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올해 1월에 ‘낫 아워스(NOT OURS)’라는 브랜드의 티셔츠를 구매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원한 빨간색에 영문자 NOTOURS가 전면에 새겨진 멋진 옷이었다. 이 티를 처음 입고 회사에 갔는데 사람들이 글자를 유심히 보더니 ‘NO TOURS’라고 쓰여있는 게 맞냐고 물었다. 띄어쓰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마침 우리 회사가 텍스트를 분석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때문에 나는 “토크나이징(tokenizing)*을 잘못하면 이렇게 된다”고 드립을 쳤고, 사람들은 “여행도 안 가고 업무에 매진하겠다는 다짐 아니냐”고 낄낄거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이 농담이 뜻밖의 현실이 되었음을 깨달았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뒤덮으면서 정말로 여행 없는 시절을 보내는 중이다. [주* 토크나이징 : 컴퓨터가 자연어(일반적인 텍스트)를 분석할 때 형태소나 단어 등 의미 단위로 분리해내는 단계. 영어는 주로 띄어쓰기 단위로, 한국어는 형태소 단위로 분석한다. 예시 - 빈곤했던 여름이 지나고 => 빈곤/하/었/던/여름/이/지나/고 (자세히 알아보기)]
나에게도 원래 그럴듯한 계획이 있었다. 작년에 회사 워크숍으로 세부에 다녀온 뒤 영국의 바다가 궁금해져서 8월 말에서 9월 초 사이에 영국을 가려고 했다. 아직 여름이지만 여행 성수기를 조금 지나서 널널하고, 프리미어리그가 개막한 상태이므로 축구도 보겠다는 계산이었다. 2주 정도 다녀올 요량으로 회사와도 어느 정도 얘기를 마쳤고, 4년 전 유럽 여행 후 블로그에 올린 여행기와 정리 노트도 열어보았다. 그동안 모아둔 영국에 대한 책을 틈틈이 읽으면서 가고 싶은 장소를 물색했다. 다소 오만한 꿈이기는 하지만 언젠가 나도 런던에 관한 책을 쓰고픈 마음도 품었다. 일단은 이번 여행을 통해 연습 삼아 글을 써보고, 조금 더 글쓰기를 연마한 뒤에 한 번 더 다녀와서 책을 써보자는 다짐도 했다.
하지만 결국 이번 8월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8월에 가기 위해서는 지금쯤은 비행기 티켓을 끊고 각종 준비를 시작해야 하는데 그럴 수도 없는 상황이다. 설사 영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이 코로나 진압을 생각보다 빠르게 이뤄낸다 해도 입국 및 국내 귀국 시 2주 자가격리는 한동안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물론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거나 생활에 커다란 타격을 입었는데 내가 고작 여행을 못가는 상황을 원망하지는 않는다. 그저 잠잠히 기도하며 나의 이웃을 돌아볼 뿐이다.
<2> 내가 언제부터 영국을 좋아했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청소년기에 형성된 몇 가지 덕질 테마가 영국과 관련이 깊다. 초등학생 때 교실에 방문한 도서외판원에게서 산 <오리엔트 특급 살인>을 읽고 재미를 느낀 나는 중학교에 입학해서 도서관에 있는 애거서 크리스티 시리즈를 탐독했고, 비교적 자연스럽게 셜록 홈즈도 접했다. 2002년 월드컵이 열린 중학교 마지막 학년에 뒤늦게 해리 포터 시리즈를 만났고, 같은 시기에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를 보기 시작하면서 아스날의 팬이 되었다. 음악만큼은 힙합을 고수했지만, 고등학교 때 친구의 영향을 받아 비틀즈 노래도 좋아하게 되었다.
이처럼 흩어졌던 단서들을 모아 하나의 몽타주를 완성하게 된 사건은 고등학생 말엽에 읽은 <영국, 바꾸지 않아도 행복한 나라>라는 책이다. 이때를 기점으로 스스로 ‘영국 덕후’로 정체화를 했다고 자평한다. 이를 발판삼아 성인이 된 뒤에 더욱 다양한 하위 영역으로 덕질 경계를 넓혀가게 되었다.
영국을 좋아하면서 가장 괴로운 부분은 여행을 자주 갈 수 없다는 점이다. 한번 다녀오는데 상당한 돈과 시간이 소모되기 때문에 함부로 마음먹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일본 덕후들이 참 부러웠다. 한일관계가 얼어붙기 전만 해도 주말과 연차 약간을 덧붙여 심지어 비행기가 아닌 배를 타고 일본을 너끈히 다녀오곤 했으니 말이다. 그에 비하면 나는 대망의 첫 영국 여행을 27살인 2013년 4월에야 갔고, 그로부터 2년 8개월이 지나고 나서 두 번째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이후 너무 바쁘게 사느라 세 번째 비행기를 아직 타지 못했다.
