묘하게 어울렸다. 절벽 위 넓은 초원에 금이 간 황토가 넓다. 바로 구름이 일어나는 느낌,  하늘과 바다와 땅이 만나는 묘한 기분이었다. 이곳 현지 주민들이 밤에 별자리 보러 온다는 말에 공감이 들었다. 바다색이 멋진 지극히 자연스러운 곳, 숨이 탁 트인 전경이 좋았던 곳이다.

  

어롼비 공원의 정원과 등대
어롼비공원의 키싱 바위
어롼비공원 최남단 해변


 타이완 최남단에 위치한 어롼비 등대는 1882년 영국인이 최초로 건설한 등대로, 바시해협을 사이에 두고 필리핀과 마주 보고 있다. 지금의 흰 등대는 2차 대전 후 부서진 등대를 새로 만들었다. 어롼비공원에 들어서자 야자수와 푸른 풀밭이 바다를 배경으로 멋진 경치를 보여주었다. 이국적인 등대를 구경하고 등대모양의 마그네틱을 기념으로 장만했다. 한가한 바람을 맞으며 공원을 빙 둘러 바다 쪽으로 내려갔다. 바다로 내려가는 산책길은 조용하고 다정했다. 두 개의 바위가 서로 마주 보고 입을 맞추는 듯한 모양이 있었는데 키스 바위라고 했다. 암석과 바다, 그리고 피어있는 해양식물의 조화를 바라보다 전망대에 올랐다. 최남단에 설치된 전망대에서 솟아오르는 파도, 하늘과 바다를 담은 한 폭의 그림을  만날 수 있다.


컨딩 자연휴양림과 바다
컨딩 자연휴양림의 모습


 컨딩 국가 자연휴양림은 면적이 넓어 다 돌아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휴양림 중앙으로 향하는 코스를 정해 여유 있게 이동했다. 오래된 나무와 열대림 속 작은 길을 걸어가는 행복감이 충만했다. 관리소와 온실이 눈에 띄긴 했으나 자연의 바람과 햇빛이 더 아름다운 곳이었다. 300년 수령의 신성한 나무, 독특한 원주민의 조형물이 세워져 있었다. 열대 밀림처럼 늘어진 나무들 사이에 고개를 내밀기도 하고, 하얗고 붉은 꽃들을 바라보며 편안한 휴식을 취하기도 했다. 특히 뿌리가 자라 위로 올라온 독특한 나무들이 인상적이고, 습지식물 사이를 지나 쭉 둘러보다 만나 바다가 무척 아름다웠다.      


가오슝으로 돌아가는 길에 들른 출화 풍경구, 약간 시시했지만 꺼지지 않는 불이 계속 타올라 나름 볼거리가 있다. 땅 속에서 천연가스가 뿜어져 나와 자연적으로 불이 붙어있다. 둥근 가이드 벽을 쳐 놓아 위험하지 않았다.


가오슝 시립문화센터 입구 돌북
가오슝 시립문화센터 입구 안쪽

    

 다음 날, 맑은 하늘, 초록 초록한 바람이 여전한 오전 일찍 지하철을 타고 시립문화센터를 찾아갔다. 독특한 문양들이 늘어선 곳을 따라 가보니 시립문화센터 입구가 파문으로 서 있다. 안으로 들어가니 넓은 공원과 가오슝 문화국이 자리 잡고 있다. 공원 나무에 기대거나, 앉아서 찬란한 햇빛을 받으며 바람을 맞고 있었다. 소확행, 이런 건강한 휴식이 행복이다.

 가오슝 문화예술의 상징이며 레저와 휴식을 제공하는 곳으로 공연장 외 전람실과 도서관 등이 있다. 예술거리에 돌로 된 북, 시가 있는 산책길 등이 있고, 주말 저녁에는 예술가 공연과 문화창의 활동이 진행된다고 한다.   


수도국 공원 둥근 탑


 시립문화센터 근처에 수도물 공원이 있다. 수도물 공원은 매우 특이한 모양을 갖추었다. 온고지신의 창의적 아이디어 작품이었다. 1960년 건립하였으나 오랫동안 폐기되어 사용이 중지되었던 대형 축수 탑과 수돗물 수배관선을 예술 작품으로 만들어냈다. 현재 둥근 수탑은 일곱 가지 색깔로 칠해져 38미터의 대형 칼라 구형물로 거듭나, 특히 야간에는 조명으로 더욱 아름다움을 빛내고 있었다.

