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 문화를 전한 사명자들 (2)
“이렇게 하고 싶어 Hip!
정말 이것을 원해 Hop!
이게 지금 이 순간엔 나에게 가장 중요해
될만해도 안되는 일 안될만한데 잘 되는 일
이게 바로 세상인가 나는 아직 모르겠어
다만 나는 지금 자유로워지고 싶어”
“인기나 팬을 의식하지 않고 원하는 것을 하면서 지낸다. 이런 자유스러움이 힙합의 장점이다. 아직도 힙합을 불량스러운 음악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건 사실과 다르다. 힙합은 예술, 더 나아가 문화의 한 형태로 이해해야 한다.”
“대략 9년전 힙합은 자유라 외쳤던 많은 매스미디어
그 덕분에 나를 비롯한 많은 예비 랩퍼들이 나타났고
반정도가 살아남아있지”
The Quiett Feat. Absotyle & E-Sens ‘성장통’ (E Sens’ verse, 2008)
‘자유’라는 단어의 역사와 용례를 이 글에서 다루기엔 나의 지식이 빈약하지만, 우리는 이 단어가 보통내기가 아님을 안다. 역사 속에서 사람들이 각자의 입장을 갖고 이 단어를 쟁취하거나 수호하기 위해 흘려진 피와 땀에 대해서 배웠을 뿐만 아니라 일부 경험했다. 자유는 비단 정치적 차원이 아니라 경제, 종교, 예술 등 굵직한 분야에서 중요한 담론으로 자리하고 있으며, 이를 논하는 작업은 철학적으로 만만한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힙합의 역사를 되짚으면서 자유라는 키워드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초창기 우리나라 힙합 뮤지션들이 강조하던 “삶의 방식”의 중요한 모토 역시 자유였다. 이에 대해서, 본토 흑인들이 인종 차별과 가난에 대한 저항 정신을 힙합에 담아냈기 때문에 자유가 힙합의 주요 아이덴티티로 자리 잡았다는 견해는 어느 정도 사실이다. 다만, 어떤 새로운 음악 장르나 새로운 예술 방식이 자유로운 표현과 저항의 도구로 쓰이는 일은 자주 있으므로 힙합만의 특징은 아니다. 문화가 싹트는 현장(컨텍스트)이 어디냐에 따라서 억압과 부자유의 정의가 달라지며, 갈망하는 자유도 달라진다. 본토의 경우, 흑인들의 현실과 힙합 문화가 만나 상호작용하며 발전하는 과정에서 힙합 고유의 방식으로 자유를 표방하고 저항 정신을 표현하는 데까지 나아간 것이다.
초창기 한국 힙합이 품은 자유가 무엇인지는 힙합을 수용한 세대와 시대를 보면 알 수 있다. 군사정권이 막을 내리고, 세계화를 외치고, 개발도상국에서 벗어나 선진국에 진입하기 일보 직전이었던 90년대, 세상은 그 시대의 젊은이들을 ‘신인류’라고 불렀다. 지금의 젊은이들을 ‘Z세대’ 또는 ‘밀레니얼 세대’라고 칭하는 그 구분법에 따르면 이들은 ‘X세대’였다. X세대의 가장 큰 특징은 개인의 개성을 과감하게 표현하는 것이었고, 한국에 갓 들어온 힙합은 이와 결합해 자신만의 라이프 스타일을 자유로이 드러내는 도구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이들이 주로 저항한 대상은 권위주의, 전체주의, 그리고 획일적 사고방식이었다. 물론 X세대 문화에서 힙합 음악은 주류가 아니다. 힙합의 요소들을 이제 막 수용하며 접목하는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힙합의 선구자(0세대) 역할을 하던 이들이 힙합 패션, 댄스, 랩 등으로 그 당시 나름의 ‘저세상 텐션’을 보여주며 가요씬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지난 글에서 언급한 현진영, 듀스가 대표적이고 이후 DJ DOC가 큰 역할을 담당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들보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영향력이 수십 배 컸지만 말이다.)
