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아재가 사는 이야기
얼마 전 <브런치>에 두 번째 작가 신청을 했다. 매일 글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글은 여러 편 있었다. 그중에서 스마트한 걸로 세 편을 골랐다. 그리고 나에게 호의적인(?) 아내에게 먼저 보여줬다. 아내는 예전에 쓴 글보다 정리가 잘 된 것 같다고 했다. 좋다. 내가 생각해도 그렇다. 좀 겸손해졌다랄까. [작가 신청서] 란에 작가가 되려는 이유와 계획을 쓰는 부분도 정성을 들였다. <브런치>로부터 두 번째 메일을 받았다.
음... 이번에도 안타깝다고 했다. 두 번째 낙방이다. 평생 '재수'도 안 해 본 내가 '삼수'를 할 지경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마음의 동요가 없다. 처음 낙방했을 때는 '느닷없이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었다면 이번에는 아프지 않았다. 마음의 준비를 해서였을까. 심지어 내 등을 툭툭 치며 '어이 친구~ 좀 더 잘해봐'라는 격려처럼 들렸다. 이 정도면 충분히 도전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 아직 실력이 모자라다는 것을 알지, 그런데 있잖아, 나는 <브런치> 작가가 될 거야. 왜냐하면 될 때까지 할 테니까. 하. 하. 하.'
스스로 인정되었기 때문일까. 의욕이 솟았다. 여유도 생겼다.
나는 운동을 좋아한다. 처음 접한 운동은 초등학교 시절에 배웠던 씨름이다. 씨름부에 들면 오후에는 수업을 안 해도 된다. 게다가 간식도 준다. 그 달콤한 유혹을 저버릴 수 없었다. 그 후 유도, 합기도, 태권도, 평행봉, 축구, 족구, 헬스, 마라톤, 검도, 선무도(불교무술)를 배웠다. 항상 운동을 했다는 이야기다. 요즘은 맨몸 운동인 푸시업을 하고 있다.
오랜 세월 운동을 하면서 배운 것이 있다. 처음은 힘들다는 것이다. 꾸준히 하면 성장하고, 섣부른 욕심은 부상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당연한 말씀이다. 또 나이나 건강상태 등 개인의 신체적인 특성과 주변 환경을 고려해야 한다. 그래서 나만의 루틴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거기까지가 어렵다. 루틴이 습관이 되면 저절로 한다. 운동을 하는 목적과 목표를 분명히 하면 더욱 좋다. 나는 요즘 맨몸 운동의 끝판왕이라는 '플란체'를 도전하고 있다. 내 몸을 두 손만으로 지지하며 공중에 띠울 수 있다는 것은 아름다움을 넘어 경이로운 일이다.
글쓰기 또한 그러하리라. 처음은 힘들지만 매일 쓰면 성장할 것이다. 어려움은 있을 것이고 좌절도 많을 것이다. 잘못된 욕심으로 나 자신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다칠 수 있을 것이다. 루틴이 습관이 될 때까지 적지 않은 인내가 필요할 것이다.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것, 내가 글을 써야 하는 이유와 목적이 뭘까.
처음엔 단순히 '지인들과 소식을 나누고 싶어서 시작'한 글쓰기였다. 몇 달 정도 글을 쓰면서 새로운 동기부여를 받았다. 우선 나 자신과의 만남이었다. 내 느낌, 내 생각을 좀 더 알아차리게 된 것이다. 외부로만 향하던 내 시선이 내면을 들어다 보도록 도와주었다. 또 지난 세월 묻어 두었던 사연들을 되짚어 돌아보게 되었다. 놓쳐버리고 살았던 소중한 것들에 대한 가치도 알게 해 주었다.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창문이었고 세상으로 걸어 나갈 수 있는 문이었다. 보다 근본적으로 글쓰기에 대한 의미와 가치를 생각해보았다.
내 나이 60이 넘으면 무얼 할 수 있을까? 70, 80, 90, 재수(?) 없어서 100살까지 살게 된다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늙음과 죽음은 결코 피할 수 없다. 남을 시간을 소모의 삶, 잉여의 삶, 생존의 삶, 뭐 그런 식으로 살고 싶지는 않다. 뭔가 나다운 삶, 그 뭔가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럼 늙음과 죽음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육신은 무너지지만 정신은 살아 있어야 한다. 정신이 살아 있으려면 생각과 느낌을 인식하고 표현하고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퇴화되어 가는 뇌, 바보가 되어가는 뇌를 흔들어 깨워야 한다. 활성화시켜야 한다. 단련시켜야 한다. 강원국 작가는 글쓰기야말로 뇌를 깨우는 최고의 창조활동이라고 했다.
하지만 지금 내가 하는 운동만으로는 불가능한 영역이다. 따라서 글쓰기는 특별한 도전이 아니다. 나이를 먹으면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다. 마치 나이 50이 되면 당연히 해야 하는 운동처럼.
1995년 12월 8일, 프랑스의 세계적인 여성잡지 엘르(Elle)의 편집장이며 준수한 외모와 화술로 프랑스 사교계를 풍미하던 43세의 장 도미니크 보비(Jean-Dominique Bauby)가 뇌졸중으로 쓰러졌습니다. 3주 후, 그는 의식을 회복했지만 전신마비가 된 상태에서 유일하게 왼쪽 눈꺼풀만 움직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얼마 후, 그는 눈 깜빡임 신호로 알파벳을 지정해 글을 썼습니다. 때로는 한 문장 쓰는데 꼬박 하룻밤을 샜습니다. 그런 식으로 대필자인 클로드 망디빌에게 20만 번 이상 눈을 깜박여 15개월 만에 쓴 책이 ‘잠수복과 나비(The Diving Bell and the Butterfly)’입니다. 책 출간 8일 후, 그는 심장마비로 그토록 꿈꾸던 나비가 되었습니다. 그는 서문에서 썼습니다. “흘러내리는 침을 삼킬 수만 있다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자연스러운 들숨과 날숨을 가진 것만으로도 우리는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불평과 원망은 행복에 겨운 자의 사치스러운 신음입니다.
[출처] 사람) 43세, 뇌졸중에 자유를 빼앗긴, 잡지 편집장 장 도미니크 보비 / 잠수복과 나비|
나의 <브런치> 작가 도전은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