 공원에는 광섬유와 광 벨트로 유리 모자이크를 연결하여 가오슝시 지도와 여러 복잡한 도안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렇게 하여 원래 딱딱한 공업 장소가 아름답고 부드러운 예술의 새로운 풍격을 얻게 되었다. 초록빛 배관은 의자 역할을 하고 있었다. 학생들 과학 상상화가 현실로 꾸며진 듯한 매력이 있었고, 버려진 폐기물의 공간을 시민 휴식 겸 예술 공간으로 탈바꿈한 이곳, 없애지 않고 새롭게 재탄생시킨 것은 진정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다.  


웨이우잉웨이우미미춘 벽화마을
웨이우잉웨이우미미춘(벽화마을)



  오래된 아파트 단지가 초대형 벽화 덕분에 예술 마을로 변신했다. 예술가들이 낡은 아파트 단지를 예술 작품으로 바꿔 놓았다. 웨이우잉국가예술문화센터 옆에 위치한 벽화마을은 주말이나 휴일이 되면 400~500명이 찾는 관광 명소이다. 타이완 예술가 외 미국과 일본, 스페인 등 17개국에서 온 스트리트 예술가 32명이 3년 동안  55폭의 대형 벽화를 완성했다. 점차 확대하여 100폭의 벽화를 완성하고 있는 중이었다. 도서관, 역사, 자연 생태계와 사람들의 모습 등이 일상 속에 예술로 자리 잡았다. 벽화마을은 주제를 정해 표현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웨이우잉 국가문화예술센터 외관-가오슝시
웨이우잉 국가문화예술센터 내부


 웨이우잉역 앞에 있는 국군병원과 각종 기념비를 통해 과거 이곳이 군사지역이었음을 추정해볼 수 있다. 청나라 때부터 1979년까지 대규모 군 주둔지였던 곳에 2018년 10월  초대형 국립극장을 세웠고, 이 곳은 가오슝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떠오르고 있다.  

콘서트홀과 오페라하우스, 리사이트홀, 플레이하우스 등 네 개의 공연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거대한 공연장이 하나의 지붕으로 연결되어 있다. 밖에서 보면 가오리 모양이나 디자인을 맡은 네덜란드 회사 메카노는 반얀트리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공연장은 9,194개의 파이프로 만든 파이프오르간을 비롯해, 훌륭한 음향시설을 갖추고 있다.  

 바로 앞 가오슝에서 가장 큰 자연생태공원 곳곳에서 타이치를 하는 주민들을 볼 수 있다. 이 곳은 1950 군사훈련센터였던 캠프가 자리하던 땅으로, 한동안 버려져 있었으나 개발하면서, 사진 찍기 좋은 핫 스폿으로 떠오르고 있다.
 

가오슝 중앙공원 공연
방탄소년단을 꿈꾸는 아이들
중앙공원의 한가로운 모습

 


아름다운 지하철역으로 손꼽히는 가오슝 중앙공원역, 역 건물 자체도 아름답지만, 에스컬레이터 타고 올라오는 벽면도 예쁘게 장식되어 있었다. 지하철에서 내려 중앙공원으로 나오는데 계단에 수많은 사람들이 앉아서 소리 지르며, 2020년 새해 축하 공연을 하고 있었다. 잠깐, 일상의 예술을 즐기는 가오슝 시민들의 모습을 바라보다 밖으로 나오니 바로 공원과 이어졌다. 화려한 야외 조명과 흥겨운 공연, 시민들이 참여하는 놀이들이 진행되고 있었다. 두어 군데 들여다보다 공원의 나무 사이를 지나니 산책길과 호숫가, 넓게 펼쳐진 푸른 잔디가 독특하면서도 시원한 풍경이었다.

 城市光廊이라는 표지가 있는 곳에서 몇몇 학생들이 열심히 BTS 춤을 연습하고 있었다. K-pop의 위력을 이곳에서 느껴보았다. 부근의 J카페에 들어가 팥이 들어간 화이트 푸딩을 먹었는데 아직도 그 맛이 생생하다. 건너편에 가오슝의 명동 신쿠장상권이 있다.      


삼청동 현대미술관 초록 원심림 야외전시
가오슝 보얼 지구 초록 원심림


가오슝에는 일본 식민지 시대 시설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 이 낡은 시설들을 개·보수해 새로운 이색 관광지들로 만들었다. 이들 가운데 하마싱 보얼 예술특구는 도시재생사업의 방향성을 보여주었다. 우리 시대 젊은 건축가를 발굴 지원하기 위해 국립현대미술관이 지원한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 양수인의 ‘초록원 삼림’ 감각적 도시 쉼터 작품을 삼청동 현대미술관 야외 작품으로 본 적이 있었는데,  여기 보얼 예술 특구에  일상의 공간으로 서 있다.                        