장르상 힙합은 아니지만 지금 소개하는 노래가 가사, 사운드, 무대 등 모든 부분에서 90년대를 맛깔나게 드러낸 곡이 아닐까 감히 생각한다. 훗날 ‘90년대 르네상스’라고 회자할 정도로 가요계가 황금기를 누렸던 시기인 만큼 수많은 명곡이 남았지만, 적어도 힙합의 선구자 계보에 속한 뮤지션들의 곡 중에서는 이 곡만큼 X세대의 자유로운 사고와 개성을 잘 담아낸 곡을 찾기란 어렵다.
“사람들 눈 의식하지 말아요
즐기면서 살아갈 수 있어요
내 개성에 사는 이 세상이에요
자신을 만들어 봐요”
90년대 중후반에 엄격한 의미의 힙합 음악씬이 태동하면서 이러한 정신은 강화되었다. 당시 언더그라운드는 소위 ‘The Golden Era’라고 불리는 90년대 뉴욕 힙합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음악과 가사의 측면에서는 다소 무거운 스타일이 유행했지만, 그 스타일이 무겁든 가볍든 상관 없이 랩 가사를 통해 자신만의 개성과 생각을 자유롭고 독창적으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힙합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이 생겨났다. 컨셔스랩이라고 부를 정도는 아니었지만, 나름의 문화적 저항이었다.
* 90년대 힙합 문화의 공기를 완벽하게 알 수 있는 다큐멘터리이다. 이 영상 하나만 보면 다른 설명이 필요 없다. 젊은 MC메타가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이상하리만치 여기저기 외부에서 끊임없이 계속되는
획일적인 삶의 지침을 강요하는 무리여
그리 무리하지말길
이미 우린 rhyme에 나의 魂(혼)을 담고
알 수 없는 flow를 마구 밟고서
내 microphone을 통해서 표현하는 나만의 사상”
이처럼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문화를 자유라고 정의한 후, 이를 제대로 표현하는 MC의 능력이나 품성을 일컫는 말로 부각된 단어 중 하나가 바로 ‘진실’이다. 이들은 “힙합은 자유”라는 말을 가사에 넣거나 논할 필요가 없었다. 이미 자유는 전제로 깔려있다고 봤기 때문에, 자유보다 가사에 더 많이 등장한 단어가 진실이었다. 여기서 파생된 논쟁들이 바로 ‘진짜 힙합’이니 ‘리얼(Real) MC’니 하는 초기 힙합의 중요한 떡밥이다. 이러한 MC와 랩 가사의 ‘진실성’ 논쟁에 대해서는 추후에 본격적으로 다룰 예정이다.
자유롭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었다. 자유가 돈을 가져다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1세대 언더그라운드 뮤지션 중 일부는 메인스트림으로 진로를 변경했지만, 대부분은 미래가 불투명한 힙합에 인생을 걸 수 없었다. 이런 현실과 클럽 마스터플랜 폐쇄, Modern Rhymes 혁명 등이 맞물려 2002~3년을 기점으로 1세대 뮤지션들은 서서히 퇴장했고, 언더그라운드 힙합씬은 세대가 바뀌었다. 팔로알토와 더 콰이엇도 이 시점에 씬에 이름을 올렸다. 물론 여전히 언더그라운드 힙합을 지속가능한 본업으로 삼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고, 이런 우울한 현실은 감성 힙합이라는 새로운 물결을 맞아 인기 가사 소재가 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숱한 뮤지션들이 청춘을 불사르면서 낙오하지 않고 버텨나갈 근거도 바로 자유에서 나왔다. 신경끄고 ‘나만의’ 가사를 쓰는 것, 이 길을 계속 걷는 게 ‘자신다운’ 삶이라는 것. 이런 가사는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만의 꿈을 꾸며 살아가던 동시대 청춘 리스너들에게 공감을 불러 일으키고 큰 힘이 되었지만, 무엇보다 뮤지션들 스스로도 필요했다. 그런 메시지를 자신에게 계속 던지지 않고서는 음악을 지속할 수 없는 보릿고개였기 때문이다.