<3> 2017년에 우연한 기회로 알게 된 ‘스토리지북앤필름’은 생각보다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마치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 ‘리키 콜드런’이라는 펍을 통해 마법 세계의 번화가인 ‘다이애건 앨리(Diagon Alley)’로 진입하듯이, 이 해방촌 비스듬한(Diagonally) 언덕 위에 위치한 책방이 나에게 출판과 서점의 인디씬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되었다. 구석구석 서점을 찾아다니면서 예전에는 시답잖게 여겼던 에세이를 사고 읽는 새로운 덕질을 하고, 급기야 에세이 스탠드에 이어 드라이브까지 하게 되었으니 놀라운 일이다.
이곳에서 처음 산 책은 <안녕 엄마, 안녕 유럽>이라는 여행 에세이였다. 이 책은 단순한 여행 후기가 아닌, 어머니를 암으로 떠나보낸 저자의 컨텍스트 위에 여행의 경험이 올려진 가슴 시린 에세이였다. 이 책을 읽다 보니 나의 지난 유럽 여행이 떠올랐다. 20대를 마무리하며 갔던 여행이기에 온갖 사색에 잠겼다 풀어헤쳐 기록하느라 늦게 자곤 했고, 같이 갔던 동생은 나를 보며 “여행을 와서도 새벽에 주무시네요” 하며 놀라워하지 않았던가. 그러고 보면 여행지는 같아도 사람마다 길어 올린 감각과 사고가 제각각일 텐데, 나와 같은 곳을 방문했던 다른 여행자들은 어떤 방식으로 그곳을 향유했는지 들여다보는 행위가 갖는 매력을 뒤늦게서야 알게 되었다.
여행책은 여행지를 더욱 입체적으로 만들어준다. 어떤 도시를 여행하는 나의 경험과 생각이 축(axis) 하나를 형성한다면, 한 차례 여행으로는 그 도시를 단지 1차원의 시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만약 그 장소가 너무 멀다면 향후 차원을 확장할 기회도 제한된다. 그러나 다행히도 여행책을 통해 다른 사람의 시점을 빌려 새로운 축을 얹을 수 있다. 나와는 다른 이유로 그 장소를 선택한 사람들, 나와는 다른 음식을 먹은 사람들, 나와는 다른 방면에서 의미를 찾은 사람들, 나와는 다른 관점에서 생각을 전개한 사람들. 말하자면 대리 여행인 것이다.
평소 여행책 읽기를 취미로 갖지 않은 사람이라면 여행책은 여행을 준비하기 위해 읽는다고 여기기 쉽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곳으로 여행을 다녀와 본 사람만이, 따라서 이미 자신만의 축을 보유한 사람만이 여행책을 온전하게 읽어낼 수 있다. 그리고 같은 장소를 다시 한번 여행하기로 결정한 나 같은 사람의 향후 여정을 풍성하게 만든다. 때론 빨리 다음 여행을 가고 싶어서 안달하는 마음에 일상에서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현재 받는 고난은 장차 다가올 그 날의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에 담담하게 읽는다. 이 즐거움이 내가 여행책을 사랑하는 이유이다.
2020년, 이제는 여행책들이 나의 서재에서 당당히 좋은 터를 몇 칸씩 확보하고 있다. 한 달에 하루는 오로지 영국이나 런던에 대한 책만 읽는 ‘브리티시 데이’로 지정해 전례처럼 지킨다. 누군가 여행 중에 남긴 경험과 사색을 읽을 뿐 아니라 여행책 쓰는 스타일을 연구하기도 한다. 주기적으로 가는 여행책방도 생겼고, 사장님도 나를 알아보시는데 얼마 전에 방문했을 때 내가 계산할 책을 보시더니 “또 런던 책이네요!”라고 말씀해주셨다.
이제 한동안 새로운 여행책을 만나보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이 난국을 끝내 이기고 나면, 그간 움츠려있던 여행가들이 다시 만난 세계에서 기쁘게 평화의 인사를 나누고, 다녀와서 새롭고 신선한 이야기를 활자로 펼치기를 소망한다. 그때 역시 나는 기꺼이 그들에게 대리비를 지급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