보얼예술 지구 기차박물관


가오슝에 도착하던 첫날 저녁, 다음날도 하마싱 보얼 예술특구에 다녀올 만큼 보얼 예술특구는 이번 여행의 주제였다. 일본 식민지 시절 가오슝은 대만의 각종 자원을 일본으로 실어 나르던 항구였다. 전국에서 운송된 물자가 철로를 이용해 가오슝 항에 집결했고, 여기서 배에 실려 일본으로 건너갔다. 하마싱철도문화원구는 당시 기차들의 종점. ‘하마싱’은 일본어로 해변 철도라는 뜻이다. 이 곳의 붉은 벽돌 창고들은 식민지 시대에 사용되던 물류 창고들이었지만 가오슝항이 쇠퇴하면서 버려져 있던 곳들이었다.

우리나라의 목화와 쌀을 일본으로 송출하던 군산항과 목포항을 돌아보게 했다. 어느 도시나 재생사업의 성공을 위해서 문화사업이 필요하다. 영국의 멘체스터처럼 혹은 일본의 롯폰기처럼 도시가 새롭게 변하기 위해서 지역 예술가들이 모여 만들어진 시너지의 힘이 필요하다. 보얼 예술특구에서 가장 인기 많은 시설은 미니 기차다. 표를 끊고 미니 기차에 올라앉아 보얼 예술특구를 한 바퀴 돌고 나온다. 기차 박물관에는 여러 가지 기차와 관련하여 볼거리들이 있다.


보얼 예술 특구의 기찻길과 연날리기
보얼 예술 특구 의자 조형물


 창고 뒤편 기찻길 앞에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젊은 부부, 배낭여행 온 사람들, 철길 위로 연 날리는 사람들 모습을 곁에 선 로봇이 지켜보고 있다. 어린이들은 깔깔거리며 철길을 뛰어다니고, 나무 그늘에 자리 잡은 가족은 느긋하게 간식을 즐기고 있다. 기찻길을 그대로 이용해 만들어 놓은 기찻길 공원이라 할 수 있다. 선로 위에 세워놓은 거대한 악기가 인상적이고 기찻길 위에 놓인 커다란 여행 가방은 새로운 세계를 꿈꾸게 하는 상징적인 작품이다. 또한 철실을 둘둘 말아 만들어 놓은 거대한 공, 의자를 둥글게 둘러쌓아 놓은 거대한 조형물도 눈길을 끌었다. 오줌싸개 아이와 다정한 연인의 조각품, 입구에 세워진 상징적인 한 쌍의 조각품, 벽면의 다양한 작품들이 창고 건축과 묘하게 어울렸다. 카페에서 아메리카노 한잔 마시고 슬슬 걸어서 벽화를 둘러보았다.  

   

보얼 예술지구 벽화
쇼핑센터로 변신한 물류창고


 가오슝시는 2006년 지역 예술가들과 문화 관련 사업가들이 힘을 모아 대변신을 이루어냈다. 시민이 활용할 수 있는 문화사업 리모델링으로 보얼 예술특구가 생겨났다. 창고는 총 25개. 모두 공연장, 전시장, 영화관, 박물관 등으로 사용된다.

몇 년 전 석유 비축기지를 탈바꿈하여 예술 공간으로 변화시킨 서울 문화 비축기지는 그런 점에서 더욱 혁신적이다. 240명이 넘는 예술가들이 모여 디지털 체험 공간과 자연주의 놀이공간을 더한 예술공간을 시민들에게 돌려준 곳이다. 서울로 7017과 문화 서울역, 연희동 숲길, 익선동 한옥마을을 비롯, 동인천 차이나타운과 동화마을 등 새롭게 시민의 품으로 돌아오는 예술공간이 전국 각지에 점차 많아지고 있다.     


보얼 예술지구 조형물
보얼 예술지구 부두 쪽 벽화


 가오슝 항 2호 부두 일대 오래된 옛 창고를 개조해 설립한 보얼 예술 특구, 예술가들을 불러들이면서 작가들의 작업실과 예술 전시 공간이 들어섰고, 독특한 조형물을 곳곳에 설치하면서 어두웠던 환경이 180도 바뀌어 가오슝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변화를 겪은 곳이 되었다. 창의적인 공방, 월광 극장 등을 통해 생활과 예술의 경계를 뛰어넘는 개성 넘치는 거리를 걸으면서 낯선 즐거움과 익숙한 그리움을 느끼게 했다.

