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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르는 강물처럼 May 08. 2020

입학하면 돈 주는 학교가 있다?

시골학교 운영위원 3년 차

  학교에 입학하면 입학 장학금을 준다. 올 해는 신입생이 두 명이라 50만 원씩 주었단다. 학용품이며 선물도 한 아름 준다. 아들이 다니는 초등학교 이야기다.


  명우는 늦둥이 아들이다. 올해 10살. 녀석은 송사리 같다. 어찌나 날래고 재빠른지. 친밀도는 '갑'이다. 누구나 쉽게 친해진다. 인사성도 좋으니 동네 어른들에게도 인기 최고다. 녀석은 편식이 심한 편이다. 딸기 빼고는 과일, 채소, 떡, 견과류 등 일체 먹지 않는다. 대신 김치찌개, 김치전, 된장찌개, 까르브나라를 좋아하다. 종잡을 수 없는 취향이다. 또한 아빠 껌딱지다. 쉰 넘은 아빠에게 잘 안긴다. 수염 많고 까칠한 얼굴 여기저기 마구 뽀뽀 해댄다. 명우는 마을에서 2킬로 정도 떨어진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나는 그 학교 운영위원이다. 녀석 덕분에 쓴 감투다.


우리 마을은 100여 호가 넘는다. 대부분 도회지를 떠나 귀촌한 분들이 모여 살고 있다.  마을에 초, 중학생을 위한 '학습지원센터'가 있어서 방과 후 지도를 맡아준다. 인성과 실력을 함께 키워주는 곳이다. 저녁 무렵이면 아이들 노는 소리로 마을이 시끌벅적하다. 옛날 내 어린 시절 동네 같아 정겹다. 이따금 퇴근하고 동네 아이들과 함께 자전거를 탄다. 꼬불꼬불 마을 길을  내가 앞서서 가면 아이들이 쭉 따라온다. 영락없는 골목대장이다. 티 없이 말고 밝은 아이들이다. (명우는 오른쪽에서 두 번째)


  얼마 전 뉴스에서 들은 이야기다. 서울에 가면 '월 거지, 전 거지, 빌 거지'라는 게 있다고 했다. 서울의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말이란다. '월세 사는 거지, 전세 사는 거지, 빌라 사는 거지'라는 뜻이었다. 아이들은  사는 곳에 따라 서로를 차별한다고 했다.


또 '이백충', '삼백충'이라는 말이 있다고 했다. 부모의 월소득이 이백만 원, 삼백만 원인 아이들을 가르킨다고 했다. 다소 충격적인 내용이었지만 덤덤했다. 돈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시대, 빈부의 양극화가 더 심해지고 있는 요즘 시대에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이해되기 때문이었다.

문득, 내가 서울에 살았다면 아들인 명우는 어떤 이름으로 불렸을까? 갑자기 소름이 돋았다.


  명우가 다니는 초등학교는 전교생이라고 해야 고작 30명이 채 되지 않는 시골학교다. 면사무소에서도 십리나 떨어진 곳이다. 베이비 붐 시대인 1959년도에 지어진 학교였다. 동네 어른들의 말에 따르면 한 때 1,000명이 넘는 아이들이 있었다고 한다. 전설 같은 이야기다.


  작년 말 학교에 비상이 걸렸다. 올해 취학 신청 아동이 한 명도 없다는 것이다. 이러다가는 학교가 없어질 판이었다. 긴급 운영위원회가 열렸다. 부랴부랴 동창회에서는 신입생 입학장학금을 지원해 주기로 했다. 학교에서는 행정력을 총동원하여 근처 취학 예상 아동을 파악했다.  집을 찾아 교장선생님과 학부모 회장이 인사를 갔다. 학용품과 선물을 주며 우리 학교에 오기를 '읍소'했다. 하지만 선택은 학부모 몫이었다. 여기에선 학부모가 절대 '갑'이었다.


드디어 예비소집일. 교장선생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2명이  신청했어요" 다행이다.

  사실 이곳 초등학교 아이들은 엄청난 특혜와 특별한 대접을 받고 있다. 입학하면 장학금은 물론 개인 지도 수준의 관심과 수업을 받고 있다. 학습환경이나 지도하시는 선생님들도 최고다. 동급생이 많이 없어서 학년끼리 함께 하기도 한다. 덕분에 모두가 형, 동생이다. 가족처럼 아껴주고 돌봐준다. 올해엔 규모 있는 골프 연습장을 짓고 있다. 지역과 함께 이용하도록 개방한다고 한다. 마을과 학교가 어우러지고 있다. 매년 겨울 체험학습은 스키장으로 간다. 2박 3일. 물론 무료다. 


  여기에는 차별도 없다.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 절반 정도 되지만 소중한  친구일 뿐이다. 도시처럼 부모의 경제력이나 사는 곳은 중요하지 않다. 또한 아이들은 이곳 지역사회를 위해서도 큰 역할을 한다. 경로당 공연이나 지역행사에도 함께 참여하여 활력소가 되고 있다.

아랫마을 이장님은 65세인데 당신이 그 마을 막내라고 하셨다. 이곳 대부분 마을이 그러하다. 작년 어버이날 마을 경로당에서 아이들이 오카리나 공연을 했다. 오랜만에 환하게 웃으시는 어르신들을 보았다. 아이들의 웃음이 마을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학교 운영위원 중에는 베트남 엄마가 있다. 함께 회의도 하고 식사도 하면서 우리는 서로 다름이 없음을 만난다. 아이들의 엄마이고 아빠일 뿐이다. 이 세상 엄마와 아빠는 다르지 않았다. 모두 아이들 덕분이다. 아이들한테 배우고 있다.

'신짜오'는 베트남 인사말... 우리말로 '안녕하세요.'  요즘 시골에 살려면 뭐, 이 정도는 알아둬야 예의가 아닐까 싶다. 
얘들아, 고맙다.
차별이 난무한 세상이지만 차별이 없는 세상,
함께 만들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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