“감각적이지 못한 유행에 발맞춰 가다보면
본래의 네 모습마져 망가져
너만의 향기를 잃어가게 돼”
Paloalto - ‘It Ain't No Eazy Pt.2’ (2004) *전설적인 앨범인 "발자국 EP"에 실려있다
“가사를 쓰면서 내 분노를 다 죽였어
배고프고 추웠던 기억을 잊을순 없어”
“난 더 위대하고 아름다운걸 선택해
남들이 다 원하는건 재미없어, 손 뗄게”
개화산 - ‘감동의 무대’ (Paloalto’s verse, 2005)
“난 남다른 삶을 원하진 않았지만,
남과 같은 삶은 더더욱 원하지 않아”
The Quiett Feat. Paloalto - ‘상자 속 젊음’ (2005)
“자신답게 산다는 게 그리도 두려운가
난 내가 개척해 나갈 나의 운명을 봐”
The Quiett - ‘한번 뿐인 인생’ (2007)
이들이 언더그라운드를 넘어 한국 음악의 슈퍼스타가 된 지금 돌아보면 감회가 남다른 노래들이다. 실은 아직 그 시절 노래들을 그리워하는 사람들도 많다. 뮤지션과 리스너들이 함께 꿈과 현실에 대해서 고민했던 그런 노래들 말이다. 이런 역경을 담은 가사들에 대해서도 언젠가 다룰 예정이다.
언더그라운드 씬이 형성되던 시기, 메인스트림에서 개성과 자유라는 기치를 들고 등장한 뮤지션으로 원타임(1TYM)이 있었다. 빅뱅의 시초격인 원타임은 최초로 등장한, 더불어 최초로 성공한 힙합 아이돌이다. 자신들을 노래로 직접 소개하는 트랙인 ‘1TYM’을 타이틀곡으로 선정한 것도 상당히 힙합 음악적인 시도였다. 팀 이름과 노래 제목이 같으니 대중들이 다소 의아했을지도 모르겠다. 무려 4인조이다 보니 verse의 구성이 난해해서 현재 우리에게 익숙한 힙합 음악과는 거리감이 느껴지지만, 그래도 그간 메인스트림에서 힙합 그룹으로 불렸던 팀들의 데뷔곡 중에서는 가장 힙합스러운 곡이었다. 또한 그 밖의 메인스트림 뮤지션들의 가사들도 함께 소개한다.
“우리 HIP-HOP 속에 감춰진 자유, 그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걸”
“랩을 하고 싶으면 하고, 춤을 추고 싶으면 추고,
노래 부르고 싶으면 부르고, 그게 우리가 말하는 자유고”
“남이 했던건 안해 뭐든지 간에”
“고지식한 구세대들의 충고
주위 사람들의 이상한 시선
이젠 관심조차 없어
그냥 지금 이대로의 freestyle이 좋아
지금은 자기 개성시대
말투도 옷차림도 내가 편한대로 하면 그만이야”
Freestyle - ‘Free Style’ (1999) *1집 앨범의 첫 트랙이다.
“내맘대로 살고 싶어
더는 뭐가 무언지 맞게 생각했는지
자유롭게 날고 싶어
나름대로 이젠 알수 있어”
“사슬에 묶여 함께 끌려가는 인생들
아무리 외쳐봐도 듣지않는 그이들
자신의 노예 속박에서 뛰어나와서
차가워진 마음 녹여 모두다”
Drunken Tiger - ‘위대한 탄생’ (2000)
“난 내 스타일로 말하고 난 내 스타일로 웃고
난 내 스타일로 먹고 난 내 스타일로 걷지”
조PD Feat. DJ Uzi, DM, Wassup - ‘My Sylte’ (2001) *이 곡의 보컬이자 프로듀서인 Wassup이 바로 지금의 Ra.D이다.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느껴볼 수 없는
이 작은 마이크 속에 내 자유
피곤한 삶의 사슬로 묶어 날 가둔 두터운 철창 너머로
떠나는 내 소리의 행로
내가 만들어가는 그 자유로 속으로 달려가”
Leessang Feat. Double K - ‘작은 Mic 속의 내 자유’ (2002) *컴필레이션 앨범인 "힙합 카리스마"에 실려있다.