보얼 예술특구에서 바다 쪽으로 가면 부두가 나오는데 과거 한국과 일본 등에 수출할 바나나를 배에 싣던 ‘바나나 부두’다. 과거 창고였던 곳을 개조한 KW2라는  쇼핑센터도 보인다. 안에 들어가면 과거 붉은 벽돌 건물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지금은 카페, 식당은 물론 공예품, 의류 가게 등이 입점해 있다. 부두와 바다를 보면서 망고 주스 한 잔. 오후의 한가로움을 즐긴다.    

 

노동자 박물관 내부



 보얼 예술 특구 내 타이완 설탕 회사 C4 창고에 노동자 박물관이 있다. 유일하게 노동자가 테마인 박물관이다. 타이완은 노동 문화의 가치 보존에 노력하여, 이름 없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땀을 주목했다. 그들이 가오슝 공업을 일으켰음을 기억하고 세상의 노동자들과 함께 공유한다는 가치를 인식시켜주고 있었다. 생각과 가치과 혁신적이려면, 먼저 상대를 배려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지하철 챠오 토우 역에 내리면 이색적인 북 공연을 체험할 수 있는 ‘텐 드럼 문창 단지’가 있다. 문창 단지는 과거 식민지 시대에는 사탕수수 공장이었다. 일본은 대만에서 생산한 사탕수수를 이곳에서 설탕으로 만들어 가오슝 항을 통해 전량 일본으로 보냈다. 가오슝시는 역시 옛 사탕수수 공장을 문화체험시설로 바꿨다.


연지담 용호탑
연지담 춘추각


 다음날, 아침 일찍 연꽃으로 유명한 연지담 풍경구를 찾아갔다. 연지담의 상징, 용호탑은 웅장한 용과 호랑이가 입구를 지키고 있는 팔각 형태의 칠층 탑이다. 도교사원 자제궁을 지나 용호 탑에는 용의 입으로 들어가, 호랑이 입으로 나와야 행운을 불러오고 액을 피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여행 중 무탈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용의 입으로 쑥 들어가 용탑 꼭대기에 올라갔다. 연지담의  풍경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었다. 반대쪽 호탑에 올라갔다 다시 내려와 호랑이 입으로 나왔다. 용호 탑에서 우측으로 가면 중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영웅이자 전쟁의 신 관우에게 바치는 춘추각을 만나볼 수 있다. 구곡교 앞에 있는 붉은색 화려한 정자, 오리정에서 내려다보는 풍경도 멋졌다.


진흙 화산 월세계
월세계 정상 쪽 호수


 버스 타고 한참 달리다 보니 텐 라오 구에 자리한 월세계에 도착했다. 월세계 지경 공원은 달나라 표면 같은 독특한 곳을 지질공원으로 만들어놓은 곳이다. 입구에서 슬슬 걸어 올라가니 위쪽에 작은 호수가 운치를 더하고 있다. 호수를 한 바퀴 돌아 안쪽으로 내려다보니 아주 독특한 지형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마치 거칠고 메마른  달나라 혹은 화성에 와 있다는 거친 느낌을 주는 진흙 화산이었다.


월세계 지형 표면


 오랜 시간 자연적으로 형성된 진흙 화산이 바람과 빗물에 침식되는 과정을 반복하여 지금의 뾰족하고 거친 산들이 형성되었다. 진흙으로 이루어진 토양이기에 겉은 단단하나 힘을 가해 밟으면 우수수 부서진다. 눈으로 확인되지 않는 간헐성 화산활동이 이루어지는 곳으로 비교적 안전한 타이완의 화산지형이라고 할 수 있다.      

아래로 내려가 가까이에서 바라보니 진짜 신기했다. 안쪽 분지에는 파초 등 열대 식물도 자라고 있었다. 일몰 때 월세계 산맥 뒤로 노을빛이 조화를 이루어 여행객과 사진작가를 사로잡는 출사 장소로도 알려진 곳이었다.           


