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경희 May 19. 2023

유황 냄새 가득한 지옥계곡

일본 소도시 33-온천으로 특화된 노보리베츠

 어제는 저녁까지 날씨가 흐릿하더니, 오늘 아침은 맑음이다. 하얀 구름이 둥둥 떠있다. 신선한 해산물과 유제품 음식이 맛있기로 유명한 삿포로 호텔 조식,  아침 6시 반부터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 일본식 조식을 선택해서 낫또와 계란찜, 연어구이와 연근 등을 먹었더니 단짠단짠 하면서도 풍미가 있다. 든든하게 챙겨 먹고 삿포로 역에 도착, 플랫폼 6에서 7시 30분에 출발하는 호쿠토 특급 기차를 탔다.


홋카이도 ‘눈’은 지역 거주민들에게 두 가지를 준다. 하나는 엄청난 폭설로 고립과 혹독을 버텨야 하는 겨울. 하지만 쌓인 눈은 이듬해 늦은 봄까지 풍부한 수분을 제공해 주므로 수목이 울창하다. 또 하나는 온 세상을 하얗게 만들어 주는 아름다운 설경이다. 순백의 풍광을 바라보며, 추위로 지친 몸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온천이 곳곳에 있다. 곳곳에 이름난 온천이 많으니 홋가이도는 한 번도 안 가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가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4월 아침 삿포로역 모습



 JR패스 노보리베츠 구간을 구입한 데다 지옥 스토리로 알려진 곳이라 노보리베츠를 향해 출발 고고싱!  삿포로역에서  노보리베츠까지 jr티켓 값을 보니 편도 47,800원이다. 왕복 95,600원에 다녀와야 할 구간이다. 하지만 미리 구입한 76,000원짜리  jr패스  4일 이용권. 신치토세 공항 쾌속 에어포트 자유석과 오타루 왕복 등 충분히 이용할 수 있으니 완전 비용 절감이다.


삿포로 노보리베츠 패스



 기차 오른편 창가를 보니, 파아란 하늘 아래 하얀 삿포로 산과 애니와 산 등이 길게 호위해주고 있다. 넓은 평지에는 구름이 일어나고, 기찻길 옆에는 여러 색깔과 모양의 집들이 자리 잡고 있다. 하얀 뭉게구름이 둥둥 마을 위에 있다. 신기하게도 홋가이도의 하늘은 지평과 가깝다. 땅이 넓어서인지, 나만의 착각인지 모르겠다.   


순백의 이마를 가진 다루마에 산
하늘과 가까운 토마코마이


활화산 윗부분에 도움형태가 나타나는  독특한 다루마에 산은 시코쓰호 남쪽, 1,041미터 높이다. 머리 하얀 설산이 기차를 따라온다. 40분 정도 남으로 달리던 왼편 창가에 파란 바다,  태평양이 눈에 들어왔다. 오른쪽에는 다루마에산과 토마코마이 시가지 일부가 보인다. 이제부터 기차는 바다를 끼고 서쪽으로 향한다.



돌로 쌓아 만든 석채의 교회 - 이타미준 기념관


드디어 토마코마이 역에 도착했다. 순간 이 도시에서 내릴까 고민했다. 제주 이타미준의 기념관에서 만난 석채의 교회와 나무의 교회가 있는 곳이다. 1991년 토마코마이 니돔리조트에 지은 그의 건축물 두 곳이 있다. 하나는 홋가이도의 자연에 대응하는 단단한 구조와 강인함을 담아 돌로 쌓은 석채의 교회이고 또 하나는 나무의 교회이다. 나무의 교회는 숲을 사랑한 레너드번스타인을 기념하여 지은 그 부속물이다.

안도 다다오의 물의 교회와 더불어 다시 찾아와야 할 목표를 갖게 하는 항만도시이다.  나중에 올 때는 렌트 해야겠다. 



