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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르는 강물처럼 Aug 25. 2020

밥보다 명상(2)

마음이 아픈 이유를 알다.

<거울 이야기>


삼국지를 보면 유비에게는 관우와 장비, 두 명의 아우와 한 사람의 책사가 있었다. 바로 제갈공명이다. 유비는 전쟁에서 위기에 처할 때마다 그의 도움으로 벗어난다. 그렇다. 나에게도 그런 사람이 절실히 필요했다.


그때 문득  한 사람이 떠올랐다. 그분에 대한 평판은 많이 들어왔다. 온화한 미소로 무슨 말이든 잘 들어주는 분. 80세의 고령에도 항상 활력이 넘치는 분. 그분은 마음수련 명상을 오랫동안 하신 분이라고 했다. 먼발치에서 뵌 적은 있었지만 개인적인 대면은 처음이었다. 종이컵에 믹스커피를 내주셨다. 나는 말을 쏟아 냈다. 




"선생님. 저는 사람들이 저에게 하는 사소한 말들 때문에 너무 상처를 많이 받습니다."  그러면서 내 글을 혹평했던 그녀 이야기와 직장 상사 이야기를 꺼냈다. 

 그분은 내 이야기를 담담히 들어주셨다. 그러더니,

 "아우님. 혹시 거울 알아?" (많은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나를 <아우>라고 불러주셨다)

"예? 거울 말입니까?" 


 "자.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거울이라고 생각해 봐. 내 모습은 상대를 보면 보이겠지? 상대가 거울이니까. 내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뭐가 묻었는지도 볼 수 있지. 그렇지?"
 "예. 그렇습니다"
"상대방은 어떨까? 상대도 역시 나를 통해 자기 자신을 보겠지? 상대에겐 내가 거울이니까" 이해되었다. 
그분은 내게 물었다."그럼 상대가 내 글을 보고 혹평을 했어. 누구의 마음일까?"
"상대의 마음이지요."
"직장 상사가 아우에 대해 이런저런 말을 했어. 누구의 마음이지?"
"그것도 상대의 마음입니다"
" 그래. 상대방은 아우의 글이나 모습을 보고 자기 마음속에 있는 자기 생각을 말한 것일 뿐이야. 자기 마음을 본 거지"


순간, 내 마음을 가리고 있던 먹구름이 확~ 걷어졌다. 이렇게 통쾌할 수가. 그동안 상대방의 말과 나 자신을 동일시하며 힘들어했는데 그것은 단지  그 사람의 마음 세계일 뿐, 내가 아니었던 것이다.

자극과 반응(거울을 통해 각자의 마음 세계를 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서 막걸리 한 병을 샀다. 오랜만이다. 

그래, 이런 날은 축배를 들어야 한다. 아무렴.




<거울의 비밀>


나는 상대를 통해서 일어나는 내 마음을 본다. 상대는 내 마음을 비춰주는 거울이므로. 그 상대는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다. 보이고 들리는 모든 것. 그 대상을 접할 때 내 마음이 일어난다. 


상대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내 마음을 비춰주는 거울 역할을 할 뿐이다. 
내 마음이 문제다. 


그녀는 분명히 나를 위해서 어쩌면 진심으로 그런 피드백을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무시당했다고 생각하면서 화를 낸다. 

있는 그대로 듣고 "그렇군요. 그럼 어떻게 하면 고칠 수 있을까요?"라든가, "그렇게 관심 깊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라든가 했을 것이다. 하지만 전혀 엉뚱하게도 나는 화를 냈다. 왜곡이 일어난 것이다. 나와 그녀 사이에 내가 놓은 거울 때문에. 
정확히 말하면 나는 그녀 말을 들을 것이 아니라 내 거울에서 들리는 내 말을 들은 것이다. 그러니 내 마음이라는 것이다. 내가 살아온 경험의 결과가 그런 말을 들으면 무시당한다고 생각하도록 설정되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자동 반응한다.


그 거울이 모든 관계 사이에 끼워져 있다. 보는 순간, 듣는 순간 왜곡된 정보로 파악된다. 


그렇다면 그 거울을 치워버리면 되지 않는가?

생각처럼 간단하지 않다. 그 거울은 이미 나와 한 몸이 되었다. 그 거울이 내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가 나인지 잃어버렸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인가?

진짜 나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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