불광사 입구 사자와 코끼리


1967년 대만에서 존경받는 성운대사에 의해 건립된 불광사는 대만 불교의 총 본산지 사찰이다. 세계 각국에 200여 개 분원과 국제 불광 지회가 170여 개가 있다. 가오슝 북쪽 29km 떨어진 마죽 위에 위치하고 있는 불광사에는 높이 36m의 대불상과 1만 5천 개의 관음보살을 안치한 만대비전 불교대학, 집회장, 불교박물관 등이 있으며, 산 전체가 불교문화단지인 세계 최대의 사찰이다.     

너무 방대한 규모에 놀랍고, 현존하는 불교계의 지도자가 있으며, 부처님 치아사리를 모신 불광사는 불상과 절의 규모도 거대하지만 더 의미 있는 것은 종교의 대통합을 이뤄냈다는 점이다.


불광사 중앙대로


 방문자 70% 이상이 종교와 상관없이 찾아오는 관광객, 하루 2만 명이 넘는 여행자가 방문하는 곳. 입구 오른쪽에 코끼리상, 왼쪽에 사자상이 서 있다. 예경대청을 지나자 넓은 공간이 나오는데 절에 스타벅스가 자리하고 있었다. 케익과 커피 한잔. 이 곳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건강하고 맛있는 사찰음식, 원재료는 100% 채식이다. 숑~~ 안으로 들어가면 양쪽으로 뻗은 8개의 거대한 탑과 중앙에 놓인 넓은 길이 나타난다. 중국 전통 양식으로 지은 탑들은 다른 용도를 가지고 있으며 성운대사의 서예 작품을 감상할 수 있고, 탁본도 할 수 있다. 축제 때는 화려한 불꽃도 쏘아 올리고 빅 데이터 강의, 각종 축하연이 열리기도 한다.

 

불광사 대불과 불탑


 불광대불 거대한 부처가 환하게 웃으며 중생을 향해 두 손을 벌리고 서 있다. 불광대불은 구리 1,872톤으로 만든 좌불상으로 높이가 48m에 달한다. 마치 중생들을 굽어보듯 내려다보고 있다.  순박한 신앙심을 가진 사람들은 표정을 부드러운 표정으로 느긋하게 부처를 향해 걸어가 손이 모아진다.

 성운대사의 ‘생활 속에 예술이 없으면 안 된다. 종교 또한 마찬가지이다’라는 신념에 따라, 본관은 불교 미술품이 가득하다. 본관 안 옥불전에는 부처의 치아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어 참배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놀라운 사실은 거대한 불타기념관이 헌금으로 운영된다는 점이다.

돌바닥에 오체투지를 하며 온몸의 고통을 안고 올라가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메주고리예의 성당 바닥을 기어 온몸으로 오체투지 하던 사람들이 생각났다.
 

가오슝 역사박물관


 
 아이허강 옆에 위치한 일본식 건축양식이 보이는 가오슝 역사박물관에 들렀다. 역사박물관은 원래 가오슝의 시청 건물로 사용되었는데 지금은 시 지정 고적으로 분류되어 관리되고 있다. 시간이 많이 흐른 건물이지만 보존 상태가 매우 좋은 건축물 중 하나이다. 일본식 옛 건물을 잘 활용하여 옛 가오슝의 사진과 역사적 가치가 있는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가볍게 쓱~ 들러보고 나왔다. 밖에서 바라보는 건축물이 더 인상적인 곳이었다

    

아이허 강변과 LOVE

 

 아이허강은 산책로가 잘 갖춰진 곳으로 시민들이 애용하는 휴식처이다. 우푸다리와 종정루, 그리고 강 옆의 LOVE 조형물이 인상적이다. 오후의 햇살이 빛나는 강변에 사랑이라는 글자의 조각상이 애교스럽다. 야경이 아름다운 곳으로 밤에 다시 찾아왔다. 강변 곤돌라는 오후 4시 30분부터 시작하고, 매년 음력 1월에는 등불축제가 열리며, 음력 5월에는 단오절 용선 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어느 도시나 생명력을 보여주는 곳이 강인듯하다.   