노보리베츠 기차역  호쿠토 특급열차
노보리베츠 역 앞 오니상


1시간 14분 정도 지나 기차는 노보리베츠역에 도착했다. 조용한 시골의 역사는 작고 소박했다. 플랫폼에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코 끝을 적시는 꾸리꾸리한 냄새. 유황냄새가 스멀스멀 느껴지는 것을 보니 드디어  지옥마을에 도착했구나!

 

유명한 온천지역답게 제법 사람들이 많다. 검표 역무원을 지나 역사 내부로 들어오니 도깨비 조각상이 세워져 있다. 남녀 도깨비의 생김새가 귀엽다. 역사 외부에는 빨간 도깨비 오니가 송곳니를 보이며 눈을 치켜뜨고, 방망이를 머리 뒤로 들고 앉아있는 모습이 으스스 무섭다.


역에서 나와 바로 앞에 서있는 도난 버스를 타고 온천지구까지 약 15분 동안 달리면 비용은 350엔. 지옥 온천을 만나러 가는 길 곳곳에 거대한 오니가 방망이를 휘두르고 서 있었다.




곰목장 로프웨이역


버스에서 내려 지옥곡으로 향하는 길을 따라 올라가니 오른편에 곰목장 표지가 있다. 로프웨이역에 들어서면 2미터 30짜리 박제된 곰이 어서 오세요!라고 인사하고, 곳곳에 인형들이 나를 데려가주세요라고 기다리고 있다. 모형 로프웨이와 사진들을 지나  해발 550m 시호레이 산 정상까지 약 4분이면 도착한다.  

베어 목장역으로 올라가면, 가이도 불곰을 볼 수 있는 곰 테마 파크이다. 1958년 홋가이도에만 서식하고 있으며, 아시아에서는 보기 힘든 에조불곰을 관찰하고 연구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다. 8마리로 시작해서 지금은 100여 마리가 되었다고 한다. 뒤뚱~ 오리 경주도 볼거리이지만 입장료는 2,600엔으로 조금 비싸다.



홋가이도 불곰의 모습들
곰 먹이 판매 자판기

  

제1목장에는 수컷, 제2목장에는 암컷이 있어 엄청난 크기의 곰이 먹이를 달라고 조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 방문객들이 곰 우리에 들어가 가까이 관찰할 수 있는 인간 우리도 인기 있다. 이곳 자판기에서 한 봉에 1000원짜리 먹이를 사서 곰에게 넣어줄 수 있다. 유리 앞 기계에 먹이를 넣고 쭉 밀어 넣으면 먹이가 우리 안으로 들어가 곰이 먹을 수 있게 했다. 바로 앞에서 곰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오히려 인간이 우리 안에 갇혀있는 재미있는 구조다. 로프웨이 역 옆에 있는 작은 건물에서 곰이 상자 속, 나무밑, 높이 그네 위 등에서 숨겨둔 먹이를 찾아먹는 장면을 볼 수 있다.



큰 곰 박물관


전 세계에서 홋가이도에만 있는 히구마(큰 곰) 박물관에서는 골격 표본이나 습성, 생태 등에 관한 자료 약 500점이 전시되어 있다. 아이누 민족의 생활도구 등을 전시하는 생활 자료관도 있고, 포토존도 마련되어 있다.

박물관 꼭대기에 있는 전망대 앞쪽은 굿다라 호수, 뒤편은 설산이었는데 장관이었다.



우리의 전래동화 도깨비


도깨비, 머리에 뿔이 난 귀신이 방망이를 들고 무섭기도 하고 우스꽝스럽기도 한 모습이 떠오른다. 문득, 우리나라와 일본의 도깨비는 어떻게 다를까? 궁금해졌다.

 우리 사전에 도깨비는 사람이나 동물의 형상을 하고 있으며 비상한 힘과 괴상한 재주를 가져서 사람을 홀리기도 하고 짓궂은 장난을 치기도 하는 귀신이라고 되었다.

