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가면 또 다른 세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정의내리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 공간을 ‘가상공간(Cyber Space)’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공간은 가상이었을지언정 그곳에서 만나는 이들이 가상인 것은 아니었다.
기존의 방식과 선명히 구분되는 어떤 새로운 방식이 나타날 때,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며 논란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새로운 방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동시에 기존의 방식이 지닌 안정감을 해칠까 두려워 거리를 두는 사람들도 있다. 허나 우려하는 사례들이 기삿거리가 되어 포화가 집중되는 동안, 새로운 방식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그 기대를 한껏 자신의 생활 양식으로 만들어간다. 종국에는 두 가지 방식의 경계가 시나브로 사라지고 기대도 우려도 무의미해진다.
사이버 스페이스, 가상공간의 등장도 그랬다. 지금이야 굳이 인터넷에 ‘가상’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이 촌스러워졌고 오프라인과 온라인 인맥의 구분이 무의미해질 정도로 융합되었지만ㅡ물론 트위터는 제외한다(?)ㅡ, 그 예전 PC통신이나 인터넷이라는 가상공간을 통해 얼굴 없는 누군가와 대화하고 친구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은 분명 눈부시게 새로웠다. 새로움의 크기만큼 우려도 회자하고 리스크도 존재했지만, 이것은 막을 수 없는 시대정신이었고 사람이 관계 맺는 방식의 근본적인 혁명이었다.
크고 작은 단위의 지역으로 생활권이 형성된 유년 시절, 나의 친구들은 물리적으로 발 디딜 수 있는 곳에 국한되었다. 대개 동네 친구들, 학원 친구들, 교회 친구들, 학교 친구들ㅡ당연하지만 이들은 상당수 겹친다ㅡ이었고, 예외는 부모님 친구의 자녀들 정도였다. 아무리 친한 친구여도 멀리 이사하면 관계도 급격히 멀어져야 했다. (지금 기준으로는 너무도 가까운 거리여도 당시 내겐 서울-부산만큼이나 멀리 느껴졌다. 일례로 나는 부천에 살았음에도 고작 인근 개봉으로 이사한 친한 친구와 멀어졌다. 그 친구가 사는 곳이 실은 그다지 멀지 않은 도로상의 거리였다는 진실을 더 일찍 알지 못해 한스러울 정도로 훗날 그 친구와의 우정이 그리웠다. 지금 다시 만나도 그때와 같은 관계는 될 수 없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더욱.)
정보도 제한적이고 이동도 제한적이었기에 가까이 사는 친구들과 서로 비슷비슷한 것을 즐기게 된다. 운동을 좋아하는 친구들, 게임을 좋아하는 친구들,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들, 책을 좋아하는 친구들처럼 처음에는 큰 카테고리로 그룹이 형성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고학년이 되어갈수록 즐기는 방식이 세분된다.
월드컵을 기점으로 해외 축구 선수들을 알게 되었지만 정보를 얻을 길이 없어 FIFA 게임과 그 속에 구현된 팀과 선수에 관해서 얘기하는 친구들, 비단 게임을 좋아할 뿐 아니라 게임 잡지를 통해 더 깊이 게임계를 알아가려는 욕심을 가진 친구들, 무언가 있어 보이는 가사의 장르 음악을 권유하거나 외국 노래에 일찍 눈을 뜬 친구들, 판타지 소설을 좋아하는 친구들 등 취향이 생기는 계기도 모양도 다양하다.
하지만 제한된 인간관계에서는 나와 같은 취향을 향유하는 사람들을 만나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정말 우연히 비슷한 취향을 가진 친구가 같은 반에 배정되어 나타나는 행운은 흔치 않았다. 점심시간이 되면 아랫반에 놀러 가서 수다를 떨고, 어떨 땐 아예 가까운 친구를 (요즘 말로 치면) ‘입덕’시키기도 했다. 남들과는 다르다는 다소 헛된 자부심을 지녀보기도 하고, 좀 더 심하면 깨어있고 앞선 문화를 즐긴다는 선민의식을 휘두르기도 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덕질은 외로운 일이었다. 친구들이 나를 독특한 인간으로 인식하고 호기심을 가졌으니 나았지만, 더 나쁜 케이스의 경우 어떤 이들은 취향이 독특하다는 이유로 배척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가면 또 다른 세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가상공간. 아니지. ‘가상에 비유되었던’ 그 공간은 나에게 덕질을 해나갈 용기를 주는 현실이었다. 마치 여중생A의 주인공 미래처럼. 때는 정확히 2000년이었다.
2000년은 때마침 나와 비슷한 또래의 가수 보아(BoA)가 데뷔한 해이다. 사실 나는 보아를 잘 모른다. 그러나 그의 데뷔곡인 <ID; Peace B>는 나에게 특별한 노래다. 내가 지난 20년간 몸담아왔고, 한편으론 꿈꿔왔던 그런 공간에 관한 이상을 담아냈기 때문이다. 어른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그곳에 열광하고 이끌리는지, 그 세상이 우리에게 가져다 줄 가치는 무엇인지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확실히 보아는 이 새로운 시대정신을 선포하기에 누구보다 적합한 뉴밀레니엄의 스타였다.
보아가 노래에서 얘기하듯이, 그곳에는 나와 같은 것을 좋아하고 같은 꿈을 꾸는 친구들이 있었다. 게시판 너머로, 제로보드의 정겨운 쪽지 음성 너머로, 세이클럽 채팅창 너머로, 설렘 가득한 메신저 너머로, 얼굴이 없어도 그 많은 얘기를 또각거렸다. 서로가 공통으로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그동안 들어줄 사람이 적어서 자주 하지 못했던 얘기들을 말이다. 자의식 과잉에 어디로 튈지 모르는 중학생이라 부드럽고 매너 좋은 말을 구사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만 나의 호기심은 진심이었고 열정적이었다.
나는 계속해서 공간의 벽을 허물어왔고 갈 수 없던 곳에 실재하는 또 다른 ‘우리’를 찾아냈다. 처음에는 덕질로 가까워졌지만 이내 ‘우리’들은 삶의 조각을 꼬깃꼬깃 꺼내기 시작했다. 그 조각은 서로를 가리운 비좁은 시야를 열어 손을 잡고 연대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우주를 그냥 흘려보내기엔 너무 아쉬워 대화하며 다른 삶을 배워갔다. 남중생K일 때부터 어느덧 직장인K가 되기까지 지난 20년을 그렇게 살아왔다. 언제나 나의 ID는 세인트였다.
물론 노랫말 속 이상처럼 평화롭기만 한 세계는 아니었다. 그래도 거기엔 NPC가 아닌 인간이 있었다. 그곳에서 아바타가 아닌 하나의 인격체를 만났다. 그곳에서 웃고 떠들고 토론하고 기뻐하고 슬퍼하고 싸웠다. 그리고 사랑했다.
ps. 이 글을 쓰면서 마음 한 켠이 무거운 이유는, 이 노래를 불렀던 보아가 아이러니하게도 인터넷에서 가장 많은 악성루머와 악플에 시달린 연예인 중 하나라는 점이겠지요. 내일의 우리는 어제의 우리보다 좀 더 성숙해졌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