언더그라운드 씬이 대중적 인기를 덜 고려하며 다양한 힙합을 구현하는 장소였다면, 메인스트림 뮤지션들은 본인의 의사와 관계 없이 힙합 문화를 전파하는 역할을 했다. 이들의 가사, 뮤직비디오, 옷차림, 무대 분위기, 인터뷰 등 모든 것이 대중들에게 전해지는 힙합의 현현이었다. 힙합은 자유라는 공식은 힙합이 전파되는 과정에서 특별히 돋보이고 매력적인 구호였다. 특별히 외국 음악을 찾아 듣지 않는 많은 대중들은 TV에서 메인스트림 뮤지션들을 보며 힙합의 공기를 맡았다. 여기서 호감을 느끼면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아 힙합의 4대 요소를 배우고, 외국 음악이나 국내 언더그라운드를 접하고 거기서 매력을 느끼면 본격적인 리스너가 되는 것이 흔한 입덕 경로였다.
이런 초창기 메인스트림 힙합의 결정체라고 할만한 곡을 마지막으로 소개하며 이번 편을 마치고자 한다. 누군가가 나에게 “지금까지 논한 초창기 힙합 문화의 자유를 가장 적절히 보여준 단 한 곡을 꼽아달라”고 요청한다면 주저 없이 이 노래를 고를 것이다. 이 곡은 힙합 문화에 대해서 직접 정의를 내리지 않지만, 자유로운 사고방식과 쿨한 라이프 스타일을 가사와 사운드와 비디오 등 온몸으로 표현하면서 ‘힙합의 느낌’을 대중 속에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게다가 이 느낌을 단지 느낌에 머물도록 하지 않고 중독성 강한 추임새 하나에 모든 것을 함축 시켜 담아낸 탁월한 기획이었다. 비록 “가요 힙합”을 경계하던 당시 언더그라운드 리스너들에겐 호불호가 극명히 갈렸지만, 이 곡은 단지 인기 많은 음악을 넘어 하나의 유행어로 자리를 잡았고, 힙합 문화는 대중적 인지도를 한 단계 더 넓힐 수 있었다.
“TV 쇼에 Hiphop이 나오면 난 (A-yo)
사고 싶은 옷을 선물 받을 때도 난 (A-yo)
전화 받을 때 내가 하는 말 (A-yo)
웨이터를 부를 때도 난 (A-yo)
싸울 때도 (A-yo) 말릴 때도 (A-yo) 화해할 땐 (A-yo)”
“우린 이렇게 살지 사는게 다 그렇지
H I P H O P 그래 난 어차피 내가 얽매였던 고삐
그리고 내 안의 또 하나의 나를 깨워 깨워
다른 모든 것을 잠재워”
Jinusean - ‘A-Yo’ (2001) *3:11초부터 어릴적 태양(빅뱅)이 등장한다.
여담) 아이러니하게도 이 글의 서두에 인용한 듀스의 ‘무제’가 바로 자유가 제한당한 시대의 산물이었다. 당초 이 트랙의 제목은 훅(hook)에 등장하는 가사인 ‘힙합팁’이었다. 그런데 힙합의 대표주자로 불리운 현진영이 대마초 및 마약 사건으로 낙마하면서 힙합에 대한 나쁜 인식이 거세지자, 공연윤리위원회의 음반 사전심의(1996년이 되어서야 폐지됨)에서 가사에 ‘힙합’이란 단어를 쓰지 말라고 한 것이다. 이에 이현도가 항의의 의미로 “그럴바엔 제목을 짓지 않겠다”고 해서 ‘무제’가 되었다고 한다. 노래 제목 뿐 아니라, 듀스 2집 앨범의 가사집에는 ‘힙합’이 들어가야 할 자리가 죄다 ‘Pump Up’으로 대체되어있다. (실제 노래에선 원래대로 ‘힙합’이라고 발음하는데, 가사집에서만 바꾼 것이다.)
다음 편 예고) 여세를 몰아 표현의 자유 논쟁을 간단히 짚고, 이후의 글을 통해서 힙합 문화 전파에 대한 얘기를 이어갈 예정입니다. 아마 주석 특집이 될 듯 합니다. 또한 이 글에서는 주제의 밀도를 위해 X세대의 힙합 문화 수용이라는 차원에서의 자유만을 논했지만, 사회적 저항으로서의 자유 역시 한국 힙합에 큰 지분을 차지했으며(물론 이것이 앞선 자유와 반드시 칼같이 나뉘지는 않는다) 앞으로 상세하게 다룰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