열대과일 판매하는 리우허 시장


 가오슝에서 가장 번화하고 활기찬 야시장은 루이펑 야시장이다. 야시장 길이는 약 오백 미터쯤이고, 대부분 중국어로만 메뉴가 되어 있어서 주로 현지인이 이용하는 시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메뉴는 다른 시장과 거의 비슷했으나 사람이 너무 많아 쭉 둘러보기만 하다 밀크티와 간식만 사고 나왔다. 가오슝 시내 현지 먹거리들을 체험할 수 있는 야시장이 몇 군데  있는데 그중 시내 중심과 접근성도 좋고 볼거리도 많은 곳이 리우허 야시장이다. 다행히 호텔과 가까이 있어서 매일 이용했다. 현지인들은 물론 관광객들이 주로 찾는 곳이라 물건 사는 데 불편함이 없었다. 여행객들이 길거리에서 간단히 먹을 수 있는 꼬치구이, 큐브 스테이크 등 가격도 저렴해서 부담 없이 사 먹었고, 마그네틱, 열쇠고리 등 소소한 기념품을 장만했다.

          

치진 섬 오가는 페리
치진 섬 페리 터미널


 다음날, 치진 섬 오렌지라인 시즈완역에서 1번 출구 8분 정도 거리에 있는 구산 페리 터미널. 1인당 800원 정도의 요금을 지불하고, 10분 정도 지나면 내리는 마주 보고 있는 섬이 바로 치진 섬이다. 페리 터미널 붉은색 건물 종탑이  독특하다. 밖으로 나오니 다양한 전동 자전거가 줄지어 서 있고, 곳곳에 해산물이 넘친다.      

탁 트인 오른쪽 해변 따라 걸으니 야트막한 언덕이 나온다. 항구를 지키기 위해 세워진 요새, 치허우 포대의 전망이 좋다. 대부분 붉은 벽돌로 만들어진 넓은 옛 터가 펼쳐져 있다. 포대 위로 꽤 넓은 폭의 둘레에 앉으니 바다와 해변, 가오슝의 건물들까지 한눈에 들어오고, 호선 구도의 해안 경치가 멋졌다. 노을 지는 바닷가의 모습은 꽤 근사할 듯하다. 치허우 포대를 둘러보고 내려와서 치진 터널로 이동, 터널은 꽤 길게 연결되어 있으며 터널 내부에 그림이 그려져 있고, 안쪽에 각국의 언어로 된 낙서도 있다.      


치진 섬의 전동 자전거
치진 섬에서 바라본 가오슝 모습
치진 섬 무지개와 예쁜 교회


 해안가를 따라 걸으니 야자수가 늘어선 해변에 치진 섬이라는 하얀색의 글자가 서 있다. 검은 모래 해변, 제주 삼양 해변과 비슷하다. 야자수와 바다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지나면 무지개 교회가 나온다. 무지개 모양의 구조물과 예쁜 교회가 핫 스폿이다. 그리고 리조트 부근의 소라 모양의 조각물과 노란빛의 작은 음악당을 둘러보았다.  300년 도교사원과 푸른 바다와 해안, 대형 프로펠러를 달고 있는 7개의 풍차가 맞이해주는 공원은 바다와 참으로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둥근 채광창을 가진 다동문화예술센터


미술관 담장 위에 세워진  조각품

 

다시 페리를 타고 나와 지하철을 타고 다동문화예술센터로 향했다. 이 곳은 다기능 문화구역으로 공연장, 전시관, 예술교육센터, 도서관 등 모두 4개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건물 사이에 둥근 모양의 독특하고 아름다운 채광시설은 마치 열기구 모양 같았다. 하얀 조각품과 분수대 등이 주변 녹지와 잘 어우러져 있다. 흰색의 조명은 튤립 꽃처럼 건물 외벽을 둥글게 둘러싸고 있었다. 특이한 외관에 자연바람과 빛으로 동양의 아름다움을 가미하여 표현한 듯했다.  다동 문화 예술 회관의 외부 건물은 몹시 특이하지만 멋진 구조를 갖고 있었다. 외벽은 콘크리트의 교차 구조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벽면의 거울과 유리 공간의 적절한 배치 구조를 갖고 있었다.


사철 푸른 나무로 오랜 시간을 지녀온 이 곳의 문화중심센터에는 예술을 사랑하는 시민들이 느껴진다. 빛과 방향이 절묘한 공간으로 배치된 예술센터답게 멋진 곳이다. 아트와 사랑의 Zone커피숍에서 커피 한잔,  이 곳 주민들이 사랑하는 예술 잡지들을 보는데, 오키나와 미술관 기둥과 인천지하철 역사에서 만난 공간이 재생되는 느낌이었다.          

4일 동안 가오슝에서 보낸 시간들, 많은 곳을 보지 못하고 사람들의 삶을 경험하기는 부족했다. 하지만 예술을 사랑하는 시민들이라는 생각과 함께 다음에 느긋한 마음으로 다시 한번 즐겨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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