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면과 문인의 고장 모리오카
뉴욕타임스 선정(2023), 방문해야 할 도시 1위 런던, 2위는 일본의 모리오카이다. 센다이와 아오모리, 아키타현을 연결하는 도호쿠 신칸센 십자로에 자리한 모리오카는 이와테현청 소재지로 인구는 30만 명 정도이다. 노란색의 경쾌한 이름을 달고 있는 모리오카역 맞은편 푠푠사 건물 뒤에 자리한 R&B 호텔에 짐을 풀고,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역사에서부터 작은 용기에 계속 담아주는 메밀 완코소바, 까만색의 쟈쟈면과 깍두기 국물이 들어간 냉면 그림들이 가득한 것으로 보아 시그니쳐 메뉴이다. 푠푠사 식당 앞 도로에 까지 사람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어, 냉면의 인기를 실감하였다.
우리처럼 메밀로 반죽하지 않고 전분과 밀가루를 이용하여 식감이 쫄깃쫄깃한 쫄면에 가깝다. 굵고 흰 면발에 사골 육수를 붓고 얇게 썬 깍두기를 얹은 것도 색다르다. 연한 붉은색으로 물들며, 칼칼한 국물이 나름 괜찮았고, 면발은 감칠맛이 있었다. 고추장을 덜어낸 쫄면에 깍두기와 육수를 부어 먹는 느낌이었다.
1954년 재일교포 양용철 씨가 모리오카에 ‘식도원’을 열어 냉면에 깍두기를 듬뿍 넣어 출시하였으나 차가운 국물과 질긴 면발, 매운맛 등으로 일본인들에게 외면당했다. 이후 고집스럽게 노력한 끝에 지금의 모리오카 냉면이 유명해지면서 삼천리, 명월관, 푠푠사 등 냉면 전문점 현재 30여 곳이 넘고, 메뉴에 냉면이 있는 음식점만도 300여 곳이라고 한다. 그의 집념과 노력이 한 도시를 변화시킨 결과에 감동하면서 문화 전파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그곳의 삶에 녹아들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냉면에서 배운 셈이다.
모리오카는 머리 하얀 이와테산이 북서쪽을 둘러싸고, 이와테의 어머니라 불리는 기타카미강 외 2개 강의 합류 지점에 위치하여 산고수청의 경관이 뛰어나다. 어느 날 이 멋진 풍경 사진에 매료된 적이 있어 감성이 담긴 풍광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일찍 나섰다. 100미터쯤 걸어 기타가미강 아사히브리지에 도착했다. 첩첩이 싸인 사진 속 풍경이 그곳에 있었다. 다만, 계절이 달라 강물의 색이 다소 탁해진 정도가 달랐다.
약 1.1km 걷다 보니 모리오카 유적 공원에 도착, 성축을 따라 오르니 시가지의 모습이 차분하고 안정적이다. 모리오카성은 가마쿠라 막부 이후부터 번성한 난부 가문에서 1598년 완성했으며, 이후 난부 토시오카는 백작에 봉해지기도 했다. 천수각 등의 주요 건물들은 메이지 유신 이후 폐성령으로 철거되었다. 2차 대전 중 금속이 모자라 전국의 동상을 철거하여 무기를 만들 때 난부 토시오 동상도 철거당했다. 동상의 기단석이나 성축, 성을 둘러싼 해자와 붉은 다리, 풍광 좋은 연못의 흔적으로 보아 꽤 번영하였음이 짐작된다.
이곳에 조성된 공원은 일본 100대 도시공원으로 꼽힐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며, 공원 안에는 니토베 이나조, 이시카와 타쿠보쿠 등 이와테현과 인연이 깊은 문인들의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26세 짧은 생을 마감한 이시카와 타쿠보쿠는 일상의 슬픔과 희망, 고통을 소박한 언어로 노래했고, 지도에서 지워지는 조선을 안타깝게 여기는 단카를 남겼다. 토속적인 사투리로 민중의 삶을 노래한 시인 백기행은 그의 시를 좋아하여 이시(石)를 필명으로 삼아 백석(白石)으로 활동했다. 냉혹한 일본 정부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자신의 속죄를 담아 안중근 의사의 심정을 공감하는 ‘코코아 한잔’이라는 시는 공감과 위로를 전해준다.
"나는 안다/ 테러리스트의 슬픈 마음을/ 말과 행동으로 나누기 어려운/ 단 하나의 그 마음을/ 빼앗긴 말 대신에/ 행동으로 말하려는 심정을/ 자신의 몸과 마음을 적에게 내던지는 심정을/ 그것은 성실하고 열심인 사람이 늘 갖는 슬픔인 것을”
성터 아래 사쿠라야마 신사 앞 도로는 이곳에 자자면을 알린 파이론 본점을 비롯 냉면 식당과 토리들이 줄지어 서 있다. 신사는 아기자기하게 구성되어 있다. 둥근 짚을 세워놓고 그 앞에서 빙글빙글 돌다 통과하면 액을 막는다고 한다. 뒤쪽 계단을 오르면 만나는 에보시 바위 역시 무병과 건강, 금전을 기원하며 기도드리는 곳이다.
이와테 은행 붉은 벽돌관은 1911년 다쓰노 긴고가 설계하여 지은 모리오카 은행 본점 건물로 중요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도쿄역을 설계한 그가 3년 전에 만들었다는 모리오카의 랜드마크이다. 붉은 건물이 아름답고 천장이 높아 서양식 건축을 보여주지만, 서울역 문화공간을 만난 것처럼 익숙한 느낌이다. 유료 입장 구역에는 응접실과 은행이 영업을 시작한 이래로 사용된 금고와 이와테 현의 금융 역사 소개 및 영상 소개 코너 외 무료 관람 공간이 있다. 당시 라이벌이었던 제99은행은 건축의 가치를 인정받아 중요문화재로 지정, 이와테현의 다쿠보쿠․겐지 청춘관으로 변신하여 그들의 작품을 주제로 전시하고 있다.
중심지 순환 텐텐무시버스를 타고 역으로 돌아와 이와테 현립 미술관으로 향했다. 구름을 담고 흐르는 시즈쿠이시강을 지나, 모리오카시 중앙공원에 위치한 이와테 현립 미술관에 도착하니, 입구에 둥근기둥이 줄지어 서 있다. 내부 천장의 둥근 조명과 사각기둥의 벽면이 장대하게 이어진 그랜드 갤러리가 시선을 사로잡고, 이와테 산을 향해 열린 공간이 인상적이다. 미술관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풍족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지역 출신 작가의 상설 전시 및 국내외의 다양한 테마 기획전이 개최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