그런데 우리 도깨비는 방망이가 없고, 머리에 뿔도 없다고 한다. 동화에 방망이 들고, 머리에 뿔 달린 성질 포악한 도깨비들이 등장하는데,  일제강점기 시대 우리나라에 넘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술을 먹고 비틀거리는 사람, 다리 아래 혹은 통행이 드문 으슥한 곳, 한밤중 등에 사람의 손때가 묻은 오래된 빗자루나 사발 같은 사물이 밤이 되면 도깨비가 되는 친근함은 중국 고서 산해경에 등장하는 귀신같은 느낌이다.  

우리 도깨비들은 사람과 어울리고 때로는 사람을 돕기도 하고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 사람을 벌주거나, 가끔 바보 같고 재미있게 표현된다.

요즘 사람들은 도깨비 드라마 주인공 공유를   생각할 듯하다.



지옥곡 온천 입구 오니들


 반면, 일본의 도깨비 오니는 남성 모양을 한 상상의 괴물이다. 오니는 방망이를 들고, 머리에 뿔이 있고, 성질이 포악하며, 사람들을 괴롭히고, 훈도시 차림에 피부는 파란색 또는 붉은색으로 무서운 눈과 괴기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다. 오니가 털이 많고 우락부락한 외모에 원시적인 복장을 한 것은 아이누인과 닮아서라고 하는데, 일반적으로 이승을 침범하여 사람을 잡아가는 저승 세계에 대한  불안, 타자에 대한 공포가 형상화된 것이라 한다.


오니를 본떠서 만든 일본 전통 가면을 멘구라고 하는데, 방어와 동시에 무서운 외형을 통해 적에게 심리적인 공포를 유발하는 용도이다. 외에도 일본에서는 술래잡기를 오니 놀이라고 하며, 술래를 오니상이라 한다.

일본은 화산과 지진 등의 영향으로  질서가 중요하다 보니 이런 무시무시한 도깨비가  등장한 듯하다.



온천수가 뿜어져 나오는 센켄 공원


지옥계곡을 올라가는 길에 크렁크렁하는 소리가 들려와 주위를 둘러보니 색색의 도깨비방망이가 빙 둘러 서있다. 센켄 공원 계단 아래로 내려가니 매퀘한 냄새와 유황 연기가 펑펑 용출하다 말다를 반복하고 있다. 잠시 지옥을 실감할 수 있는 이곳은 온천수가 용출하는 곳이다.

원천은 3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으며, 화산의 분화 활동으로 생성된 화구호인 굿타라호수이다. 차세대에 계승하고자 지정한 홋카이도 유산에 선정된 사랑받는 명소이다.



노보리베츠 지고쿠다니 안내판

 

온천 거리를 따라서 15분 정도 올라가면 노보리베츠 지옥계곡에 도착한다. 옛날 이곳에 살던 사람들이 지옥이 있다면 이런 곳일 것이라고 생각해 지옥계곡이라 이름 붙였다. 지옥계곡은 90도에 달하는 뜨거운 온천수가 노천에서 흐르고 있다. 활화산으로 인한 지열과 천연 성분이 골고루 섞인 10,000여 톤의 물이  매일 이곳에서 마을의 온천탕으로 흘러 들어간다.


전망대에서 텟센이케까지 산책로를 걷다 보면, 계단 아래 보라색 휘장을 두른 작은 법당을 만나게 된다. 아래  솟아 나오는 온천수로 눈을 씻은 사람의 눈병이 았다는 전설이 있다. 법당 안에는 치료 답례로 기부한 비석이 세워져 있다. 사람들은 약사여래석상 앞에 건강을 기원하며 물과 음료 등을 올려놓고 있다. 



지옥계곡 산책로
지옥계곡 텟센이케

 

데크 산책로 따라 쭉 들어가면 지옥계곡 중앙쯤에 텟센이케를 볼 수 있다. 철이 샘솟는 작은 연못의 의미를 가진 텟센이케는 약 80도 정도로 뜨겁기 때문에 위험하여 나무 벽을 둘러놓았다. 간헐 용천하는 샘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것만도 좋았다. 온천 빛깔도 하늘을 담고 있어서 더욱 예쁘게 보였다.


산책로 아래로 흐르는 작은 강을  산즈노카와라고 하는데 죽은 사람이 저승에 갈 때 건넌다는 강이라는 뜻이다. 이곳의 강을 건너면 장수한다고 하여 사람들이 많이 찾아온다. 곳곳에 뿜어 나오는 연기 사이로 흐르는 작은 강의 주변 토양은 초록과 크림화이트 등 여러 빛깔이다. 다양한 광물자원을 보여주는 이곳을 온천의 백화점이라 부르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제2전망대에서 바라본 지옥계곡


제2전망대를 오르다 바라본 지옥계곡은 이곳의 화산이 살아있음을 실감 나게 해 주었다.  조릿대  숲 사이 언덕을 오르며 오유누마 화산 분화구로 향했다.

산책로 주변 노보리베츠 원시림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될 정도로 자연 보호되어 있다. 고산 식물 등 약 60종류의 수목과 약 110종류의 초목을 관찰할 수 있고, 사슴이나 딱따구리 등을 만날 수도 있다. 오유누마에 도착할 때까지 관련 퀴즈 간판에는 총 7문항의 문제가 있어 흥미를 더해주었다.



오유누마호와 산책로


 약 20분 정도 걸으면 '오쿠노유'와 '오유누마'가 보인다. 다이쇼시대 작은 폭발로 생긴 유누마, 뜨거운 물의  늪이 나온다. 둘레 약 1km의 바가지 모형의 유누마이다. 하얀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가는 광경이 신비한 느낌을 주었다. 계절과 날씨 조건에 따라 물 색깔이 회색이나, 녹색으로 바뀐다.  신비한 자연의 힘이다.

130℃ 정도의 유황 샘이 용출된다고 하는데, 겉 보기에는 뜨거워 보이지 않았다. 여기서 오유누마 강이 시작되어 숲 사이를 흐른다.



오유누마강 천연족탕


보도 옆을 흐르는 오유누마강은 하얗고 혼탁한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아이누어로 노보르베츠는 하늘색의 짙은 강이라는 뜻이 있는데 노보리베츠 지명의 어원이 되었다고 한다.  

강 줄기 따라 내려가면 천연 족탕이 있다. 강에서 흘러나온 물이 한 곳에 모여들어 족탕 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나무로 된 바닥에 앉을 때 엉덩이가 젖지 않도록 하는 얇은 매트가 있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사람이 거의 없어 한산하게 혼자 족욕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명당이다.  


곰 목장에서 바라본 굿타라호수


  굿다라코는 오유누마 산책로에서 3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여 걸어서 40분 정도 소요된다.

이곳은 약 4만 년 전, 화산의 정상부가 함몰되어 만들어진 칼데라호. 씨코스토야 국립공원 내부에 자리 잡고 있으며, 주위 약 8km, 직경 약 3km의 원형 호수이다. 들어오는 물도 흘러나가는 강도 없는 담수호로 수심 20m 정도까지 육안으로 볼 수 있을 정도라 한다. 지금은 사람이 거의 없어 한산하지만 5월에서 7월까지는 관광객이 제법 온다고 한다.  곰목장에서 바라보던 그 호수, 굿다라코! 둥근 쟁반처럼 수면이 맑고 잔잔했다.


다시 버스를 타기 위해 마을로 돌아오는 길에, 다이이치 타미모토칸 온천탕에 들렀다. 당일 온천은 지옥계곡 쪽 도로 옆문으로 들어가지만 로비에서도 가능하다. '대욕탕 푸르'라고 적인 곳을 따라 들어가면  카운터, 2,250엔을 지불하고 엘리베이터로 올라가면 온천탕이다. 마을 입구 대중탕 6,000원과 비교하면 비싼 곳이다. 반면 지옥계곡이 보이는 목욕탕은 규모가 크고 시설도 아주 좋았다. 여러 종류의 온천탕과 노천탕도 다. 온천수는 생각보다 뜨겁지 않았으나 밖을 보며 즐기는 온천의 여운은 지금도 남아있다. 온천의 수질은 자연적인 느낌이 있어 좋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